들어가고 싶은 어린이집.. "우리동네엔 들어오지 마라"

최은경 기자 2017. 3. 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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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시설 아닌데.. 서울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사업' 난항]
"지어달라" 민원 많지만 막상.. - 용산구 땅 없어 공원內 짓기로
주민들 "가뜩이나 혼잡한데.." 자금 지원한 LG 찾아가 데모도
아파트 1층 빌려 어린이집 설립, 서초·송파구도 지역주민과 갈등

'북한남동 유일한 공원을 없애지 말아 주세요. 응봉근린공원은 주민 모두의 것! 국공립 어린이집 건립 반대.'

지난 3일 정오, 서울 용산구 한남동쪽 응봉근린공원 곳곳에는 이런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공원 한편에는 반대 서명을 받는 천막까지 마련됐다. 모두 '응봉근린공원지키기 주민연대'가 설치한 것이다. 주민들은 작년 11월 용산구가 "3월부터 공원 안에 어린이집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단체를 결성해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단체 회원 8명은 지난달 21일 여의도 LG트윈타워에 찾아가 집회를 열었다. LG복지재단이 한남동 국공립 어린이집 사업에 16억원을 지원한 데 항의한 것이다.

서울시가 2015년부터 추진해온 '국공립 어린이집 1000개소 확충' 사업이 일부 지역 주민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주민들은 자연 훼손과 소음, 교통 혼잡 등을 이유로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 새로 어린이집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질 좋은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 '믿을 만하다'고 정평이 났다. 하지만 들어가려는 수요는 많은데 워낙 시설이 부족해 입소 경쟁이 '하늘의 별 따기'나 '로또'로 불릴 정도로 치열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시 국공립 어린이집은 1419개소로, 전체 어린이집(6368개소)의 22%에 불과했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을 2154개소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문제가 된 한남동은 어린이집이 부족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관내 어린이집은 국공립 1곳을 포함해 총 5곳뿐이고, 수용 인원도 159명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이 동네 어린이 500여명이 집에서 먼 다른 지역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용산구는 한남동 일대에 어린이집을 지을 수 있는 구청 소유의 땅이 없어서 공원 안에 짓기로 했다.

주민들은 산책로로 쓰는 공원에 어린이집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응봉근린공원지키기 주민연대 관계자는 "어린이가 국가의 미래인 것은 맞지만, 현재 한남동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장년층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안 된다"며 "안 그래도 도로가 좁은 공원에 어린이집이 생기면 이 일대 교통난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청과 주민들이 대립하면서 상처를 받는 것은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다. 9개월 된 딸을 둔 주민 윤모(여·33)씨는 "내년부터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해야 하기 때문에 어린이집이 생기길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며 "구청과 주민들이 원만하게 해결해서 꼭 국공립 어린이집이 설립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초구와 송파구도 어린이집 설립을 두고 구청과 주민들이 비슷한 갈등을 겪었다. 두 구청은 땅값이 너무 비싸서 새로 지을 엄두를 못 내고 기존 아파트 1층을 임차해 국공립 어린이집을 세우려 했다. 서초구는 지난해 어린이집이 1개뿐인 반포본동부터 손을 댔다. 하지만 대상 아파트 주민들이 "아파트가 오래돼 주민들이 주차할 공간도 부족한데 어린이집 통학 차량까지 드나들면 주차난이 더 심각해진다"며 반대해 진통을 겪었다. 송파구도 대단지 아파트 1층을 빌려 어린이집으로 활용하려 했다가 주민들 반대에 부딪혔다. 일선 구청 관계자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지어달라는 민원은 많은데, 막상 지으려고 하면 '내 집 근처는 안 된다'는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 현상이 발생해 미칠 노릇"이라며 "어린이집이 쓰레기 소각장이나 화장장 같은 혐오시설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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