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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생리하면 안 될 텐데" 차별로 얼룩진 장애소녀의 사춘기

CBS노컷뉴스 김구연 기자 입력 2017. 03. 06. 06:01 수정 2017. 03. 0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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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장애, 남몰래 흘린 그녀들의 눈물 ①]

'여성'으로서 겪는 성(性)차별에 장애란 약점이 더해진 여성장애인은 '약자 중의 약자'다. 여성장애인에게 사춘기 소녀 시절의 고민은 '금지된 비밀'이고, 임신과 육아에 뛰어든 어머니의 고충은 제도 밖에 있다. 일생을 제도 밖에서 편견에 묻혀 살아온 이들의 말로는 비참하다. CBS노컷뉴스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장애인의 생애주기별 과정을 조명해 그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환기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넌 생리하면 안 될 텐데" 차별로 얼룩진 장애소녀의 사춘기
(계속)

◇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까, 난 없는 존재"

남들보다 유난히 키가 작은 소희 양은 어른스러워 보이는 옷을 선호한다. (사진=소희 양 제공)
꽃보다 아름다운 나이인 19살 소희(가명)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때론 자괴감에 빠진다.

소아암을 앓게 되면서 성장판이 닫힌 탓에 소희의 키는 120㎝. 지체장애 2급(왜소증)을 받았다.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려 화장을 하고 어두운 색상의 옷을 입어보지만, 좀처럼 머릿속에 그린 여성의 태가 나지 않아 속상하다.

소희는 '키가 커야 남자들이 널 좋아할 텐데'라는 친척들의 말에 수없이 상처를 받았다. 그렇게 소녀는 사회가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부여한 '여성의 상(狀)'을 체득했고, 그 기준에 못미치는 여자가 될까봐 두렵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남학생과 인터넷으로 교제를 시작하기도 했지만, 그 남학생은 소희를 한 번 만난 뒤 '미안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소희는 "이해한다"면서도 "장애의 한계를 실감했고, 더 위축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남학생들도 나를 비웃기도 하고, 어린 애들마저 빤히 쳐다보거나 수군거리며 지나간다"며 "평생 받아온 그런 시선에 주눅이 든다"고 덧붙였다.

가장 큰 고민은 교우 관계다. 특히 일부 같은 반 친구들은 소희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한다.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까…. 그냥 난 없는 존재다"라고 말하는 소희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보다 외국 가수 제이슨 므라즈를 좋아하고, TV보다는 뮤지컬을 좋아하는 소녀는 외로운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 "너도 생리하니?" 여성이 되기 무서웠던 소녀

전남여성장애인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은영 씨. (사진=김구연 기자)
자연스러운 화장에 회색 코트를 입은 은영(27) 씨는 어엿한 20대 여성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어장애 4급에 뇌병변장애 6급 판정을 받은 사실이 무색할 만큼 그녀의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은영 씨는 사실 "여자로 거듭나는 자신이 싫었다"고 한다. 특히 첫 월경의 경험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은영 씨는 "세상은 나를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몸만 여성으로 변해갔다"며 "차라리 어린아이의 몸으로 평생 살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런 속내를 나눌만한 친구는 주위에 없었다.

신체 변화가 뚜렷해질수록 은영 씨는 수치스러운 모욕을 들어야만 했다. "어디서 우유 냄새 안 나냐"고 장난치는 남학생들의 놀림에 은영 씨는 점점 더 내성적으로 변해갔다.

선생님도 그늘진 은영 씨의 학교생활에 빛이 되지 못했다. 은영 씨는 "선생님들이 '너도 생리를 하니?', '넌 생리를 하면 안 될 텐데'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꿈의 날개를 꺾은 이도 선생님이다. 내성적인 성격에 그림에 푹 빠졌던 은영 씨의 꿈은 '산업 디자이너'였지만, "너는 여성이고 장애도 있는데, 그냥 공장에서 일하는 게 좋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미대 진학도 포기했다.

◇ '젠더'가 사라진 장애 교육

장애라는 약점을 안고 사춘기를 겪는 소녀들은 자신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한 입 모아 외친다.

인식 변화를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젠더와 장애라는 특성을 함께 이해하는 게 필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교육은 싹도 틔우지 못했다.

실제로 젠더가 실종된 장애 인식이 일선 교육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장애 이해 특집방송을 시청하거나 장애 관련 시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 등이 마련돼 있을 뿐, 성 정체성에 대한 내용이 결합한 장애 교육은 전무한 실정이다.

장애에 대한 이해교육을 따로 받을 기회가 거의 없는 교사들에게 젠더까지 더해진 장애인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교육부 관계자 "일반 교육과정에 성이나 장애에 관한 교육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별도의 교육과정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여성 장애인의 가족이나 이웃, 지역사회도 젠더가 사라진 장애 교육만 접하는 게 현실이다.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모두 젠더의 특성을 살린 장애교육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탈피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여성이란 이유로 겪는 성적 차별에 장애란 특성이 더해진 여성장애인에 대해서는 '성 평등 인권교육' 차원에서 반드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CBS노컷뉴스 김구연 기자] kimgu88@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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