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사면초가' 도시바..한국 업체들 품에 안길까

입력 2017.03.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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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반도체 부문은 SK하이닉스, 원전은 한전이 인수 후보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고은지 기자 = 일본 도시바(東芝)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 인수전이 점입가경이다. 인수 후보군이 점점 늘면서 이들 간의 다양한 합종연횡 시나리오에 대한 관측도 쏟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SK하이닉스는 인수의 실익을 면밀히 타진하며 인수전 최종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의 원흉이 된 원자력발전 사업 부문도 매각될 예정인데 한국전력이 유력 인수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면서 이들 사업 부문이 한국 기업들의 품에 안길지 주목된다.

◇ 늘어나는 반도체 인수 후보…업체 간 제휴설도 무성

11일 재계와 외신에 따르면 도시바 반도체사업 매각에 반드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대만 훙하이(鴻海)그룹의 향후 행보를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온다.

훙하이는 애플의 아이폰을 조립하는 폭스콘의 모기업이다. 궈타이밍((郭台銘) 훙하이 회장은 최근 "이(도시바의 낸드플래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신에서는 훙하이가 자국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와 비밀유지협약을 맺고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대만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TSMC는 세계 최대 규모의 파운드리 업체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본 언론에서 훙하이가 한국의 SK하이닉스에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위한 공동출자를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도시바메모리는 도시바가 낸드 플래시 사업 부문을 분사해 설립하겠다는 회사의 가칭이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이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업체 간 연대 시나리오가 나오는 것은 도시바가 반도체 부문 매각 입찰자들에게 2조엔(약 20조원) 이상을 견적으로 내도록 요구하면서 인수 비용이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당초 도시바는 반도체사업의 지분을 20% 미만으로 매각하겠다며 제안서를 받았으나 미국 원자력발전 사업에서 추가 부실이 드러나자 '지분을 100%까지 매각할 수 있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이런 가운데 작년 6월 도시바의 가전사업 부문을 인수했던 중국 메이디(美的)그룹도 가세했다.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그룹의 모회사인 메이디홀딩스의 위안리췬(袁利群) 부총재는 니혼게이자이와 인터뷰에서 도시바메모리에 대한 출자 의향을 밝혔다.

당초 1차 입찰에 뛰어들었던 것으로 알려진 SK하이닉스, 폭스콘, 미국 반도체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웨스턴디지털(WD), 사모펀드 실버레이크 외에도 인수 후보군이 확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IT(정보기술) 공룡들인 미국의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도시바 메모리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기본적으로 한국과 중국, 대만, 미국 업체들이 각축을 벌이는 경쟁 구도에 자천타천으로 거명되는 후보선수들이 가세하면서 후보군이 점점 불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이번 매물이 그만큼 매력적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반도체업계는 보고 있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메모리 반도체로,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저장장치에 주로 쓰인다.

정체된 D램과 달리 낸드플래시 시장은 당분간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 IHS는 1GB(기가바이트)로 환산한 낸드플래시 출하량이 2015년 822억개에서 2020년 5천84억개로 늘며 연평균 4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도시바는 이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글로벌 점유율 2위 업체다. 세계 최초로 낸드플래시를 상용화한 원조 기업이기도 하다.

◇ SK하이닉스의 고민은 '돈·시너지 효과·反외국기업 정서'

1차 입찰에 참여했던 SK하이닉스도 도시바로부터 2차 지분 매각 제안을 받았다.

SK하이닉스는 작년 4분기 기준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도시바, 미국 웨스턴 디지털, 마이크론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에 도시바란 매물은 업계 선두권으로 올라설 수 있는 도약대다.

하지만 1차 걸림돌은 인수 대금이다. SK하이닉스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작년 말 기준 4조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도시바는 입찰자들이 2조엔(약 20조원) 이상을 견적으로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차입을 염두에 두더라도 사실상 SK하이닉스의 독자 인수는 불가능하다. 재무적 투자자(FI) 또는 공동인수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 다른 하나는 SK하이닉스에 도시바가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1+1이 2가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두 회사의 합병 후 점유율이 합병 전 각 회사의 점유율을 더한 수치를 밑돌 수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사례가 2013년 미국 마이크론이 일본 D램 업체 엘피다를 인수한 경우다. 합병 후에도 마이크론의 점유율은 여전히 3위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현재 낸드플래시 시장의 절대 강자는 삼성전자인데, 두 회사가 합병한다고 기술 수준이 삼성전자급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이미 작년 말 64단 V-낸드의 양산을 시작했지만 도시바는 올해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보적인 기술력과 고성능 제품을 보유한 업체에 주문과 수익이 몰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양사의 합병 시너지는 기대보다 작을 수 있다.

이 관계자는 "20조원 이상을 들여 인수했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따져보려면 도시바의 기술 역량이나 제조공정 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국적이 한국이란 점도 감점 요소다. 일본 경제단체나 정부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의 핵심기술이 외국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좀 싸게 팔더라도 일본과 미국의 합작기업에 매각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파나소닉, 소니와 함께 일본의 '3대 제조업체'로 꼽혔던 도시바가 원전과 반도체 사업마저 떼어내고 나면 엘리베이터 업체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인수 제안서를 받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인수전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2위인 도시바를 포함한 경쟁업체들과 상당한 기술력 격차를 벌려두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도시바가 누구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업계의 판도가 뒤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도시바 인수 시 반독점 규제에 걸릴 것이 확실한 만큼 인수전 참여는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 재앙의 씨앗, 원전사업…한전이 '구원투수' 될까

도시바 추락의 원인은 미국 원자력발전 부문에서 발생한 거액의 적자다.

도시바는 지난달 14일 미국 원자력발전 사업에서 손실 처리할 금액을 7천125억엔(약 7조2천억원)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손실 규모, 회생 방안에 대해 감사법인, 변호사 등과 이견으로 결산 발표를 더 늦출 수 있다는 관측도 솔솔 나온다.

그룹 해체 위기에 빠진 도시바는 반도체뿐 아니라 미국 원전업체인 웨스팅하우스(WB)의 지배지분을 팔고 영국에 새 원전을 지을 계획인 컨소시엄 누젠(NuGen)의 60% 지분도 줄이기로 했다.

이들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이 있는 잠재 후보로 한국전력도 거론된다.

어느 정도 재정적 여력이 있는 데다가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전과 웨스팅하우스는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를 지을 때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당시 웨스팅하우스는 턴키(일괄수주 계약) 사업자로 참여했다.

일부 외신은 한전이 미국 등 서방 국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웨스팅하우스 인수후보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단 한전은 신중한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도시바의 경영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아직 도시바로부터 (누젠이나 웨스팅하우스와 관련해) 공식적인 제안이 오지 않았다"면서 "제안이 들어오면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원전 관련 주무부처인 산업부 관계자는 "(누젠) 컨소시엄에 들어가는 데 관심 있다"면서 "프로젝트 수익성은 얼마나 될지, 우리가 얼마나 투자해야 할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 프랑스 전력회사 EDF 등도 후보로 거론됐지만, 모두 손사래를 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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