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일보

美 최고 풍자가가 선사하는 유머·반전의 향연

이윤주 입력 2017.03.30. 14:01 수정 2017.03.30. 19:26

소설 읽을 때 '손맛'을 주는 작가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반전이 있어야 소설이 끝난다는 확신이 들 때쯤이면 눈(目)은 읽고 있는 페이지와 읽어야 할 페이지를 오간다.

마크 트웨인의 계승자이자 무라카미 하루키, 더글러스 애덤스 등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그는 '미국 최고의 풍자가'란 수식어답게 소설 곳곳에 냉소와 유머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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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멍청이의 포트폴리오

멍청이의 포트폴리오

커트 보니것 지음ㆍ이영욱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244쪽ㆍ1만3,000원

유머와 반전, 냉소로 점철되는 커트 보니것의 특장을 고스란히 담은 ‘멍청이의 포트폴리오’는 20세기 미국 단편소설의 정수 보여준다. 질 크레멘츠 제공

소설 읽을 때 ‘손맛’을 주는 작가가 있다. 인물들이 툭툭 던지는 유머에 키득거리다 보면 어느 새 갈등이 전개되고 있고, 다시 냉소 섞인 농담에 맞장구치다 보면 이야기는 새 국면에 닿는다. 어떤 식으로든 반전이 있어야 소설이 끝난다는 확신이 들 때쯤이면 눈(目)은 읽고 있는 페이지와 읽어야 할 페이지를 오간다. 마침내 읽을 분량이 2,3장 남게 되면 이걸 잡은 손의 쾌감은 극도에 달한다.

블랙유머의 대가 커트 보니것(1922~2007)은 이런 손맛을 아는 작가다. 마크 트웨인의 계승자이자 무라카미 하루키, 더글러스 애덤스 등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그는 ‘미국 최고의 풍자가’란 수식어답게 소설 곳곳에 냉소와 유머를 심는다.

작품집 ‘멍청이의 포트폴리오’는 그의 대표작 ‘마더 나이트’(1961), ‘제5 도살장’(1969) 등이 출간되기 전인 1950년대에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소설 여섯 편, 에세이 한 편, 미완성 소설 한 편을 담아 작가 사후인 2012년 아마존의 전자책으로 처음 나왔다.

책의 첫머리에 실린 ‘‘소심한’과 ‘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서’는 보니것 스타일의 전형을 담은 단편이다.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젊은 화가 데이비드가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펼치는 에피소드는 반전과 허무개그로 끝을 맺는다.

신혼, 중년, 노년의 세 커플이 런던에서 파리로 가는 기차 안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그린 ‘파리 프랑스’는 미래가 창창할 젊은 소설가의 내공을 담뿍 담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 권태기를 맞은 중년 부부 해리 벅하트와 레이첼이 자신들보다 더 나쁜 상황인 노년 부부 아서 퍼츠, 마리 퍼츠를 보며 사랑을 재확인할 때 ‘비어있던 좌석 두 개’에 신혼부부가 타며 작품의 기운이 바뀐다. ‘신혼여행객으로 분명해 보이는, 선택받은 젊은 커플은 서로 마주보는 의자에 앉더니 매끄러운 손길로 서로를 만지며 촉촉한 귀엣말을 주고받았다.(…) 레이첼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볼 수밖에 없었고, 윙크하던 콤팩트를 치워버렸다.’

표제작 ‘멍청이의 포트폴리오’는 이 책에서 가장 따뜻한 이야기다. 주식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화자가 양부모의 급사로 재산을 물려받게 된 신학대학생 조지를 만나며 겪은 에피소드를 그린다. ‘돈의 소중함을 모르는 멍청이’란 첫인상은, 보니것 특유의 ‘반전의 반전’으로 끝난다.

여자 마음을 알 리 없는 십대 소년의 삽질을 담은 ‘강가의 에덴동산’이 남자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면, (연애에서)남자의 삽질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스노우, 당신은 해고예요’에서는 여성의 심리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콜럼버스 항해 500주년을 맞아 1992년 쓴 에세이 ‘마지막 태즈메이니안’에서 담은 일화는 ‘가짜 뉴스’가 시대를 초월한 문제였음을 고백하고 있어 흥미롭다. ‘나치가 강제수용소 희생자들의 시체에서 모은 지방으로 비누와 양초를 만들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나도 소설 ‘마더 나이트’를 통해 그 이야기를 퍼뜨리는 데 한몫했고, 냉철한 사실수집가들로부터 받은 편지의 양은 내가 잘못된 내용을 유포하고 있다고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내 탓이로소이다, 아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이 라이트급 권투선수의 몸짓을 연상케 한다. 짧고 빠른 펀치처럼 풍자와 반전을 잽싸게 교차하는 이야기는, 어느 네티즌의 평처럼 ‘(웃고 있는)얼굴 주름만큼이나 뇌에도 주름을’ 선사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mailto: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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