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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팀장의 북레터>유머를 잃지 않는 법

최현미 기자 입력 2017.03.31. 10:30

미국 최고 풍자가이자 블랙 유머의 대가 커트 보니것의 초기 미발표 단편과 에세이를 묶은 '멍청이의 포트폴리오'(문학동네)가 나왔습니다.

보니것이 여든을 넘기면서 이제 더 이상 농담을 못할 것 같다고, 세상 일을 웃음으로 처리하기 힘들 것 같다고 고백했지만 그의 마지막 책에도 유머가 가득하다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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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 풍자가이자 블랙 유머의 대가 커트 보니것의 초기 미발표 단편과 에세이를 묶은 ‘멍청이의 포트폴리오’(문학동네)가 나왔습니다.

2007년 보니것이 세상을 떠난 뒤 2012년 전자책으로 처음 공개된 작품들입니다. 독자들의 열광에 이듬해 종이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지금 이곳에 없는 작가의 젊은 시절 작품을 새로 읽는다는 것, 그 작가의 출발선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부조리한 사회, 아이러니한 인생’. 우리 모두가 매일 매일 살아가며 겪는 그런 일들입니다. 이야기를 위트 있게 끌고 가다 마지막에 안기는 생각지 못한 반전. 이런 위트와 반전이 섞여 애잔한 감동을 전합니다.

표제작 ‘멍청이의 포트폴리오’에는 사기꾼의 꾐에 빠져 양부모의 유산을 탕진하는 젊은이가 등장합니다. 화자인 주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돈의 소중함을 모르는 멍청이’라고 답답해합니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유산을 탕진하는 망나니도, 멍청이도 아니라는 반전이 준비돼 있습니다. ‘소심함과 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서’의 주인공 화가는 세상을 떠난 부인을 만나기 위해 야심 찬 시간 여행을 준비하지만 사소한 일로 좌절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여배우와 그녀를 한심하게 보는 배우들의 이야기인 ‘로마’ 역시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맞이합니다. 현지 언론의 리뷰처럼 ‘강력한 한 방이 있는 작품들’입니다. 소설 마지막에 독자들에게 강력한 한 방을 먹이죠. 돈밖에 모르고, 인간적 유대는 사라지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부조리한 사회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는 작가의 특기는 이 작품들을 쓰던 1950년대부터 탁월했음을 증명합니다.

한국에서 유머와 재치의 작가로 꼽히는 소설가 이기호 씨가 최근 계간 ‘문학동네’ 봄호에서 “한국문학에서 유머리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기 고라니로 태어나 한겨울을 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며 “한국이 웃음과는 거리가 멀고 거기에서 하는 문학이란 태생적으로 눈물 얼룩에서부터 시작되기에 끝까지 유머를 견지한 작가를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보니것을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다해 유머를 잃지 않은 작가라고 했습니다. 보니것이 여든을 넘기면서 이제 더 이상 농담을 못할 것 같다고, 세상 일을 웃음으로 처리하기 힘들 것 같다고 고백했지만 그의 마지막 책에도 유머가 가득하다면서 말이죠. 소설가뿐 아니라 하루하루가 피곤한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겁니다. 넘치도록 행복하고 기뻐서 웃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하고 비루한 삶 속에서도 안간힘을 다해 유머와 유머가 안기는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블랙 유머의 대가 보니것이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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