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월' 아들 아빠의 어린이집 '3세반' 보육교사 체험기
"CCTV 생긴 뒤 아이들과 스킨십할 때는 신경쓰게 돼"
밥 먹일 때가 제일 힘들어..낮잠 시간도 업무의 연장
오후 4시 넘어가면 대부분 하원..이후엔 통합 보육
#오전 6시 '오늘 하루 잘 할 수 있을까.' 눈을 뜨자마자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어린이집을 방문해 보육교사 일일 체험을 하는 날, 혹여라도 아이들에게 옮길 수 있는 감기 등 감염성 질환이 걸리면 체험은 취소된다. 하지만 다행히 아픈 곳은 없었다. 보건복지부에 사전 교육받은대로 아이들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반지는 손에서 빼고 손과 발도 깨끗이 씻었다. 오전 7시10분. 집에서 나가기 전 침대에서 자고 있는 27개월 된 아들을 봤지만 여전히 꿈나라였다.
도착 직후 어린이집 원장의 오리엔테이션(OT)이 이어졌다. 실외놀이터, 옥상텃밭이 있다는 설명에 감탄하다가도 폐쇄회로(CC)TV가 모든 교실에 설치돼 있어 조심스레 행동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했다. 행동수칙 안내도 이어졌다. 보육교사는 항상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부드럽게 말하고, 손가락 대신 손바닥으로 표현하며, 손은 자주 씻어야 한다. 하재희 원장은 "아이들은 가능하면 과격하게 들어주기보단 안아주는 게 좋습니다. 키높이에 맞춰서 무릎을 꿇고 아이컨택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다만 배식은 직접 하지 않고 '보조'만 하는 걸로 정리됐다. 보육교사는 아이들에게 질병을 옮기기 않아야 하기 때문에 보건소에서 '보건증'을 따로 받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27개월' 아들 아빠 선생님은 '3세반'에 배정됐다. 가정어린이집을 다니는 아들(2세반)보다 한 살 많은 형, 누나들을 봐주게 됐다.
꽃망울반 아이들은 총 15명, 남자 11명에 여자 4명이다. 하지만 9시30분에 교실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은 4명. 공룡 인형을 놓고 아이들이 다투자 '엄마 선생님'이 개입해서 조용히 타일렀다. 시간이 지나자 엄마·할머니들이 아이 손을 잡고 하나둘 교실을 찾아왔다. '엄마 선생님'을 보고 환하게 웃던 아이들은 새로운 '아빠 선생님'을 보더니 긴장하는 표정을 보였다. 처음엔 어색해하더니 곧 '아빠 선생님'으로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잦아졌다.
#오전 11시 어린이집에서 50m 거리인 '느티나무공원'에 가서 야외활동을 했다. 정글짐과 그네를 보자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갔다. "아빠 선생님 잡아보세요"라고 외치고는 다들 도망을 갔다. 20분 정도 쫓아다니다 보니 온몸에 땀이 흘렀고 체력은 고갈됐다. 구 교사는 "엄청 힘들어보이신다"고 걱정했다. 몇몇 아이들은 흙밭에 가서 노란 민들레와 하얀 들꽃을 꺾었다. 서하는 "집에 가서 엄마, 아빠에게 줄거에요"라며 꽃을 손에 꼭 쥐었다. 40분 정도 열심히 놀고난 뒤에 어린이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한줄 기차'를 외치면서 어린이집 계단을 한줄로 왼쪽 난간 잡고 차례차례 올라갔다.
#낮 12시 아이들이 손을 씻은 뒤에 식사가 시작된다. 배식판과 밥, 반찬, 컵을 조리실에서 '아빠 선생님'이 챙겨오고 배식하는 건 '엄마 선생님'의 몫이다. 엄마 선생님이 아이들 배식판을 준비할 동안 아빠 선생님은 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을 집중시켰다. "선생님 말로 하지 말고 그냥 읽어주세요"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그림책 내용을 따로 설명하지 말고 글자 그대로 읽어달라는 것이었다.
이날의 점심 식단은 쌀밥과 북어미역국, 연근조림, 콩나물무침, 김치. 아이들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활용해 미역국에 밥을 말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었다. 젓가락질을 교정해주는 '뽀로로' 젓가락이 눈에 띄었다. 간식 시간처럼 '콩나물 더 주세요' '김치 더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먹는 시간은 제각각. 누구는 일찍 먹고, 누구는 30분 이상 깨작깨작 먹기도 한다. 구 교사는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이 골고루 먹을 수 있게 지도했다. 그는 "식사하고 뒷정리하는 시간이 제일 어려워요"라고 살짝 귀띔을 했다.
그나마 오전에는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눴던 구 교사와 잠시 말할 짬이 생겼다. 그는 "밥 먹이고 치우는게 아무래도 젤 힘들죠"라면서 "특히 아이들은 크면 클수록 낮잠을 2시간씩 자기 어려워요. 보육교사도 휴식 시간 1시간 지키기 어려운거죠"라고 말했다. 어려운 점이 없냐고 묻자 "저는 아직 미혼인데 결혼한 친구들은 아이 한 명 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애들을 여럿 보냐"고 이야기한다면서 웃었다. 그러고는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가도 어느 순간 다 풀리는 게 이 직업의 매력"이란 답이 돌아왔다.
0~2세 영아와 3~5세 유아는 차이점이 있을까. 구 교사는 "2세반은 교사 하나에 아이 7명의 비율인데 3세반이 되면 교사 하나에 아이 15명으로 법적 비율이 뛰어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아반이 더 힘들긴 하다. 말도 못 하고 대소변 못 가리는 아이들이 많으니 일일이 다 챙겨주기 때문이다"라며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이 똑똑해지는 게 보여서 보람이 든다. 화장실에 데리고 가지 않아도 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도 알아서 척척 한다"고 꿈망울반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2년 전 의무화된 어린이집 CCTV 설치도 많은 것을 바꿨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죠. 원래 잠을 재울 때 토닥였던 것도 문지르는 걸로 바꿨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오해를 받을 수 있어 자제하게 됐어요. 그런데 학부모께서 CCTV를 보자고 하신 적은 없어요. CCTV가 있다는 거 자체가 큰 의미죠"라고 말했다.
#오후 5시 5시를 넘어가니 옆에 있던 5살반(나무반) 아이들 3명이 넘어와서 통합 보육을 받았다. 나무반 교실과 화장실 청소 때문이다. 5시10분엔 '꽃망울반' 청소 차례가 돌아왔다. 교실을 청소기로 밀고 밀대 걸레를 밀고 빨다보니 20분이 훌쩍 지나갔다. 청소도구를 정리하고 시계를 보니 5시30분을 가리켰다. 이 때부턴 어린이집에 남은 모든 아이들이 한 교실에 모여서 돌봄을 받게 된다. 꽃망울반의 마지막 학생인 민규를 2층 교실에 데려다주고 인사를 하니 6시가 됐다. 아빠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민규와 '인증샷'을 찍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그 후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아빠 선생님'을 보고 27개월 된 아들이 반갑게 달려왔다. 이날따라 아들의 얼굴이 더 반갑게 느껴졌다. 육아 경험이 있다곤 하지만 수시로 아이들 콧물을 닦아주고 물이나 음식 흘린거 닦아주고 같이 책도 읽어주고 싸우는 건 말려야 하는 등 눈코 뜰 새 없는 어린이집의 하루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기 전, 머릿속엔 구 교사의 말과 함께 15명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가도 어느 순간 다 풀리는 게 보육교사란 직업의 매력이죠."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어린이집의 하루는… 7시30분~9시 : 등원, 통합보육(독서활동) 9시~10시 : 오전 자유선택활동 10시~10시30분 : 손씻기, 오전 간식 10시30분~11시 : 일과 계획, 대·소집단 활동 11시~12시 : 실외활동, 산책 12시~13시 : 점심 식사, 이 닦기, 정리정돈 13시~15시 : 손 씻기, 낮잠 및 휴식 15시~15시30분 : 특별활동 15시30분~16시 : 손 씻기, 오후 간식 16시~17시 : 오후 자유선택활동 17시~19시30분 : 정리정돈 및 평가, 귀가 또는 통합보육
▶ "北서 지난해 김정은 암살하려 전용열차 폭파 시도"
▶ 독약 VX보다 100배 센 맹독 보톡스의 진실
▶ 장교 출신 탈북女 "혼자 아이 낳고 태반 손질해 먹어"
▶ 정미홍 "5·18 유공자 2명 월북"···보훈처에 확인해보니
▶ "최순실, 특정 수감자 데려오라고 교도관에게도 지시"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먹으로 때리고 걷어찬 어린이집 교사 징역 2년
- 세 살배기 원생 강제로 재우다 숨지게 한 어린이집 교사 징역 4년
- 숙제 안 하면 '왕따 시켜라'..초등학교 교사 정직 3개월
- "고추 많이 컸냐" 4세 원생 강제추행 어린이집..법원 공공형 어린이집 취소 마땅
-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갇혔던 7세 여아..행인이 구조
- "오빠폰에 몰카" 與의원실 비서 여동생이 신고
- 김환기에 이우환까지···300억 경매 나온다
- 은지원, 제주 카페서 6명 모임 논란···"반성"
- '슬의생'이 '슬의생' 했나···장기기증 등록 11배로
- 26살 아이콘 바비 다음달 아빠 된다,깜짝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