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아르헨·그리스·베네수엘라..그들이 망한 이유 있었다

서동철,전정홍,김규식,김세웅,이승윤,부장원 2017. 4. 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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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더뉴스 / 국가실패 기로에 선 한국 ⑥ 역사의 교훈 ◆

한국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에서도 손꼽히는 아웃라이어 국가다. 전쟁 잿더미 위에서 불과 반세기여 만에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한국보다 앞선 경제대국들은 모두 식민지를 거느렸던 옛 제국이다. 한때 식민지로 추락하는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던 국가가 지금 위치까지 올라선 것 자체가 기적이란 평가다. 하지만 한때 후진국이었다고 해서 영원히 후진국이란 법도 없지만, 선진국이 됐다고 해서 그 지위가 계속 유지될 수는 없다는 게 역사의 철칙이다. 특히 정치인 등 사회 엘리트계층이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고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포퓰리즘을 남발하고 이에 제동을 걸 장치가 점차 무력화될 때 세상은 아래에서부터 썩어들어가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예가 아르헨티나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경제 선진국이었다. 1914년 해외 진출을 노리던 런던의 유명 백화점인 해러즈 백화점이 1호점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열 정도였다. 1차 세계대전 직전 아르헨티나 국내총생산(GDP)은 유럽의 강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보다도 많았다.

하지만 포퓰리즘의 대명사 '페론주의'로 대표되는 후안 페론 대통령 집권 이후 아르헨티나 경제는 변곡점을 맞았다. 1946년 집권 이후 페론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복지 지출을 대폭 늘렸다. 은퇴자 연금을 한꺼번에 올려주고 국가 예산의 19%를 생활보조금에 쓰는 등 퍼주기 정책이 일상화하면서 재정이 바닥났다. 아르헨티나는 지금도 대학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는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21세기 들어 아르헨티나가 첫 외환위기를 맞은 국가가 된 것도 이 같은 근시안적 경제정책과 정부의 과도한 재정 지출에 따른 부채, 그리고 개혁에 반대한 노조 때문이었다. 1989년 연 5000%를 기록할 정도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와중에 당선된 페론당 출신 메넴 대통령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1991년부터 고정환율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물가가 안정되는 대신 페소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 주변 남미 국가가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면서 격차는 더 커졌다. 당시 브라질 근로자 월평균 임금이 250~300달러 수준이었는데, 아르헨티나 근로자들은 700달러에 육박할 정도였다.

강성 노조도 아르헨티나 정부가 몰락하는 데 일조를 했다. 1999년 12월 취임한 페르난도데라루아 대통령이 재정건전성 우선 정책을 펼치자 2001년 7월까지 전국적인 파업이 6번이나 벌어졌다. 그해 10월 총선 참패로 데라루아 정책은 동력을 잃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2001년 당시 사상 최대 규모였던 1000억달러의 국가부도(모라토리엄)를 선언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이후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채무조정을 하며 국제금융시장 복귀를 노렸지만 원리금을 모두 갚으라며 엘리엇 등 벌처펀드들이 제기한 소송에 패해 2014년 2차 디폴트를 맞기도 했다.

그리스의 국가실패는 더욱 치명적이다. 기득권층을 위한 비포용적 경제제도가 성장동력을 앗아감과 동시에 양극화까지 심화시켰다. 결국 관광업·해운업 위주 산업구조, 탈세로 커진 지하경제, 공무원 조직과 연금 확대 등 누적된 모순은 2009년 재정위기 때 폭발하고 말았다. 이미 복지 확대로 텅 빈 나라 곳간과 방만한 국가 운영은 경제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탄력성(resilience)' 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결국 2010년 구제금융 신청 이후 지금까지 그리스는 채권단의 긴축 요구와 국민의 반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서민들만 희생되고 있다. 우선 제대로 된 경제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하면서 그리스는 지하경제 규모만 키웠다. 세금을 내지 않는 그리스 지하경제 비중은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인 관광업종에서는 현금으로 돈을 받고 소득을 신고하지 않는 탈세가 관행화됐고, 해운회사들은 조세회피처에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선박을 발주하고 운영했다. 설상가상으로 전통적으로 제조업 기반이 약했던 그리스는 유로존 편입 이후에는 환율 방어장치마저 사라지면서 제조업을 키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경제성장률은 1971∼1980년 연평균 4.2%에서 2005∼2015년 0.02%로 급전직하했다. 지난해에는 오히려 GDP가 1년 새 0.05% 후퇴한 것으로 그리스 통계청은 추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이후 그리스 정부는 구조조정과 성장동력 회복을 통해 정면돌파하기보다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민 불만 달래기에 치중했다.

포퓰리즘 정책 중 최악은 성장률 추락과 높은 실업난을 공공부문 인력 확충이라는 기형적 해법으로 풀었다는 점이다. 공공부문 전체 인력의 4분의 1이 불필요한 인력이란 추정이 나올 정도였다. 공공부문 종사자 숫자가 점차 늘고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기득권이 되면서 자신들을 위한 포퓰리즘 정책을 늘렸다. 공무원, 법조인을 비롯한 사회 기득권층은 엄청난 연금과 가족수당, 국가의료 서비스 혜택을 받지만, 시간제나 계약직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은퇴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은 연금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베네수엘라는 원유 수출만 믿고 산업 구조조정을 등한시하다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베네수엘라의 흥망성쇠는 국제 유가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전체 수출의 96%, 재정 수입의 50%, GDP의 30%가량을 석유에 의존한다. 유가가 높으면 벌어들이는 수입이 많지만, 그 반대면 나라 곳간이 비게 되는 것이다. 21세기 남미 포퓰리즘의 대명사 격인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1999~2013년)는 소위 원자재 '슈퍼 사이클'이 도래했던 시기와 맞물린다. 차베스 정부는 고유가를 등에 업고 2003년부터 '볼리바리안 미션(Bolivarian Mission)'이라 불리는 각종 사회복지 사업에 나섰다. 국영 석유회사 PDVSA가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무료 보건 시스템, 주택 건설 프로그램, 스포츠·문화 이벤트 등을 펼쳤다. 퍼주기식 무상 복지로 대중들의 환심을 사고 정권을 부양한 탓에 베네수엘라는 2006년부터 재정 적자 상태로 돌아섰다. 하상섭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교수는 "차베스 정부는 쿠바 의료진을 불러와 무료 의료 서비스를 하고, 무상 교육사업도 2개나 했지만 모두 재정만 투입하고 방만하게 운영했다"며 "정책이 정권 유지나 차베스 대통령의 지지세력을 규합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국운은 차베스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집권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내리막에 들어섰다. 이는 국제 유가가 떨어지기 시작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석유 가격이 호황기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자 당장 국가 차원에서 쓸 수 있는 돈이 말라갔다. 경상수지는 2014년부터 적자가 났고, 외환보유액은 2008년만 하더라도 350억달러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말에는 110억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수출 외에는 산업 기반이 취약해 각종 공산품은 물론 금융 서비스 등을 해외에 의존한다. 유가 하락으로 석유 수출이 직격탄을 맞다 보니 내수용 수입도 급감해 국내 물가가 치솟으며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476%에 달했다. 현지에서는 올해 1600%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예상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베네수엘라 정부는 헛발질을 했다. "서민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가격 통제' 카드를 빼들었지만 역효과만 불러왔다. 베네수엘라 근무 경험이 있는 기현서 전 주칠레 대사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망가진 건 시장 경제를 포기했기 때문"이라며 "가격을 통제하면서 민간 기업들이 생산 원가를 맞출 수 없어 쓰러졌고, 정부는 그런 기업을 살리는 게 아니라 공장을 몰수하는 형식으로 보복하며 악순환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디폴트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김권식 국제금융센터 신흥국팀장은 "베네수엘라는 단기 외채 만기가 돌아오면 석유를 팔아 갚아왔다"며 "'언 발에 오줌누기'식 미봉책인데, 언제까지 가능할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시리즈 끝>

[기획취재팀 = 서동철 기자 / 전정홍 기자 / 김규식 기자 / 김세웅 기자 / 이승윤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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