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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대우조선, 이 다음 손 더 벌리면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것"

입력 2017. 04. 03. 03:01 수정 2017. 04. 0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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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B산업은행 회장 이동걸

[동아일보]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결혼 33주년’이라는 에세이를 써 2009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연설문이나 기념사도 직접 작성하며 직원들과 소통을 강조한다. 2016년 2월 취임식 플래카드에 e메일 주소를 적어 넣어 화제가 됐다. 그는 “처음에 반응이 없어 의아했다. 요즘엔 육아 고민부터 조직에 대한 쓴소리까지 e메일로 들어온다. 듣기 거북한 얘기를 한다는 건 대화가 시작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박용 기자
《 KDB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69)은 2월 9일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대우조선해양에 국민 혈세가 더 투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 달도 안 돼 말이 달라졌다. 이 회장은 지난달 23일 “대우조선의 위험 요인을 보수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점, 대단히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2015년 4조2000억 원에 이어 1년 5개월 만에 다시 2조9000억 원의 신규 자금을 대우조선에 투입해야 한다는 ‘구조조정 청구서’도 내밀었다. 최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집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발표 2주 전부터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이동걸의 명예는 죽어도, 국가 위기는 벗어나야 한다’고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취임 후 1년 2개월이 됐다. 사면초가 상황 아닌가.

“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역량 면에서 부족한 게 많다고 느낀다. 워낙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일이 많다. 어느 쪽도 산은이나 제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직원들도 섭섭해한다. 굉장히 외롭고 힘든 고난의 길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헤쳐 나가려고 한다. 40여 년 금융인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

―대우조선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이렇게까지 ‘수주 절벽’이 올지 상상도 못 했다. 세계 1위 조선·해운업 분석기관인 클라크슨 리서치도 예상하지 못했다. 취임 후 ‘국민 혈세를 쓰지 않겠다’고 했는데, 결국 써야 할 상황이 됐다. 굉장한 자괴감이 들었다. 대우조선이 잘못되면 국가 경제에 59조 원의 피해가 오는 상황이었다.”

대우조선은 4월 4400억 원의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있다. 이 회장은 “선수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아 오려고 2월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을 해외 선주들에게 보내고 배 인도와 잔금을 미루고 있는 선주인 소난골에 협상팀을 보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대우조선이 법정관리에 가더라도 17조 원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누구 말이 맞나.

“금융 분야에서만 예상 손실액이 22조 원이다. 피해 추산액 논쟁을 벌일 만큼 상황이 한가롭지 않다. 지금은 국가적 리스크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부터 생각해야 한다. 지난해 말 현재 대우조선의 수주 잔량이 114척, 340억 달러어치 남아 있다. 투입된 돈만 32조 원이다. 돈을 더 보태 배를 완성해 내보내면 27조 원을 받을 수 있는데, 여기서 멈추면 고철 값만 남는다. 경남 거제 창원 등지의 관련된 5만 명의 일자리와 1300개 기자재 회사의 운명도 달려 있다. 어떤 비난이나 질책이 있더라도 이를 지키는 게 산은의 역할이다.”

“한진해운 백서 기록으로 남길 것”

―말이 자주 바뀌니 불신이 커진 거 아닌가.

“산은이 대책이 없다고 하는데 우린 파이널 대책까지 갖고 있다. 이걸 다 오픈하면 시원하겠지만 구조조정 전략이 협상 중인 해외 선주에게 모두 공개될 수 있다. 다만, 이번에 조선업계를 ‘빅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체제에서 ‘빅2(현대중 삼성중)’ 체제로 간다는 결론 부분을 공개했다. 빅2 체제로 가는 다운사이징, 소프트랜딩이다.”

―1년 5개월 전 자금 지원을 결정할 때처럼 지난해 4분기(10∼12월) ‘대규모 부실 털기’와 ‘자금 수혈’이 반복됐다.

“(대규모 부실은) 회계법인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본 측면이 있다. 무조건 50점으로 때렸다가 나중에 70점이 나오면 어물쩍 넘어가겠다는 건가. 최대한 리스크를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금융 당국에 지정 감사인제 폐지 등을 건의했다.”

―한진해운은 왜 포기했나.

“한진해운이 남아 있었을 때 국가 경제에 미칠 피해도 생각해 봐야 한다. 한진해운은 세계 7위 회사이며 6500억 원의 부채가 있었다. 오너가 있는데, 국가가 이 빚을 다 갚아 줄 수는 없다. 지금은 비난이 있지만 3, 4년 뒤엔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12% 정도였다. 현대상선 점유율이 4.9%에서 현재 7.6%로 올라왔다. 해운동맹인 2M과 시너지가 나면 점유율 12%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평가를 말하는가.

“물론 물류대란 대처 등에 미숙한 부분이 있었지만 예상대로 석 달 만에 진정됐다. 한진해운 직원 1300여 명 중 1000명이 재취업했다. 선박도 인수됐다. 언젠가 이런 부분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진해운 구조조정에 대한 백서를 준비하고 있다. 훗날의 시각이 아닌 현재 시각으로 이 문제를 정리해 놓자는 것이다. 백서를 바로 공개하진 않을 것이다.”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권력 비선실세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 일을 처리하면서 비선실세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 여러 전화를 받았으나 압력이라고 느낀 적도 없다. 난 뱅커(금융인)다. 정치적 외압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정치적 문제인지 감조차 없는 사람이다. 한진해운 처리는 건전하게 정부와 논의하며 결정한 것이다.”

―현대상선을 먼저 살려놓고 보니 한진해운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거 아닌가.

“아니다. 한진 측과 협상하면서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거지’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압류가 될 것이 뻔한데도 배를 출발시켰다. 대마불사(大馬不死)를 믿고 ‘시중은행 출신 이동걸이 아무것도 모르는 소릴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찌 됐든 STX조선해양 현대상선 한진해운이 해결됐다. 대우조선만 혼미한 상태로 남았다.”

―대우조선 정상화를 위해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를 어떻게 설득한 건가.

“2015년 산은, 한국수출입은행이 지원을 주도한 것은 당시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이젠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해당사자가 모두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 국민연금이나 회사채를 갖고 있는 분들의 섭섭함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힘이 들더라도 동의해서 국가적 재난을 막아야 한다. 2년 뒤 대우조선이 소프트랜딩해서 모두 함께 사는 쪽으로 가기 위한 것이니 믿고 함께 가줬으면 한다.”

―사채권자들은 산은의 감자(減資) 등을 먼저 요구하고 있다.

“산은은 작년에 이미 감자를 했다. 지난해 산은 손실이 3조6000억 원이었는데, 이 중 3조 원 이상이 대우조선 손실이다. 우리도 고통이 컸다. 그래서 산은 직원들, 이사회를 설득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 산은에 ‘너희는 손해 안 보고 우리만 손해 보라는 거냐’고 따질 단계는 지났다.”

“대우조선, 법정관리도 존재하는 방안”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대우조선에 추가 지원이 더 필요할 수 있으니 법정관리로 가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이 마지막 지원인가.

“그렇게 믿는다. 더 뭐를 하자고 하면 산은 수은은 물론이고 관계 당사자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안이 선택적으로 있을 수 있는데 (법정관리는) 하나의 존재하는 방안일 수 있다.”

―국회 국정조사 때도 잠수함이라도 건조해 달라고 했다.

“걱정만 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없다. 이번에 조선업도 도와주고 국방력도 강화해 보자. 방위성금이라도 모금하자는 거다. 이런 얘기를 7, 8개월 사이 수도 없이 했다. 바보 같은 얘기인지 모르지만 동해 한 척, 서해 한 척씩 항공모함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떤가. 우리가 이기는 방법은 우리 스스로 힘을 갖는 것이다.”

―혈세를 투입해 결국 해외 선주 좋은 일만 한다는 비판도 있다.

“해외 선주 협상 대표단이 매일 한국 뉴스를 챙겨 보고 선수를 친다. 대우조선이 2월 유동성 확보에 나선다는 말이 나오니까 갑자기 척당 1억 달러씩 깎아 달라고 요구하더라. 우리가 급할 것으로 보고 이런 제안을 해온 것이다. 해외 선주와의 협상은 여유를 갖고 해야 한다.”

―대우조선 자구 노력이 부족한 건 아닌가.

“대우조선 구조조정이 늦다고 하는데, 이유가 있다. 수주 잔량이 제일 많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처럼 인원을 줄이면 배를 제때 못 만든다. 대우조선은 쇄빙 능력이 있는 액화천연가스(LNG)선을 만들 정도로 실력이 대단하다. 340명이 3년간 만든 특허가 860개다. 인원을 줄여도 이런 사람들을 줄이면 안 된다. 조금만 인내하고 산은을 믿어 달라.”

―대우조선에 인건비 25% 삭감을 요구했다. 노조는 4자(노·사·정·채권단)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고 있는데….

“굉장히 순진한 얘기다. 여러 일이 벌어져 있는데 그렇게 앉아 있을 상황인가. 정성립 사장에게 ‘월급 반납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노사 문제 해결을 위해 독자적으로 100% 반납 결정을 내렸다. 그걸 보고 노조가 약간 동의 쪽으로 돌아서는 느낌을 받았다.”

“상반기 수주량 16억∼22억 달러 예상”

―약속대로 2분기(4∼6월) 대우조선이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가.

“1분기(1∼3월)에 7억5000만 달러를 수주했다. 상반기(1∼6월) 방산 쪽 1척 계약이 예상된다. 선수금을 40% 받는 식으로 2척 계약도 따냈다. 현대상선이 배를 10척 주문할 계획인데, 일정 정도는 대우조선에 갈 것이다. 회계법인은 올해 수주량을 20억 달러로 예상했는데 상반기에만 16억∼22억 달러가 될 것이다.”

―산은의 구조조정 역할을 다른 데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구조조정 업무가 난해해 다른 곳에서 하기 어렵다. 국가적으로 굉장히 기여하고 있는 SK하이닉스, LG카드(현 신한카드), 현대건설 등 기라성 같은 회사들이 산은의 구조조정을 통해 건실하게 바뀌지 않았나. 실패만 갖고 얘기해선 안 된다.”

“새 정부 물러나라고 해도 이의 없다”

―새 정부에서 산은 회장의 역할은….

“새 정부가 결정할 일이며 임명권자의 몫이다. (물러나라고 해도) 전혀 이의 없다. 국가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온 거다. 다른 자리로 ‘점프’하겠다는 생각으로 오진 않았다.”

―내부 승계 프로그램이 있나.

“내부에서 회장이 나오면 좋을 것이다. 이 조직을 잘 알고 기업 구조조정을 잘 아는 사람이 맡으면 좋다. 역량 면에서 충분하다고 본다. 승계 프로그램은 구조조정 등 다른 일 때문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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