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식빵의 역사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2017.04.0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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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요즘 동네마다 식빵만 파는 가게가 생기고 있다. 식빵 전성시대다. 이것저것 많은 빵과 과자를 갖추는 게 보통의 전통적인 제과점이자 제빵점이었다. 장비와 노동이 많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런 시장은 거개 대형 프랜차이즈 회사가 먹어버렸다. 개인 제빵사들이 한 가지 품목만 다루면서 비용을 줄이고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식빵전문점으로 나서고 있는 셈이다. 큰 욕심 안 부리고 적게 버는 대신 더 많은 개인의 자유를 누리려는 새로운 가치관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는 식빵의 원조 국가 중의 하나인 일본의 영향이 작용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 모델이었던 영국을 통해 빵을 받아들인다. 이때 식빵이 등장했다. 식(食)빵이라는 일본어(‘쇼쿠팡’) 자체에 그 역사가 들어 있다. 간식으로 먹는 달콤한 빵의 대척점에 있는 빵이란 뜻이다. 식빵은 일본의 근대와 개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나중에 건빵이 제조되고 군국주의의 식량이 되어 악명을 떨친 것도 아는 바와 같다. 일본의 빵 문화는 한국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근대가 식민지를 통해서 강제 이식된 것처럼. 해방 후 적산(敵産)이 된 제과점이 우리 현대 제과제빵 역사의 시작이 된 건 물론이다. 새로운 제빵 세대들이 유럽에서 빵 문화를 직수입하기 시작한 2000년대 전까지는 그랬다.

옛날, 미제장수가 드나드는 부잣집 친구네 가면 땅콩버터가 있었다. 식빵에 발라먹으면 최고였다. 마가린을 듬뿍 바르고 설탕을 왕창 뿌려서 먹는 방법도 있었다. 씹을 때마다 설탕 가루가 사각거렸다. 한때 ‘곱빼기’라는 이름의 빵이 있었다. 공장제품이었는데, 식빵의 양 옆면 그러니까 갈색으로 탄 부분만 세 장을 넣어서 파는 ‘빅사이즈’ 빵이었다. 보들하고 하얀 빵은 두 장을 겹쳐서 잼을 발라 파는데, 이건 어차피 값어치가 덜 나가는 부위여선지 세 장이 들어 있었다. 배고픈 시절에는 역시 양이 최고. 인기 있었던 식빵으로 기억한다. 부언하지만, 사실 갈색 부위의 양면 식빵이 제일 맛있는 부위다. 빵은 기름을 넣어 굽게 되는데 갈색으로 타면서 ‘마이아르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고기나 빵 등을 맛있게 만드는 과학적 방법이다. 제과점에서 식빵을 먹는 법도 있었다. 요즘 같으면 턱도 없을 일인데, 대여섯명의 청소년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자르지 않은 식빵 한 덩어리를 시킨다. 포크를 하나씩 들고 찢어낸 식빵에 설탕을 찍어 먹었다. 돈 안되는 손님이 와도 아무 말 없이 빵을 내주었던 그 시절의 마음씨 좋은 주인들 생각이 난다.

전 대통령의 구치소 수감 후 이틀 연속 아침식사로 식빵이 배급되었다고 한다. 구치소 납품용의 거친 빵을 어떻게 넘기셨나 모르겠다. 부디 그 식빵 맛에 익숙해지시길 바란다. 우리는 범죄혐의자에게도 적절한 식사를 제공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프랑스 혁명기 마리 앙트와네트(‘말이 안통하네트’가 아니다)가 했다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란 발언은 실은 케이크가 아니라 ‘브리오슈’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식빵의 원조다. 식빵을 두고 두 여인의 운명이 다시금 겹쳐진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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