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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미세먼지 대처, 중국 탓만 말라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입력 2017. 04. 0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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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세먼지 예보에서 ‘좋음’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다. 관련 기사마다 중국과 중국인들이 한순간에 증발하는 게 소원이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고, 요즘처럼 미세먼지를 마시느니 차라리 방사능 먹는 게 낫겠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도 제기됐다.

주변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우리 국민들은 집단적인 무력감을 경험하고 있다. 거의 매일 미세먼지 공습에 시달리다보니 천재지변처럼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부는 이런저런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그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미세먼지 비상사태의 본질은, 마스크 착용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자조와 낭패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태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미세먼지 농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배출량과 기상조건이다. 이 중 오염물질의 대기확산을 결정하는 기상조건은 신의 영역에 속한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 기압 등을 조절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 밖 문제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미세먼지를 내뿜는 배출원들을 신속하게 틀어막는 것이다. ‘소리 없는 살인자들’이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을 활보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명백한 인재다.

우리가 미세먼지 문제를 천재지변으로 받아들이면서 체념하는 것은 왜일까. 미세먼지 문제의 주범은 중국이라는 단정적인 믿음 때문이다. “중국에 말도 못하고 국내차·발전소 탓만 하는 정부” “중국이 주범인데 정부는 눈치만” 등 요 며칠 사이 기사 제목들이 이를 입증한다. 우리가 점점 더 중국 탓만 하게 된 데는 사드 배치로 악화된 한·중관계도 있지만 환경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얼마 전 환경부는 미세먼지 발생의 국외요인 기여율이 86%라고 발표해 비난의 화살이 중국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시민들은 합리적이다.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정부가 중국 탓이라는데 국내 배출원에까지 시비를 걸어야 할 이유도 여유도 없다. 그래서 정부가 비상저감조치 발령 요건을 완화해도, 서울시가 미세먼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노후경유차의 진입을 제한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주범인 중국은 그대로 놔두고 공범 수준도 못되는 국내 배출원들만 닦달한다고 오히려 비난을 쏟아낸다. 이렇듯 정부 정책과 시민들의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심각한 괴리는 정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환경부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았던 지난 3월21일 하루의 분석결과로 국외요인 기여율을 86%로 산정한 사실을 뒤늦게 실토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하루 분석 결과가 갖는 제한적인 의미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미세먼지 주범은 중국이라는 도식은 이미 국민들의 의식 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한국 정부가 오염의 원인을 중국 탓으로 돌려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지적은 뼈아프지만 새겨들을 만한 것이다.

미세먼지 공습에서 벗어나려면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야 한다. 그간의 조사 결과를 보면 바다 건너에서 미세먼지를 내뿜는 중국의 공장과 발전소들의 영향은 매우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린 아직 국내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 양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중국발 미세먼지 기여도가 60%니 80%니 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시민들이 미세먼지 지옥에서 국민들을 건져낼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자고 한다. 미세먼지 문제의 말끔한 해결은 차기 대통령 임기 내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원인 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섣부른 데이터를 쏟아내거나 화석연료가 문제라면서 석탄화력발전소는 추가로 짓는 이중적인 태도만큼은 다음 정부가 꼭 버렸으면 한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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