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열전구 아버지' 에디슨이 울겠네

입력 2017. 4. 7. 03:03 수정 2017. 4. 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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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 전기회사'가 모태인 美GE, 가정용 전구사업 매각하기로
'더는 아버지 세대 회사 아니다' 선언
IBM-듀폰 등 시대변화 맞춰 변신.. '뿌리'사업 버리고 주력업종 전환

[동아일보]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에게 백열전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의 결정체였다. 1093개의 특허를 갖고 있는 에디슨이 백열전구의 상용화와 대중화를 위해 쏟은 정성은 유명하다. 탄소필라멘트가 빛을 내는 전구에 최적이란 사실을 발견할 때까지 6000개가 넘는 물질을 실험했다. 스스로 “이건 수천 번의 실패가 아니다. 전구 발명을 위한 수천 번의 단계일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1931년 숨졌을 때 전국의 미국인들은 전깃불을 깜빡거려 위대한 발명왕을 추모했다.

에디슨은 미국 대표 제조업체 제너럴일렉트릭(GE)의 공동창업자이고 GE의 뿌리는 이 백열전구 사업이다. 그러나 GE는 ‘프로메테우스의 불’ 이후 인류가 발견한 ‘2번째 불’이라는 칭송을 받던 이 백열전구의 스위치를 영원히 내리려 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 보도했다. 전구 사업 중 상업용 발광다이오드(LED) 부문만 유지하고 가정용 전구 사업은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이를 위해 투자은행들과 사업 매각 관련 협의를 시작했다는 얘기다. 매각 예상 가격은 5억 달러(약 5650억 원)라고 신문은 전했다.

WSJ는 “GE의 전구 사업 매출은 상업용 LED까지 포함해도 22억 달러(약 2조4860억 원·지난해 기준)로, 전체 매출의 2%가 채 되지 않지만 GE의 모태가 에디슨이 만든 전기회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정용 전구 사업의 상징성은 매우 크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GE가 가정용 전구 사업의 매각을 추진하는 것은 2015년부터 본격화한 사업 재편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의미는 ‘이제 GE는 더 이상 아버지 세대의 회사가 아니다’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GE는 최근 몇 년 사이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사업 부문을 차례로 매각했다. 소비자금융에서 손을 뗐고, 부동산 사업도 접었으며, GE의 상징이었던 소비자가전 사업도 지난해 중국의 최대 가전제품 업체인 하이얼그룹에 매각했다. 현재 GE의 핵심 비즈니스는 발전기 터빈, 항공기 엔진, 의료보건장비, 기관차 등에 집중돼 있다.

경제 전문매체 ‘마켓워치’ 등은 “1892년 세워진 GE가 100년 넘게 건재한 이유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서, 때로는 시대를 앞서서 끊임없이 변신해 왔기 때문”이라며 “이번 (창업자 에디슨의) 전구 사업 매각도 생존을 위한 변신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GE는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의 30대 대기업 중 유일하게 100년이 넘은 기업이다. 이 지수는 기업 실적이 부진하면 30대 명단에서 제외하는데 GE는 1907년 이래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생존과 성장을 위한 변신의 몸부림은 GE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니다. 미국 IBM은 2005년 PC 사업을 중국 레노버에 매각하는 등 하드웨어(HW) 중심에서 소프트웨어(SW)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한 지 오래다. 글로벌 선두 화학기업 듀폰은 자신들의 ‘뿌리’와도 같았던 섬유와 화학 사업을 정리한 뒤 종자, 효소 등 차세대 농생명공학 부문 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독일 지멘스 역시 휴대전화와 가전 등 전통 사업을 버리고 에너지, 헬스케어, 도시 인프라 등으로 주력 사업을 전환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과감한 변신은 국내 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한 한국 경제는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유, 석유화학, 조선, 철강 등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1980년대 반도체, 1990년대 휴대전화, 2000년대 디스플레이 등 가뭄에 콩 나듯 하던 새로운 ‘스타 산업’은 2010년대 들어 그나마 자취를 감췄다.

개별 기업들로 보더라도 사업 전환을 시도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1990년대 음료 사업을 정리하고 중공업회사로 거듭난 두산이나 2014, 2015년 화학 계열사를 모두 매각한 삼성 정도만 거론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해외 경쟁사들이 발 빠르게 새로운 사업으로 옮아가는 사이 정체돼 있던 국내 기업들은 결국 떠밀리듯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의 대응이 한발 늦었던 데에는 노동시장의 지나친 경직성과 새로운 산업을 실현하기 힘든 규제 문제 등도 원인이 된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 김창덕·황인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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