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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다큐] 내 자식이 태어나도 살 만한 나라입니까

입력 2017. 04. 10.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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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학력 여성'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황당한 연구 발표가 나와 국민의 공분을 샀다.

지난해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지역별 가임기 여성 수를 기재한 출산지도도 논란이었다.

하씨는 "지금이 아니면 평생 출퇴근에 급급해 단절된 세상에 사는 아빠가 됐을 것"이라며 "짧지만 아이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육아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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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접 겪은 출산·육아 이야기

[서울신문]최근 ‘고학력 여성’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황당한 연구 발표가 나와 국민의 공분을 샀다. 지난해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지역별 가임기 여성 수를 기재한 출산지도도 논란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정부가 저출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며 여성을 그저 ‘애 낳는 기계’ 취급을 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실제 국민들이 겪고 있는 출산과 육아는 어떤 모습일까.

박지혜씨가 가방에 임산부 배려 배지를 달고 배려석 앞에 서 있었지만 35분 거리의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에게 좌석을 양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핑크색 임산부 배려 배지 찼지만…양보는 없죠

핑크색 임산부 배려 배지를 눈에 띄게 가방에 걸었지만 양보해 주는 이는 없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임신 29주 차인 박지혜(30·인천 계양구)씨는 ‘좌석을 배려받은 적은 단 한 번’이라고 말했다. 양보해 달라는 말도 쉽지 않다. 70대 할아버지가 배려석에 앉은 임신부를 폭행한 뉴스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임신이 벼슬이냐’ 등의 각종 언어폭력을 자주 경험했다.

박씨가 그동안의 입원 진료비계산서를 꺼내 그동안 든 비용을 기입하고 있다. 그 주변에 뱃속 아이의 사진들이 펼쳐져 있다.
산부인과 전문병원인 서울 중구 제일병원에서 산모들이 대기하고 있다.
제일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출산지원금 50만원은 정기진료만 받아도 ‘0’

정부에서 나오는 출산지원금 50만원은 정기진료만 받았는데도 30주 전에 이미 소진했다. 지자체 보조금은 재량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크다. 박씨는 “똑같은 세금을 내는데 지역마다 지원이 너무 달라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롯데마트에 근무하는 하성진(37·경기 수원시 영통구)씨는 배우자 출산으로 1개월간 의무육아휴직을 받았다. 하씨는 “지금이 아니면 평생 출퇴근에 급급해 단절된 세상에 사는 아빠가 됐을 것”이라며 “짧지만 아이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육아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현이가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외할머니와 놀이학교 버스를 기다리며 행인들 사이에 쪼그려 앉아 있다.
김남희씨가 직접 작성한 초등학교 1학년생 딸의 하교 후 시간표를 확인해 보고 있다. 김씨의 퇴근시간에 맞춘 일정에 학원과 버스탑승 장소, 전화번호 등이 꼼꼼하게 채워져 있다.

●4년 전 입소 신청한 어린이집 대기 순번은 85번

4살 이현이는 매일 아침 외할머니와 어린이집 대신 놀이학교 버스를 기다린다. 4년 전 입소 신청한 어린이집 대기 순번은 85번에 머물러 있다. 맞벌이 중인 엄마 김서희(36·서울 강동구)씨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이현이의 번호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 놀이학교에 등록해야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올해 초등학교에 딸을 입학시킨 워킹맘 김정희(36·광진구)씨는 지난주 내내 오후 1시에 하교하는 아이의 스케줄을 짜느라 머리를 싸맸다. 흉흉한 세상에 아이 혼자 하교하도록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고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혼자 놀게 둘 수도 없었다. 친구들처럼 학원을 보내려 했더니 시간이 다 다른 것이 문제였다. 결국 아파트 알림 게시판에서 ‘등하원 도우미’를 구했다. 도우미는 김씨가 작성한 스케줄에 따라 아이의 등하원을 도와줄 것이다.

손익상씨가 놀고 있는 두 딸 옆에서 빨래를 개고 있다.
하성진씨가 아내와 함께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아들의 발을 만져보고 있다.

●육아휴직 신청한 아빠 “사회 편견과 맞닥뜨려”

깔깔거리며 놀이를 하는 두 딸 옆에서 손익상(38·송파구)씨는 빨래를 갰다. KT&G 글로벌본부에 근무하던 그가 지난 3월 육아휴직을 신청하며 맞닥뜨린 건 사회의 편견이었다. 주변에서는 “회사에 무슨 일 있냐, 경력단절로 승진이 누락될 거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손씨는 휴직 전 마지막 회식자리에서 “상사와는 문제가 없다고 직접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며 웃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에게 은밀히 다가와 육아휴직 절차를 물어본 이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손씨는 제도에 앞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3년간 주재원으로 지냈던 러시아에서는 유모차를 끈 엄마가 문 앞에 서거나 난간에만 다가가도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달려와서 도와줘요. 이런 사소한 일화에서 아이와 엄마에 대한 사회 전반적 태도와 인식이 한국과 다르단 걸 느꼈죠.”

지난해 혼인율과 출산율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선을 한 달 앞둔 가운데 후보들은 앞다퉈 출산육아 공약을 내놓고 있다. 차기 정부는 실효성 없는 출산율 정책을 되풀이하지 말고 근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사회구조적인 인식과 제도를 갖춰 달라는 것이 산모와 가족들의 바람이다. 각자 다른 상황에서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하나였다.

“‘이곳에서 내 자식이 태어나도 살 만하다’고 느낄 때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글 사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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