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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 80% 폐쇄" 씨티은행, 금융판 뒤흔들다

김신영 기자 입력 2017. 04. 13. 03:02 수정 2017. 04. 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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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전례 없던 과격한 구조조정]
- 은행 "온라인 강화" 노조는 반발
126개 지점을 25개로 축소.. 직원들은 전화·디지털 업무로
- 은행들 몸집 축소기에 돌입했나
지점 축소는 세계적인 추세.. "AI에 밀려나나" 은행원들 동요

은행 지점 5개 중 4개를 폐쇄하기로 한 한국씨티은행의 결정이 노사(勞使)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씨티은행이 지난달 '디지털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126개인 지점을 25개(기업 전문 영업점 제외)로 대폭 줄이는 '차세대 소비자금융 전략'을 발표하자 노조가 강력히 반발한 것이다. 씨티은행의 대폭적인 지점 축소는 한국금융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운 급진적이고 과격한 조치이다. 과거의 산업혁명이나 기술 진보가 공장 노동자 등 단순종사자의 일자리에 타격을 줬다면, 몰려오는 4차 산업혁명(인공지능 등 정보통신 기술과 다른 산업의 융합으로 일어날 사회 변혁)의 파도는 화이트칼라(지식 노동자)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은행원'의 일자리까지 휩쓸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노조는 '강력 반발'

씨티은행이 지난달 27일에 발표한 차세대 소비자금융 전략은 디지털 서비스를 강화하고 지점을 대폭 축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금융 소비자들이 많은 서비스를 디지털 채널을 통해 이용(씨티은행은 95%)하고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 영업점을 지금처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씨티은행은 이를 위해 서울에 있는 지점 49개를 13개로, 지방 지점 56개는 8개로 통합하는 등 지점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당시 브랜드 카니 소비자금융그룹장은 "은행업은 이제 영업보다 디지털이 중요하다"며 은행의 무게 중심을 지점에서 온라인으로 옮길 것임을 분명히 했다.

노조의 반발은 전략 발표 약 일주일 후인 이달 초에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지난 4일 직원을 대상으로 한 은행 측 설명회에서 지점 직원을 기존의 콜센터와 유사한 전화·디지털 응대 업무로 재배치한다는 계획이 공개된 게 기폭제가 됐다. 씨티은행 노조관계자는 "회사는 '폐점'이 아니라 '통합'이라고 강조하지만 문을 닫는 지점 직원의 대다수를 콜센터로 옮기겠다는 게 회사가 내놓은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점에서 일하던 정규직 직원에게 그동안 계약직 직원들이 해오던 콜센터 업무를 맡기는 '인력 재배치'는 사실상 퇴직을 유도하려는 회사의 '꼼수'라고 노조는 주장한다. 씨티은행 노조 조합원들은 11일부터 본점과 주요 지점 앞에서 점포 폐지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며 회사 측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씨티은행 사측 관계자는 "폐점 직원을 다시 배치하려는 부서인 '고객가치센터'(걸려오는 고객 문의 처리), '고객집중센터'(카드론 등 금융 상품 홍보)는 미래의 디지털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신설하는 거점 부서이지 기존의 콜센터와는 다르다. 그리고 WM(고객 자산 관리) 담당 업무로도 많은 직원을 재배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원도 몰아내는 디지털 혁명… "씨티에만 그칠까?"

금융권은 씨티은행이 진행하는 초유의 실험과 노조의 반발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로 상징되는 '대형화'로 진행돼온 금융업의 '진화'가 디지털 혁신을 맞아 급진적인 몸집 축소기(期)에 돌입했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A 시중은행의 차장은 "요즘 젊은 직원들끼리 '우리가 은퇴하기 전에 은행원이라는 직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며 "대중을 위한 오프라인 영업을 사실상 접겠다는 씨티은행의 방침에다 인터넷 전문은행 출범(4월 3일)까지 겹쳐 자조감 섞인 불안이 확산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오프라인 지점을 파격적으로 줄이는 은행권의 '급진적 다이어트'는 해외에선 이미 몇 년 전부터 진행돼 온 트렌드다. 영국의 로이즈은행은 100개, RBS는 158개 지점을 최근 폐쇄키로 했다. 미국 컨설팅사 '오피마스'가 2025년까지 전 세계 은행원 23만명이 사라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지난달 내놓기도 했다.

대표적인 '질 좋은 일자리'인 은행원까지 인공지능 등 '기계'에 자리를 내줄지 모른다는 전망은 안 그래도 일자리가 줄어드는 한국 사회에 공포를 드리우고 있다. 씨티은행의 조치가 국내 금융권 전체에 곧 닥칠 운명을 보여주고 있다는 두려움이다. 2014년 말 6556개, 2015년 7445개로 증가하던 한국의 은행 지점 수는 지난해 말 7280개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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