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 AI '왓슨'에 궁금한 네 가지

김치중 입력 2017. 4. 20.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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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5일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 암센터 내 다학제 진료실에서 ‘왓슨’을 활용한 첫 진료 장면. 대장암 환자 조태현(62)씨가 왓슨 치료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 제공

요즘 국내 의료계의 화두는 단연 왓슨(Watson)이다. 왓슨은 IBM의 암 치료용 인공지능(AI) 솔루션. 가천대길병원 등 벌써 국내 대형병원 5곳이 들여와 이용 중이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왓슨의 ‘족집게 진료’에 암 환자들이 매료되고 있다는 평가가 쏟아지면서 암 환자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빅5’ 병원의 독주도 끝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치료의 책임 소재, 환자 정보누출 등 풀어야 할 숙제도 상당하다. 왓슨 열풍이 의료계에 던지고 있는 4가지 질문을 짚어봤다.

질문1. 왓슨은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왓슨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다. 왓슨은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법을 추천하는 역할을 할 뿐, 치료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은 인간 의사의 몫이다. 이는 IBM이 가천대 길병원에 제공한 ‘왓슨 학습방법’을 봐도 알 수 있다. 학습방법은 왓슨에 대해 ‘의사가 환자 치료 시 고려해야 할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제시하는 진료지원 시스템’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는 “왓슨이 인간의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말했다.

왓슨은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의료기기도 아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왓슨은 치료 장비가 아닌 진단 장비에 포함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건 지금까지의 상황일 뿐이다. 왓슨의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적 인식이 바뀐다면 미래엔 상황이 달라질 여지가 충분하다. 지난해 말 IBM 관계자는 미국의 한 학회에 참석해 “몇 년 뒤에는 기술적으로 왓슨이 미국 의사면허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언젠가 왓슨 같은 AI 기기가 의사 지위를 인정받아 의사 면허를 받는 시대가 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질문2. 왓슨의 진단은 정확한가

왓슨의 진단 정확도를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로선 인간 의사 진단과의 ‘일치율’이 유일하다. 왓슨을 도입한 인도 마니팔 병원이 최근 3년간 유방암ㆍ대장암ㆍ직장암ㆍ폐암 환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간과 왓슨의 진단이 일치할 확률은 78%였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왓슨을 도입한 가천대 길병원 이언 AI 정밀의료추진단 단장은 “길병원의 경우 인간의사와 왓슨의 진단 일치율이 75%였다”며 “왓슨은 계속 진화하고 있어 의사들에게 최상의 치료법을 제시할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치율이 곧 정확도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장은 “왓슨의 정확성을 어디에 근거해 판단할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지 않았다”며 “국내 의료기관들이 정확성을 검증하지 않고 왓슨을 사용하고 있어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주한 서울의대 교수는 “임상에서 인간 의사가 선택한 치료법과 왓슨이 선택한 치료법의 차이와 결과를 재검증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왓슨의 성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치율 역시 아직은 암종별로 차이가 크다. 마니팔 병원의 경우 직장암은 85%에 달했던 반면, 폐암은 17.8%에 불과했다.

질문3. 왓슨 진단 책임 소재는?

길병원의 경우 의사와 왓슨의 진단이 달랐을 때 환자 80%가 왓슨의 진단을 따랐다고 한다. 그런데 왓슨이 제안한 진단을 따랐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누가 져야 할까.

왓슨이 의사가 아닌 만큼 문제 발생 시 왓슨 진단을 따랐다고 해도 환자를 진료한 의사에게 최종 책임이 부여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책임을 묻는 게 간단치는 않다.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대표인 이인재 변호사는 “왓슨이 제공한 치료법을 사용했다 치료에 실패해도 치료과정에 문제가 없으면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반대로 왓슨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의사 소신대로 치료했다가 문제가 발생해도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치료했다면 과실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왓슨의 기술이 더 발전하면 왓슨이 의사들의 책임회피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의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왓슨의 진단을 마치 ‘신이 내린 진단’처럼 믿는 환자에게 당당하게 의사 소신대로 치료하겠다는 말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며 “왓슨이 하자는 대로 하면 적어도 책임소재는 피할 수 있어 왓슨의 결정에 따를 의사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질문4. 왓슨, 의료정보 빼간다?

왓슨을 도입한 국내 의료기관들은 IBM이 운영하고 있는 ‘왓슨 클라우드’ 서비스에 접속해 환자정보를 입력해야 왓슨의 치료방법을 제공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왓슨에게 유방암 환자 치료법을 제공받기 위해서는 ▦성별 ▦나이 ▦몸무게 ▦생리여부 ▦과거수술여부 ▦조직ㆍ유전자검사 결과 등을 입력해야 된다. 이 때문에 의료정보는 물론 개인정보까지 유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가천대 길병원 이언 단장은 “의료법에 따라 환자의 이름,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는 길병원 내부에서 보관하고 있고, 왓슨 클라우드 서비스에는 환자를 특정할 수 없는 증상, 나이 등 비식별 정보만 입력하고 있다”며 “환자 동의를 받아 진행한 만큼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환자정보 축적에 대한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김민섭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은 “의료정보는 ‘민감정보’로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며 “의료기관에서 왓슨 서비스 이용 시 환자정보를 비식별화해 송부한다 해도 재식별이 가능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기관에서 환자 동의를 받았다고 하지만 생명이 위태로운 암 환자들에게 형식적으로 동의를 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의료정보 해외 제공에 대한 법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mailto: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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