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향신문

5년 전과 다르다, 부정선거 막아내는 시민의 힘

백철 기자 입력 2017. 04. 22. 16:25 수정 2017. 04. 22. 16:28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경향신문]
지난 2월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원회에서 열린 19대 대선 개표사무 참관단 첫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투표지 분류기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시민단체, 지난 총선부터 본격 활동… 광역단체별 수천명 참여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제작한 영화 <더플랜>은 잊혀진 줄 알았던 투표지분류기에 대한 비판여론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더플랜>이 인터넷에 공개된 이후 전국 각지에서는 19대 대선에서 투표지분류기를 쓰지 말고 수개표만으로 개표를 해야 한다는 기자회견이 이어지고 있다. 투표지분류기를 비판하는 여론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나오고 있다. 선거감시 시민단체인 ‘시민의 눈’의 회원들은 대체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한편, 보수인사들이 모인 부정선거국민감시단도 지난 4월 7일 투표지분류기 사용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실 투표지분류기의 조작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결론이 나왔다. 18대 대선 직후인 2013년 1월, 선관위는 진선미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공개 시연회에서 18대 대선 개표과정을 재연했다. 3개 투표구에서 2000표씩 총 6000표가 투표된 상황을 가정한 뒤, 투표함 개함부터 개표 결과 확정까지 전 과정을 일반에 공개했다. 한영수씨 등 18대 대선 선거무효소송을 진행한 이들은 “기계 사용 자체가 불법”이라며 항의했다. 시연 도중 분류표와 미분류표의 합계가 잘못 계산되는 일도 있었다. 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 어떤 기자가 발견해 정정됐다. 시연회를 통해 투표지분류기의 성능에 문제가 없음이 입증되자, 투표지분류기를 문제삼는 여론도 점차 줄어들었다.

이후에도 선관위는 보도자료와 블로그를 통해 나름 18대 대선 부정선거 주장에 대답해 왔다. 2014년부터는 투표지분류기뿐만 아니라 로지스틱 함수, 개표상황표 조작, 불성실한 수개표 의혹 등 여러 가지 의견에 대해 시리즈물 형식으로 해명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영화 <더플랜>서 투표지 분류기 비판 여론 물론 부정선거론자들이 음모론만 펼치는 것은 아니다. 투표소 직접 개표 방식의 경우 귀담아 들을 부분도 있다. 국회에서 수차례 선거관리제도 개혁 토론회에 참석한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투표소 직접 개표 방식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이 교수는 “선거부정 의혹도 줄이고, 개표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국회에 법안이 올라가 있는데 국회가 결단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현행 제도는 투표가 종료된 투표함을 개표소로 이송해 한꺼번에 개표한다. 선관위는 투표소 참관인과 개표소 참관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참관인들이 피로를 느끼지 않고 충분히 감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선관위는 투표소 직접 개표의 경우, 구·시·군 단위 선관위가 개표를 관리할 수 없고, 개표장이 분산되면서 보안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부정선거가 벌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있다.

이 교수는 투표소 참관인과 개표소 참관인의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투표소 참관인은 눈 앞의 투표함이 자기 지역의 투표함이라 꼼꼼히 살피지만, 개표소 참관인들이 개표소에 모이는 모든 투표함에 같은 정도의 관심을 줄 수가 없다”며 “여러 번 선거 참관인으로 활동한 경험과 다른 참관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실제로 개표 참관인들이 자기가 관심 갖는 지역의 개표가 끝나면 집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참관을 제대로 하려면 모든 투표함의 개표가 완료될 때까지 남아있어야 하지만 자정 무렵이 되면 몇 명만 남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더플랜>의 제작에 참여한 김현승 18대 대선 부정선거 진상규명 범국민연대 대표는 투표지분류기에 대한 선관위의 지나친 자신감이 오히려 반발감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관위는 <더플랜>에 대한 4월 19일 입장문에서 분류기는 관리자 권한이 있는 사람만 접근할 수 있고, 위·변조된 투표지분류기는 작동하지 않도록 보안이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외부 통신망과 분류기가 연결되지 않아 조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인터넷 보안업체 대표이기도 한 김 대표는 “투표지분류기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기계가 외부 침입에 100% 안전하다는 것은 증명할 방법이 없다. 해킹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보안이 있어도 있으나 마나한 것”이라며 “투표지분류기가 완벽한 보안을 지키고 있다는 선관위의 주장은 전 세계의 해커와 보안전문가들에게 비웃음을 살 만한 말”이라고 말했다.

■선관위 “완벽한 보안·투명한 개표” 주장 부정선거를 말하는 측에서 주장해온 18대 대선 투표용지 공개검증에 대해서 선관위는 수용 입장을 밝혔다. 선관위는 <더플랜>에 대한 입장문에서 자신들이 18대 대선 투표용지를 보관하고 있으며, <더플랜> 제작진의 요구가 있다면 제3의 기관을 통해 투표지 현물을 검증하자고 밝혔다. 김현승 대표는 제3의 기관이 아니라 법정에서 투표지를 검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문병호 전 의원의 사례처럼 법원의 명령으로 투표지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도 대선 무효소송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법원이 주체가 되어 검증하는 것이 법적으로 타당하다”며 “검증의 대상인 선관위가 검증의 주체로 나서는 방식의 검증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선관위 측은 “투표지와 이미지 스캔자료 모두 봉인된 상태로 보관하고 있다. 과거 구로구 투표함 사건 검증과 같은 방식을 취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아직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선관위를 불신하고 있지만, 18대 대선 이후에는 그 전에 비해 선거의 투명성이 확보됐다고 할 수 있다. 2014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총선에서는 ‘부정선거’를 외치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지난 5년간 선거제도가 꾸준히 변화해 왔기 때문이다.

일단 참관인 제도가 바뀌었다. 과거엔 정당과 후보자들만 참관인을 추천할 수 있었지만, 지난해 총선부터는 일반인들도 개표 참관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선관위는 전국에서 2235명의 참관인을 모집했지만, 신청자는 모집 대상의 5배를 넘었다. 투표용지도 달라졌다. 2012년 대선에서는 후보자별로 칸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 미분류표를 두고 어느 후보 쪽에 가까운지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4년 지방선거부터는 사전투표 제도가 도입됐다. 2011년엔 특정 세력이 의도적으로 교통정체를 유발시켜 투표율을 낮췄다는 ‘터널 디도스’ 의혹이 있었다. 하지만 사전투표 제도로 ‘터널 디도스’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졌다.

무엇보다 5년 전에 비해 가장 달라진 점은 부정선거 감시를 전문으로 하는 시민단체 ‘시민의 눈’의 존재다. 지난 총선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시민의 눈은 교육을 받은 참관인들이 조직적으로 참관을 해야 선거감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시민의 눈 등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참관인으로 참여하면서, 일반인들은 잘 몰랐던 개표 현장의 분위기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시민의 눈 텔레그램 소통방에는 각 광역단체별로 수천 명이 참여할 정도로 분위기가 뜨겁다.

4월 6일 서울 중구 자유총연맹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관권선거 꼼짝마’ 캠페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선을 3주가량 남긴 시점에서 시민의 눈은 선거감시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 작성을 완료했다. 시민의 눈의 참관인 교육 매뉴얼은 참관인의 행동지침과 관련한 법령까지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시민의 눈에서 작성한 사전투표함 참관 매뉴얼을 살펴봤다. 시민의 눈은 참관인들에게 투표가 끝난 사전투표함이 보관장소로 이동할 때까지 참관인들이 따라붙으며 동영상으로 촬영할 것을 권하고 있다. 투표함 보관이 끝난 이후에도 조를 짜서 외부 침입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지 감시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경찰 순찰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처법까지 소개하고 있다.

62페이지에 달하는 개표 참관인 매뉴얼은 시민의 눈 활동가들이 개표 참관을 하면서 느꼈던 작은 팁까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시민단체의 감시활동은 개표 시작 전부터 시작한다. 미리 개표소에 도착해 개표장의 구조를 파악하고, 개표소에 해당하는 지역구의 총투표자 수 등을 확인하는 것이 감시활동의 시작이다. 이후 참관인들끼리 분류기마다 최소 2명, 심사·집계부마다 최소한 2명 등 철저하게 참관업무를 분담한다. 특히 분류기에서 나온 표를 사무원들이 수개표를 통해 제대로 확인하고 있는지 꼼꼼히 살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선관위에서 참관인들에게 비협조적일 경우에 대한 매뉴얼도 준비돼 있다. 공직선거법 181조는 참관인들이 개표 내용을 1~2m 거리에서 참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외부 해킹에 대비해, 선거 사무원들의 기기에 네트워크가 연결된 상태에서 업무를 보는 일은 없는지 살피라고 교육하고 있다. <더플랜>을 제작한 김어준 총수도 4월 12일, 영화를 상영하기 직전 관객들에게 시민의 눈과 같은 부정선거 감시 시민단체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기도 했다.

선관위는 여러 가지 의혹에도 불구하고 선거 개표는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지분류기를 없애고 수개표를 하라는 주장이 있지만, 사실 이미 개표소에서 수개표를 다 하고 있다. 개표 사무원들도 지지하는 후보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특정 후보에게만 유리하게 개표할 수가 없다”며 “무엇보다도 수많은 개표 참관인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설령 투표지분류기가 조작되는 일이 있어도 다음 단계에서 충분히 문제를 적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어준 제작 영화 <더플랜> 믿을 만한 내용인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제작한 영화 <더플랜>은 통계학자의 연구를 통해 18대 대선에서 미분류표가 계획(plan)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하여 기존의 18대 대선 개표부정론과 차별점을 보였다. 영화가 인용한 논문(‘마스터플랜 1.5’)은 전희경 미국 조지아서던대 역학(疫學)부 교수, 현화신 캐나다 퀸즈대 수학통계학부 교수 등 5명의 저자가 지난 4월 6~9일에 걸쳐 열린 미국 중서부정치학회(MPSA) 연례 학술대회의 포스터 세션에서 발표한 것이다. <더플랜>에 나온 ‘마스터플랜’ 논문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투표지분류기가 후보별로 미분류표를 같은 확률로 분류해낸다면, 후보 간 미분류표와 분류표의 비율은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현 교수는 이를 “K값은 1”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 2012년 대선의 K값 평균은 1.5에 가까웠다. 미분류표 내에서 박근혜 지지율이 분류표 내에서 박근혜 지지율보다 높았다는 의미다. 영화에서 현 교수는 이런 현상이 “디자인과 플랜”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영화가 4월 14일 인터넷에 공개된 이후 여러 가지 반론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고령층 가설이다. 고령층의 절대다수가 박근혜를 지지했고, 나이가 많을수록 투표지에 정확한 기표를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K값이 높게 나온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고령층 가설에 대해 영화에 출연한 김재광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교수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영화에서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 비판적인 코멘트를 많이 남겼다. 그는 “노인층이 많은 지역이라고 무효표가 더 많이 나온다는 증거가 없고,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3.3%라는 잘못된 미분류표(유효표로 최종 확정된 미분류표) 비율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공개 토론으로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런 논의로 더 중요한 본질이 묻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고령화된 지역일수록 미분류율이 높다고 주장한다. 4월 19일 입장문에서 선관위는 “미분류 처리된 투표지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연령이 특히 중요한 요소”라며 “18대 대선 결과를 보면 노년층이 많은 지역의 미분류율은 5% 초반대로 청년층이 많은 지역보다 1.8배 높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마스터플랜’ 논문의 학술적 가치 자체는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한 통계학자는 ‘마스터플랜’ 논문에 대해 “피어 리뷰(논문에 대한 다른 전문가들의 평가과정)를 한 것도 아니라 학술적 검증을 거친 것으로 볼 수 없다. 논문 자체의 가치는 별로 없다”며 “논문이 제시한 자료로 논문의 가설이 설명되긴 하나, 그것이 유일한 가설이라고 주장할 순 없다”고 말했다. ‘마스터플랜’ 논문이 발표된 MPSA도 포스터 세션 논문의 학술적 가치는 높게 보지 않고 있다. 윌리엄 모건 MPSA 사무국장은 <주간경향>에 보낸 이메일에서 “포스터 세션의 경우 대부분 대학원생이 발표하는 것이며, 학자의 발표는 25% 정도다. 보통 논문을 제출할 때 500 단어 정도의 시안(proposal)을 제출하고 완성본을 제출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500 단어 설명을 근거로 학회에 논문을 받아준다”고 말했다. 또한 모건 사무국장은 해당 논문이 MPSA의 학술지에 실린 사실이 없다며 “(‘마스터플랜’ 논문은) 학회에서 발표된 다른 5000개의 논문처럼 피어리뷰를 거치지 않았고, 논문의 발견이 입증된 것도 아니다. 학회 발표는 보통 학회지 게재의 첫 번째 단계”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우리가 학회에서 발표된 5000개의 논문의 내용을 지지(endorse)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 달라”고 말했다. 한편, ‘마스터플랜’ 논문의 주저자인 전희경, 현화신 교수에게 이메일로 문의했으나 두 사람은 답하지 않았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