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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간병 파산'에 내몰리는 이들..연간 간병비 '수조원'

송인호 기자 입력 2017. 04. 23. 08:15 수정 2017. 04. 2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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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7살 두 아들을 둔 A씨는 인천에서 세차장을 운영하며 월 2백~2백50만 원 정도를 벌고 있습니다. A 씨의 아내도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는 맞벌이 부부로 두 내외의 한달 수입은 3백50만원~4백만원가량입니다. 여유롭지는 않지만 대출금 등을 갚으며 빠듯하게 생활하고 있었는데 최근 큰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팔순 노모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병원에서 보호자가 24시간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부가 일을 그만둘 수 없어 간병인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비용이 하루 7만원으로 한 달이면 2백만원 넘게 들어갔습니다. 한두달이면 되겠거니 했는데, 벌써 6개월이나 흘러 슬슬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형제들이 있어, 나눠 부담하지만 맏형인 A씨는 월 100만원을 노모 간병비로 내고 있습니다. 간병비 부담에 당장 급하지 않은 아이들 학원비까지 줄였습니다.

A씨의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취재 도중 만난 50대 아내 B씨는 암투병을 하는 남편 간병을 위해 하던 일을 그만뒀는데, 소득이 끊어지다보니 생계를 꾸릴 수가 없어 집을 팔아 월세로 옮겼습니다. 그나마 간병비를 절약하고 남편을 직접 돌보는 일에 보람도 느끼지만 B 씨는 장기간 간병으로 몸이 쇠약해지고, 앞으로 살길이 막막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우울증을 겪고 있습니다.

'간병 파산'이 점점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2015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1세로 높아졌지만, 건강하게 사는 기간은 73.2세로 약 9년의 격차가 발생합니다. 2011년부터 발생한 치매 황혼살인 판결문 18건을 분석했더니 배우자를 보살핀 기간은 평균 5.7년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족 간병을 하다 심신이 지치고 급기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점점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를 5년간 돌보던 남편이 자신도 암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얼마 전 서울에서 발생했습니다. 아내도 곁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생활고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던 남편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겁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09년 연간 간병비 규모를 추정한 자료를 보면 대략 2~4조 원 수준입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간병인 고용 단가가 높아졌기 때문에 전체 간병비 규모는 더 커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연간 수조 원이 서민의 호주머니 속에서 간병비로 지출되는 셈인데 간병이 길어지면 저소득층은 가족 간병을 위해 다니던 직장까지 관둬야하는 '간병 실직'에 내몰리게 됩니다. 간병인 이용 가정의 80% 가량이 월 소득 2백만 원 이하로 수입이 고스란히 간병비로 들어가는 겁니다.

문제는 적지 않은 간병비를 지출하고도 제대로 된 간병인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미 간병인의 대부분이 중국 동포들입니다. 이들은 환자가 직접 고용하거나 요양병원 등에서 환자 여러 명을 돌보는 형태의 사적 간병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영세한 사설 간병업체 회원으로 등록한 뒤 일정 회비를 내고 병원을 소개받아 취업하게 됩니다. 통상적으로 회비 10만원을 내면 간병복을 지급받고 간단한 이론교육을 받은 뒤 3~4일 가량 병원에서 실습을 하면 그만입니다. 이들이 제대로 된 간병교육을 받았는지, 과거 범죄경력이 있는지 조회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얼마 전 경남 창원에서 폭력전과가 있는 간병인이 해고에 앙심을 품고 요양병원을 찾아가 폭력을 휘두른 일도 발생했습니다.

간병인이 중국 동포 일색인 건 열악한 근로환경과 오래 체류하지 못하는 이들의 현실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양병원을 가보면 한 달이 멀다하고 간병인이 바뀝니다. 부천의 한 요양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중국동포 간병인은 "병원 측이 월급을 3개월 후에 주겠다고 해서, 간병인들이 파업을 하고 있다."며 기자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걸 알고 병원 측이 고의로 임금지급을 미뤘던 겁니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사결과 간병인의 70%는 사설 간병업체의 알선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들은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병원에서 간병인을 별도로 고용해야 하는 나라는 선진국 가운데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가족 등에 의한 간병 또는 환자가 고용한 간병인에 의한 간병이 일상화되어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랜 기간에 걸친 개혁과정을 통해 현재는 입원과 관련한 모든 간호간병 서비스는 원칙적으로 의료기관이 하도록 제도를 바꿨습니다. 충분한 간호인력 확보와 간병서비스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인구 1천 명 당 활동 간호사수는 OECD회원국 평균이 9.1명이지만, 우리나라는 5.2명에 불과합니다. 스위스, 덴마크 등 서구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3분의 1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도 2013년부터 병원이 간호와 간병을 모두 책임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건강보험에서 입원료를 40% 가까이 올려주고 건강보험에서 80%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환자의 부담은 줄고, 만족도는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확산 속도는 더디기만 합니다. 올해 의료기관 1천 곳, 병상 4만 5천 개로 확대할 목표를 세웠지만 간호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목표의 3분의 1정도 밖에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간호인력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리면서 지방 중소병원의 간호 인력난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결국 충분한 간호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지방 중소병원은 폐업 위기까지 내몰리고, 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더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일수록 '간병 파산'에 노출될 위험이 큽니다. 과도한 간병비와 의료비 지출로 인해 이들이 삶까지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국가가 간병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질의 간호인력 확보와 처우개선이 당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장기적으로 병원에서 일하는 사적 간병인을 없애고 의료기관에서 간병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당장 시행하기 힘들다면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사적 간병인에 대한 관리를 어떻게 할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의료기관이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송인호 기자songst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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