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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 게임에 'MSG'를 뿌려라, 팍팍

구둘래 입력 2017. 04. 24.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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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감수성 입는 게임들

게임에 '메이킹 센스 오브 젠더'
'젠더감수성 더하라' 요구 담아

여성 게이머 향한 성희롱과 차별
캐릭터 신체 부각..과한 노출 비판

개발자 성비 남성 압도적 높아
여성 성적 대상화하고 수동적 그려

페미 게이머 모인 '전국디바협회'
스티커 제작 등 활동 '여혐'에 맞서

[한겨레]

전국디바협회 스티커들.

“게임에 엠에스지를 쳐라.”

17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제1회 게임문화포럼’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장민지 박사는 ‘게임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의 젠더 감수성’ 발표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며 힘주어 말했다. 장 박사가 말한 엠에스지(MSG)는 ‘메이킹 센스 오브 젠더’(젠더 감수성으로 만들라)의 줄임말이다. 여성 노출과 성 대상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되던 게임산업에서 ‘젠더 감수성을 더하라’는 요구가 이용자와 개발자 양쪽에서 울려나오고 있다. 장 박사는 “2016년 조사에서 미국 게이머의 여남 비율은 41 대 59였다. 여성 이용자를 배려하는 게임 개발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오버워치’ 이용자들의 성희롱 예시. 전국디바협회 제공

“오빠 소리 한번 해봐”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기에 이런 요구가 나오는 걸까. 지난해 세계적인 게임업체 블리자드가 출시한 ‘오버워치’는 다른 게임들보다 여성 캐릭터의 비중을 높이고, 나이 등에서도 다양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실제 게임은 한국의 여성이 처한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는 ‘전장’이다. 청년참여연대가 지난 3월 게임 이용자 44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오버워치 내 성희롱·성차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게임 내 성차별·성희롱이 있다고 응답한 여성이 무려 91.2%에 이른다. 계속되는 ‘실제 사례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86.5%가 “그렇다”고 답했다. 음성채팅 기능을 활용해 목소리를 내면, “여자냐”부터 시작해 “오빠 소리 한번 해보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신음소리를 들려 달라”거나 “몇살이냐”고 묻고는 만남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여자랑 같은 편이니 지겠다”고 비하하거나, “힐(다른 캐릭터를 지원하고 에너지를 채워주는 캐릭터 카테고리 ‘힐러’)이나 하세요” 등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저 일부 ‘남성 게이머’의 행태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여성 캐릭터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건 대부분의 게임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문제다. 게임이용자 ㄱ씨는 “방어력이 높은 옷일수록 여성 캐릭터의 노출도가 높아진다”고 말한다. 게임 이용자 김지영씨도 “내장이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키에 적은 몸무게를 설정한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어린 캐릭터에게 수영복 코스튬이나 바니걸 의상을 판매하는 등의 이벤트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난해 7월 출시된 서든어택2(넥슨)는 ‘야동’을 연상시키는 캐릭터 디자인으로 거세게 비판받다 한 달 만에 서비스 종료를 공지했다. 4년간 300억원을 투자한 게임으로서 ‘수치스런 일’로 기록된다. ㄱ씨는 “예전 게임은 모두 ‘공주’를 구하러 가는 ‘남성 플레이어’의 이야기였다. 요즘은 플레이어에 여성 캐릭터도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성평등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남자라는 점이다. 콘텐츠진흥원 <2016 게임백서>를 보면, 2015년 게임업계 종사자 수는 3만5445명인데 이 가운데 남성은 82.3%나 되는 반면, 여성은 17.7%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여성은 기획자나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디자이너 비중이 높다. 게임의 내용을 결정하는 이가 남성이다 보니 게임에 성평등이 끼어들 여지 자체가 별로 없는 셈이다.

이용자들 깃발을 들다 이런 현실에 균열을 내려는 여성 이용자들의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지난 촛불집회에서 주목받은 깃발 가운데 하나가 ‘전국디바협회’다. 게임 이용자 김지영씨가 들고 나갔다. ‘디바’는 오버워치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다. 본명은 ‘송하나’, 한국 프로게이머다. 2070년이 배경인 오버워치에서 디바는 국군 특수부대에서 최첨단 로봇을 조종하며 괴수와 싸운다.

이 디바에 착안한 전국디바협회는 페미니스트 게이머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한국이 지금처럼 성불평등한 사회라면, 미래에도 송하나 같은 인물이 현실에선 나올 수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여자도 게임하기 좋은 세상, 곧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촛불집회에 동참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날 행사엔 “함께일 때 우린 강합니다”, “신념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말라” 등의 손팻말을 들고 나갔다. 여성들의 게임 피해 사례도 수집한다. 게임의 여성혐오 실태 등을 알리는 ‘헬페미게이머들을 위한 굿즈’를 만들려고 크라우드펀딩도 진행 중이다. 이곳에서 제작한 페미게이머 스티커 세트에는 “여자치고가 아니라 그^^냥 잘하는 거야”라고 적혀 있다.

이런 움직임의 의미를 높이 산 블리자드 게임디렉터 제프 캐플런은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연 비디오게임제작자 대회 연설을 통해 “전국디바협회는 우리가 강조하고 싶었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의 가능성을 보라’는 취지와 맞아떨어진다”고 특별 언급하기도 했다.

‘수상한 메신저’.

여성 개발자의 여성 게임 게임 자체를 여성이 만들면 변화는 더 빨리 올 것이다. 한국 여성 개발자가 만든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수상한 메신저’는 엠에스지 효과를 볼 수 있는 예다. ‘수상한 메신저’는 지난해 7월 출시돼 7개월 만에 60여개국에서 250만여명이 내려받았다. 태그 등을 통해 사용자 집단의 선호도를 분석한 ‘텀블러 팬덤메트릭스’에서 지난 1월 ‘세계 인기 게임’ 3위를 기록했다. 1위는 오버워치, 2위는 ‘포켓몬고’였다.

이 게임의 개발자 이수진 체리츠 대표는 보기 드문 여성 기획자·프로그래머다. 이 대표는 “여성이기 때문에, 같은 여성 이용자가 게임에서 무얼 바라게 될지 상상하고 공감하는 것이 쉬웠다. 남성이 게임을 통해 느끼고자 하는 것이 성취감, 승리감이라고 한다면 여성은 편안함, 관계 구축의 재미를 느끼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연히 내려받은 앱을 통해 꽃미남들이 가득한 단체채팅방에 들어가 대화를 나누고, 캐릭터와 호감을 쌓아가며 연락을 주고받는 형식의 이 게임은, 이 대표의 말처럼 ‘성취’가 아니라 ‘관계 구축’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게임회사 여직원들>의 여기혜씨 기획안.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 역시 여성인 리애나 프래칫이 게임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의상에 극적인 변화가 일었다. 주요 부위만 가리던 의상이 모험에 실용적인 의상으로 바뀌었다.

포털 다음 웹툰 <게임회사 여직원들>에서 여기혜 기획자는 여성의 환상을 충족시키는 게임을 상상한다. 주인공들이 다니는 ‘식빵소프트’는 남녀 성비가 4 대 3이다. 작가 마시멜은 인터뷰에서 “실제 게임회사에는 여성이 훨씬 적기 때문에 이를 역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주의 정보생산자조합 페미디아는 블로터닷넷에 기고한 글에서, 여성 게이머가 ‘무성’의 존재로 머무르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여성’임을 드러내는 순간 비로소 게임의 영역에서 여성은 존재할 수 있다. 여기에는 내가 ‘게임을 즐길 수 있고’, ‘여성임을 밝히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게끔 만들어줄 수 있는 사회적인 조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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