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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이야기]엄마착취, 이대로 괜찮은가요

입력 2017. 05. 03. 10:09 수정 2017. 05. 0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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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1979년부터 82년까지, 다섯 명의 ‘김지영’이 한국정치에 묻다

아이는 세상 무엇보다 귀한 선물이었지만, 아이를 낳은 뒤 점점 ‘나’는 사라져 갔다. 장래희망이 주부는 아니었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 나의 이름이자 직업이 됐다. 능숙하게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그래서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치는 엄마, 심지어는 지친 육아 와중에 잠시 짬을 내 커피를 사 마시는 엄마를 어떤 이들은 모멸적인 이름으로 불렀다. ‘맘충’. 엄마도 엄마가 처음일 뿐인데. 지난해 출간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 ‘김지영’은 말한다. “그 커피 1500원이었어. 나 1500원짜리 커피 한 잔 마실 자격도 없어?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소설은 그런 ‘세상의 절반’에 관한 이야기다.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공론화되지 않았던 이야기. 1979년부터 82년생까지, <주간경향>이 만난 다섯 명의 ‘김지영’이 들려준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업맘’은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노동 속에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상실감에, ‘워킹맘’은 아이에게 소홀하고 직장에선 남들처럼 일하지 못한다는 이중의 죄책감에 시달린다. 엄마에게만 덧씌워진 육아의 굴레는 그 엄마들의 ‘엄마 착취’로 이어진다. 직장을 다니든 그렇지 않든, 저출산이 국가적 문제라면서도 육아와 돌봄노동은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엄마’라는 멋진 이름은 이렇듯 ‘조용한 착취’의 대명사로 변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각종 저출산·보육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 한국 정치는 이런 엄마들의 고민에 어떤 답을 내놓을까. 2시간30분에 걸쳐 진행된 엄마들의 좌담을 압축해 싣는다.

누가 출산과 육아를 아름답다고만 했는가. 혼자라서 서럽고, 그래서 더 처절한 ‘독박육아’에 대한 좌담회가 4월 26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렸다. / 선명수 기자

누가 ‘워킹맘’과 ‘전업맘’을 나누나

지난해 전업주부 자녀의 어린이집 종일반 이용 제한부터 시작해 보육정책에 혼란이 많았죠. 오락가락한 정책이 엄마들끼리의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많았고요.

80년생 김지영 요새 엄마들 중에 처음부터 주부였던 엄마들은 별로 없어요. 대부분 일했던 엄마들이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는 건데, 저는 ‘전업맘’들을 놀고 있는 엄마들이라고 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라고 봐요. 주변에 아이 봐줄 사람이 없거나 시터를 못 구하는 상황이면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79년생 김지영 저도 직장생활을 하다가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일을 그만뒀어요. 저는 주변에 시댁도, 친정도 없어서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다시 일을 구하려고 했는데, 합격하고 출근 날짜도 받아놓은 상태에서 못 갔어요. 어린이집 종일반을 보내려면 취업 증빙서류를 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나오는 게 아니고 종일반도 자리가 없으면 기다려야 하는 거잖아요. 아이는 당장 2시면 끝나는데. 서류 준비하고 자리 날 때까지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거예요.

80년생 김지영 일단 아이를 확실하게 맡길 곳이 있어야 내 구직활동이 가능해지는 건데 정책 만드는 사람들이 그 생각은 못하는 거죠. 가족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경력단절 여성이 구직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그나마 재취업을 할 수 있는 엄마들 중에서도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죠. 동네에 어린이집이 생기자마자 대기를 걸었는데, 바로 앞에서 잘려서 거기 못 보냈어요. 누군가 직장맘이 동네에 이사를 오면 전업맘인 나의 점수가 뒤로 계속 밀리는 거죠. 그렇게 나의 구직도 함께 멀어지는 거예요.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죠. 무슨 엄마들끼리의 제로섬 게임도 아니고.

81년생 김지영 아이 맡아줄 누군가가 주변에 없으면, 결국 베이비시터를 고용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재취업을 해서 버는 수입이랑 시터 비용이랑 비슷하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니까.

79년생 김지영 정부가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시간제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고 하는데, 막상 잡 서치를 해보면 괜찮은 일자리는 거의 없어요. 예전에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전업주부들을 마치 집에서 놀고 먹는 사람인 것처럼 얘기했는데, 저는 너무나 현실을 모른 얘기라고 봐요. 그리고 전업주부 엄마들은 좀 쉬면 안 되나요? 직장인들도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고 커피타임도 있는데, 아이 돌보는 엄마들도 커피 한 잔씩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80년생 김지영 애 낳을 때는 애국자라고 하더니….

82년생 김지영1 저는 일하다 지금 두 번째 육아휴직 중인데, 처음엔 전업주부가 워킹맘에 비해 좀 편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둘째 낳고 보니 정말이지 일은 끝도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직장맘도 편한 건 아니에요. ‘월화수목금금금’이에요. 토요일이 연장근무고, 맞벌이를 해도 여자는 집에 오면 또 일이죠. 워킹맘과 직장맘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80년생 김지영 그런데 남자들은 또 안 그러잖아. 나도 일했는데, 마치 자기만 일한 것처럼.

81년생 김지영 어떨 때는 아침에 주방에 들어가서 오후에 나오는 느낌…. 치우고 또 차리고 다시 치우고…. 남편도 도와준다고는 하는데.

80년생 김지영 그게 왜 ‘도와주는’ 거죠? 저는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사고가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엄마만의 아이는 아닌 거잖아요.

82년생 김지영1 자기 애이기도 한데 내가 ‘봐준다’ 이런 식의 생각…. 남성이랑 여성이랑 시각 자체가 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끼리 다같이 외출할 때 신랑은 항상 자기 옷만 입고 ‘다 됐어?’라고 물어봐요. 아이들 입히고 챙겨야 하는데.

81년생 김지영 하루종일 시달리다가 잠깐 남편한테 아이 맡겨놓고 나간 적이 있었는데, 아이 운다고 영상통화로 전화하더라고요. 영상통화는 아빠들의 무기인가봐.

79년생 김지영 엄마들은 남편한테 아이들이 예쁘고 행복한 사진만 보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늘 행복하게 놀고 있는 줄만 알지.

82년생 김지영1 옛날부터 뿌리깊게 내려온 그 사고가 잘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많이 달라졌다고 하는데도 집안일은 여자 몫, 육아도 여자 몫. 그래서 전업주부란 말이 생기는 거고.

80년생 김지영 ‘전업’주부라면서 월급은 없고.

81년생 김지영 내 커피도 못 사 마시고.

82년생 김지영1 2000원짜리 간신히 마시고.

82년생 김지영2 아이를 낳기 전과 후에 달라진 게 있다면, 내 것은 모든 게 싸구려가 돼요. 모든 것은 아이 중심으로…. 나도 회사 다닐 때는 안 그랬는데.

장시간 노동의 덫… 아빠도 불행하다

81년생 김지영 아빠들이 아이들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게 문제죠. 퇴근 자체를 아이들이 잘 때 하니까. 길게 봐도 하루에 한 시간 정도?

82년생 김지영1 저희 회사에 남자 직원 한 명이 처음으로 육아휴직 신청을 했어요. 제가 인사팀에 있었는데, 팀장님이 얘는 이제 승진에 스크래치 났다고….

80년생 김지영 아이 잘 낳고 키우게 하겠다고 제도를 계속 만들면 뭐하나요. 있는 제도라도 제대로 활용해야 하는데.

82년생 김지영2 왜 스웨덴에선 ‘라테 파파’라는 말이 있다고 하잖아요. 스웨덴 아빠들이 한 손에는 라테 들고 한 손에는 아이 안고 돌보면서 키즈카페에 모여 있는 걸 최근 TV에서 봤는데, 너무 부럽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이 크면 그때는 그런 모습이 가능해질까요?

81년생 김지영 최근에 제가 아이 유치원에 보내기 힘들 정도로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남편한테 ‘오빠, 오늘 하루만 늦게 출근하면 안돼?’라고 물었는데 저한테 짜증을 내더라고요. 갑자기 어떻게 그러냐면서…. 본인도 당황스럽고 난감한 걸 알면서도 서럽더라고요.

82년생 김지영1 우리나라 직장문화 자체가 그런 걸 이해 못하니까요. 저는 사내 커플인데, 둘 다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아이가 아프거나 해서 갑자기 가야 할 때는 항상 제 몫이었어요. 연차 다 끌어다 쓰고 업무 다 못한 건 야근으로 하면서까지 그냥 제몫이더라고요.

80년생 김지영 여자들은 보통 그러죠. 내 새끼가 아픈데, 안갈 수가 없죠.

81년생 김지영 남편 회사에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데, 의외로 30~40대 워킹맘들이 그렇게 희망퇴직을 많이 한다는 거예요. 한 번 희망퇴직을 하면 몇 년치 임금이랑 위로금이랑 이런 걸 주는데, 그거 가지고 집 사거나 넓힌다고 하더라고요. 나의 경력단절로 집을 장만하는 거죠.

/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낳기 전엔 몰랐던 ‘독박육아’의 덫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라는데, 이유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여성이 직장일과 가사일이라는 이중의 노동을 떠맡아야 하는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이 더 이상 ‘합리적 선택’ 아니라는 거죠.

79년생 김지영 저도 결혼 전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어요. 이렇게 힘들 줄은…. 그래서 주변 싱글들에게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는 여건이 안 되면 낳지 말라고 권해요.,

82년생 김지영1 육아휴직 쓰고 집에 계속 있다 보니까, 그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거울 보면 짜증부터 나고. 내 시간, 나의 자리는 계속 줄어드는 것 같고. 속으로 계속 화만 쌓이고. 놀고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도 분명히 노동을 하고 있는데 주변의 시선이나 환경 자체가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하는 것 같아요.

81년생 김지영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이 보는 눈도 그렇게 변하죠.

79년생 김지영 그래서 저도 출근날짜 받았을 때 너무 좋았어요.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닌데, 나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는데….

80년생 김지영 국가부터가 집에서 아이 키우는 엄마들을 놀고 있는 사람, 돈 축내는 사람이라고 봐요. 갈수록 초조해져요. 이러고 있다가 나만 주저앉게 되는 건 아닐까.

82년생 김지영1 애들이 잘 커야 나라도 발전한다고 모두가 생각은 할 텐데, 그 애를 낳고 키우는 엄마의 감정노동이 심한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요.

81년생 김지영 정책 만드는 사람이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고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대선 때도 공보물 열심히 봤는데,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정말 정책 하나하나에 민감할 수밖에 없거든요. 어린이집 바우처 제도만 해도 엄마들 입장에선 작년에 정말 일대 혼란이었죠.

80년생 김지영 저출산정책 보면 아이를 위한 정책은 많은데 그 아이를 낳은 엄마를 위한 정책은 거의 없죠. 4대강에 쏟아부은 돈만이라도 꼭 필요한 데 제대로 썼으면 좋겠어요.

좌담 참가자 소개 엄마들의 좌담은 지난 4월 26일 경기 고양시의 한 주택에서 열렸다. 참가자 이름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따와 일괄 가명 처리했다. 이 소설의 작가 조남주는 주인공에게 1980년대 초반 태어난 여자아이들의 가장 보편적이고 흔한 이름인 '지영'에 김씨 성을 붙였다. 좌담 참가자들 역시 소설의 김지영과 엇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 >>79년생 김지영 경제학을 전공해 연구원으로 일하다 임신한 뒤 일을 그만뒀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서 다시 취직을 위해 면접을 보고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포기해야 했다. >>80년생 김지영 다섯 살, 세 살 두 아들의 엄마. 남편의 지방근무로 인해 홀로 '독박 육아'를 하고 있다. 현재 구직 중이다. >>81년생 김지영 다섯 살, 세 살 두 딸을 두고 있다. 출산 전에는 서비스업 쪽에서 일했다. >>82년생 김지영1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워킹맘. 둘째 아이 출산 후 현재 육아휴직 중이다. 직장과 친정엄마, 남편 모두의 눈치를 봐야 하는 '끼인 존재'의 삶을 뼛속 깊이 체험하는 중이다. >>82년생 김지영2 결혼 전에는 의료계 쪽에서 일했다. 첫째 아이도 힘에 부쳤는데 남편에게 1년간 '설득당한' 끝에 둘째를 낳았다. 남편이 카드값을 걱정하면 "이게 바로 네가 원하던 삶이야!"라며 분개한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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