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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슬픈 범죄] 가난 때문에.. 출산 직후 하루 한 끼로 버티는 미혼모들

이가현 기자 입력 2017. 05. 0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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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가난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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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돈이 없다고 영아를 버릴 때, 다른 누군가는 아이를 혼자서라도 책임지려고 한다. 미혼모는 계획하지 않은 임신, 친부의 외면에도 혼자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 엄마들이다. 이들에게도 경제적 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이다.

출산 직후 하루 한 끼로 버티기도

“아이가 빈혈이 있어요. 고기를 꾸준히 좀 먹여주세요.”

김지은(가명·36)씨는 지난 5일 딸 서희(가명·1)의 검진을 위해 보건소를 찾았다. 의사는 딸이 빈혈기가 있다며 고기를 매일 챙겨줘야 한다고 했다. 오는 길에 소고기 만원어치를 샀다. 한 주먹이 채 되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는 상황에서 아이에게 매일 고기를 먹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만 아껴 쓰면 힘들 일 없다고 마음먹었던 김씨는 이날 처음으로 ‘돈이 없어 서럽다’는 생각을 했다.

김씨는 미혼모다. 남자친구와 사귀다 임신했다. 나중에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혼자 키우기로 마음먹었지만 출산 직전까지도 자신이 없었다. 아이의 얼굴을 직접 보고서야 마음을 굳게 먹었다.

김씨는 허리디스크가 심해 일을 할 수 없다. 기초수급비 84만원으로 생활한다. 아이 이유식, 간식 등 식비로만 월 30만∼40만원이 나간다. 분유나 기저귀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서 도움을 받는다. 김씨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은 휴대전화 요금 정도다. 육아 스트레스가 심할 때 가끔 예능 프로그램을 유료 결제하는 게 김씨가 부리는 사치의 전부다.

이소미(가명·32)씨도 기초수급비로 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심장질환 때문에 오래 서 있을 수 없어 일하는 것은 꿈꿀 수도 없다. 다달이 정기 검진을 받아야하지만 20만∼30만원씩 드는 검진비용이 버거워 몇 달째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출산 직후에도 하루 한 끼로 버티곤 했다. 기저귀와 분유 값을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나중에야 미혼모를 지원하는 민간 기관에서 기저귀와 분유를 지원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딸 수빈(가명·7)이의 어린이집 특별활동비를 내지 못해 대출을 받기도 했다.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지만 원장은 “다음부터는 특별활동비 밀리지 마라”는 말만 했다. 이씨는 “수빈이가 미술이랑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하고 키즈카페에 가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느 것 하나 해줄 수 없어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늪과 같은 가난

직장을 구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력 단절로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데다 그나마도 미혼모라는 사실을 밝히면 채용을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수현(가명·40)씨는 6개월 전부터 동대문 의류도매시장에서 일한다. 밤 12시부터 오전 9시까지 꼬박 주 6일을 일한다. 이렇게 해서 손에 쥐는 돈은 월 200만원 정도.

한씨는 2015년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혼자 아들 서준(가명·2)이를 낳았다. 한씨는 처음에는 막막한 마음에 베이비박스에 서준이를 두고 가려 했다. 그러나 상담가가 “아이가 좋은 가정에서 자랄지, 보육원에 갈지 모르는 일”이라고 설득해 마음을 돌렸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아기를 함께 봐주기로 했다.

일을 하기 때문에 기초수급비는 나오지 않는다. 한부모 가족은 월 10만∼15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신청하지 않았다. 한씨는 “소문이 나거나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까봐 한부모 수당은 포기했다”며 “불이익을 감수할 만큼 큰 혜택도 아니어서 선뜻 신청하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최정현(가명·25)씨도 미혼모다. 최씨는 대학생 때 만난 남자친구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다. 임신 사실을 알리자 남자친구는 연락을 끊었다. 2014년 최씨는 아이를 낳은 뒤 학교를 자퇴했다.

어렵게 직장을 구했지만 월급은 130만원정도다. 아이에게만 30만∼40만원이 들어간다. 매달 붓는 적금 50만원을 빼면 최씨가 쓸 수 있는 생활비는 40만원 남짓. 최씨는 “아이가 사달라는 것 못 사줄 때, 주말에 못 놀러 갈 때 가장 속상하다”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차가운 시선도 걱정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았다가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 기초생활수급 절차를 묻는 김씨에게 동사무소 직원은 큰 소리로 말했다.

“기초수급 신청하시게요? 아니면 한부모가족 신청하시게요? 미혼모세요?”

동사무소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김씨는 마치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씨도 친정엄마의 만류에 아이 돌잔치를 하지 않았다. “미혼모인 걸 광고할 일 있느냐”는 게 이유였다. 한씨는 “저출산이 심각하다면서 왜 아이를 혼자 낳아 기르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수정(가명·31)씨는 10년간 일하던 직장을 지난해 관뒀다. 소문이 퍼져 남들이 손가락질할까봐 두려워서였다. 실제로 박씨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직장 안에서 돌았다. 박씨는 “다음 달부터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는데 엄마가 미혼모라 아이가 무시당할까봐 걱정된다”고 쓸쓸하게 말했다.

글=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일러스트=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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