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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출산은 축복인데.. '우울의 늪'에 빠진 산모들

김동우 기자 입력 2017. 05. 0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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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산후 '마음의 병'
서호석 차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지난 2일 진찰실에서 산후우울증 환자를 상담하고 있다. 차의과대학 제공

결혼 3년차인 A씨(31·여)는 3개월 전 첫아이를 출산했다. 임신 기간에는 육아서적을 읽고 태교음악도 듣는 등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막상 아이를 낳고 팔에 안으니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아이의 얼굴을 봐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이는 온종일 젖을 달라고 울어댔다. 아이를 돌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끼니도 제때 못 챙겨 먹는 날이 늘어나자 A씨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아이를 낳기 전처럼 회사에 나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현실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졌다. 온종일 아이와 씨름하며 기다리던 남편 퇴근 시간은 “야근이 있다”는 문자메시지에 뒤로 미뤄지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칭얼대는 아이를 침대에 내동댕이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출산 후 체중은 늘어났고 피부 탄력도 평소와 달랐다. 배가 들어가지 않는 데다 머리카락은 뭉텅이로 빠졌다. “나만 늙고 망가진다”는 기분에 눈물이 나고 불안을 느꼈다.

직장 스트레스도 원인

A씨처럼 분만 후 4주를 전후로 슬픔, 불안, 초조, 무기력감, 수면과 식욕 변화, 성욕 감소 등 우울 증상을 겪을 때는 산후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산후우울증이 심할 경우 “영아를 살해하라”는 환청이나 “악마가 씌었다”는 망상 등 정신병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5년 주기로 발표해 오던 정신질환실태역학조사에 처음으로 산후우울증을 포함해 지난달 13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평생 우울장애를 한 번이라도 겪은 성인 여성은 6.9%이고 이들 중 9.8%는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성인 여성 1000명 중 7명은 산후우울증을 겪은 셈이다. 특히 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하는 전일제 직장여성은 미취업 여성보다 우울증 발병률이 1.36배 높았다.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 동안 탄력적으로 일하는 부분제 취업 여성보다 2.3배 더 우울증에 취약했다.

서호석 차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산모 400명을 자체 설문한 결과 스트레스 원인의 18%가 직장 업무로 남편과의 불화(28%) 다음으로 높았다”며 “직장인 여성은 출산 휴가를 받기가 눈치 보일 뿐 아니라 받는다 하더라도 직장에서 다른 사람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으로 우울증에 더 취약하다”고 말했다.

우울하다고 말 못하는 엄마들

산후우울증의 구체적인 통계를 작성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의사가 우울증을 앓는 산모를 진료할 때 산후우울증 대신 우울증으로 진단명을 기재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산후우울증이라 볼 수 있는 ‘달리 분류되지 않은 산후기의 정신 및 행동장애’ 진료를 받은 여성이 지난해 337명이었다고 8일 밝혔다. 하지만 우울증으로 지난해 진료를 받은 20, 30대 여성 7만8148명 중 상당수도 산후우울증일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실제 산후우울증을 앓는 여성은 복지부 조사 결과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서 교수는 “출산이 기쁘고 축복받을 일이라는 사회적 통념 때문에 많은 여성이 출산 후 느끼는 정서적 변화를 잘 표현하지 못한다”며 “통계로 드러나지 않지만 15%의 여성은 산후우울증을 앓는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후우울증과 관련된 비교적 최근(2005년) 논문인 ‘한국어판 에든버러 산후 우울 스케일의 타당화 연구’는 123명의 산모를 조사했다. 그 결과 14.6%가 출산 후 6주까지 우울 증상을 경험했다. 해외 주요 논문들이 밝히는 수치인 10∼15%와 일치한다.

가족의 관심과 지지 필요

산후우울증을 드러내지 못해 제때 치료를 받지 않으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서 교수는 “산후우울증은 자연적으로 회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3명 중 1명은 1년 넘게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할 경우 재발해 가족 불화나 아기의 발달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산후우울증은 심리적 사회적 생물학적 요소들이 서로 얽혀 일어난다. 분만 후 바로 이어지는 육아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는데도 양육 부담이 집중돼 충분히 쉬지 못하면 우울증은 더 잘 발병된다. 직장 스트레스나 자아정체성 상실감 등도 원인이다. 신경전달물질 이상이나 갑상선 기능 장애,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도 산후우울증을 부른다.

우울 증상이 심하거나 만성적일 때, 과거력이나 가족력이 있을 때는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성격상 문제가 동반될 때는 정신치료를 병행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부부치료나 가족치료, 집단 정신치료 등이 시행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족의 관심과 지지가 중요하다.

산전우울증도 유의

산후우울증만큼이나 산전우울증도 여성의 건강을 위협한다. 서 교수는 “여성 10명 중 1명은 출산 전 우울함을 느끼지만 여러 신체적 불편과 겹쳐 혼동되기 때문에 덜 인식되고 덜 치료되는 경향이 있다”며 “불안과 초조, 긴장감이 최대로 증가하는 임신 7∼8개월 전후에 가장 많이 발병한다”고 말했다.

산전우울증은 출산 공포와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부담감이 원인이다. 남편에게 애정이 없는 경우는 임신 자체에 부정적일 수도 있다. 임신을 자신이 사회생활에서 이루고자 하는 성취의 장애물로 보는 여성도 있다.

산전우울증을 겪은 산모는 영양·산전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되고 술, 담배, 약물 복용 등에 빠질 수도 있어 태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산모의 스트레스에 노출된 태아들은 신경계 성숙이 지연되고 인지·정서 발달이 미숙할 수 있다.

산전우울증 예방을 위해서는 남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서 교수는 “아내가 임신 중 입덧 등으로 고통 받을 때 아내의 안정을 위해 격려와 위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며 “출산이 다가올수록 출산용품 구매 등 출산 준비 계획을 함께 논의하고 아내의 감정 기복을 포용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외되고 부담은 늘고 남성들도 산후우울증

결혼 2년차인 B씨(30)는 요즘 아내와 관계가 안 좋다. 부인이 아기 돌보는 일에 신경을 쏟아 남편인 자신에게는 소홀한 듯해 서운하다. 아이를 봐주던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며 갈등은 더 커졌다. 육아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스트레스다.

B씨는 퇴근을 해도 육아를 돕느라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어떨 때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 일부러 술 약속을 잡기도 한다. 요즘에는 부인 몰래 스마트폰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날린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함은 더해진다.

남성도 육아 책임이 늘어나며 산후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서호석 차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이가 태어난 지 5년 이내의 남성이 우울증을 앓을 확률은 아버지가 아닌 또래 남성보다 68% 높다”고 8일 말했다.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감이 지나친 나머지 부담감을 과도하게 느낄 경우 남성도 산후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아내의 관심이 아이에게만 쏠리면서 오는 소외감과 경제적 부담감도 원인이다. 서 교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성 연예인이 육아와 일을 슈퍼맨처럼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현실은 다르다”며 “남성도 여성처럼 산후우울증을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짜증이나 화를 내는 경우가 잦아지고, 직장에서의 업무 능률이 떨어지면서 결혼을 왜 했는지 후회한다고 토로하는 남성도 있다. 아이를 돌보기 귀찮아 귀가를 늦추기도 한다. 술이나 게임, 도박 등에 중독되는 사례도 있다.

산후우울증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울증을 앓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는 학업 능력이 떨어지거나 또래와 제대로 어울리지 못할 수 있다. 또 안정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성인이 됐을 때 아버지처럼 우울증을 앓을 가능성이 크다.

서 교수는 “남편도 육아 감정 위로가 필요하다”며 “남편은 기저귀 갈기, 분유 타기, 아이 안기 등 기본적인 육아를 미리 공부하면서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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