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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우리 딸을 누가 쏘라 했으까?"..발포 명령자는 미궁

입력 2017. 05. 24. 21:26 수정 2017. 05. 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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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진상 규명 - 이것부터 밝히자
(3) 발포명령자 은폐 의혹

[한겨레]

80년 5월 딸을 잃은 김현녀(82)씨가 23일 오후 광주시 중흥동 자택에서 딸 묘지 사진을 들고 있다. 정대하 기자

“지그들이 피해자라고? 지새끼가 그렇게 죽었어봐.”

80년 5월 딸을 잃은 김현녀(82·광주시 북구 중흥동)씨는 지난 23일 전두환 회고록 이야기를 꺼내자 “안 당해본 사람은 당한 사람 속을 모른다”며 한숨을 쉬었다. 딸 최미애(당시 23살)씨는 80년 5월21일 오후 1시35분 계엄군 총탄을 맞고 숨졌다. 임신 8개월째던 김씨 딸은 전남대 정문 인근 집 앞에서 영어교사인 남편을 기다리다가 변을 당했다. “딸 내외가 바로 옆집에 살았어. 학생들 교련복과 비슷한 색깔의 임산부 옷을 입었던 모양이여. 왼쪽 이마에 총을 맞았는디, 오른쪽이 다…. 피를 얼마나 흘렸던지…”

2남2녀 중 큰딸인 미애씨는 간호사로 일하다가 결혼했다. 첫 아이가 생겨서 직장을 그만뒀다. 김씨는 이달 초 딸의 제사 때 온 손자에게 미애씨 사진들을 모두 챙겨줬다.

“이번 5·18기념식엔 못갔어. (몸이 불편해) 유모차 아니면 못움직잉께. 테레비만 봤제. 대통령이 <임>(‘임을 위한 행진곡’) 그 노래 부르게 했등마. 나도 집에서 혼자 따라 불렀어. 그 노래를 부르면 여기(가슴)에 있던 뭣이 그냥 푹 내리가.” 김씨는 “딸을 군인들이 쏜 줄만 알지 누가 명령한지를 모른다”며 “내가 죽기 전에 누구인지를 (문 대통령이) 밝혀줬으면 좋겄어”라고 말했다.

임신한 딸 그날 잃은 80대 노모
“내가 죽기전 밝혀줬으면 좋겠다” 공수부대 실탄 지급 뒤 발포 속출
2군사령부 발포금지 지시는 묵살
신군부 지휘체계 별도 작동 의혹
발포 명령자 찾으려면 규명 필요 “공수여단장들 정호용 지시 따라”
95년 검찰 수사에서 증언 나와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7년이 지났지만, 당시 임산부 최씨에게 발포한 군인이 누구인지, 그 군인에게 총을 쏘도록 명령을 내린 자가 누구인지 등에 대해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5·18을 폭력으로 진압했던 전두환은 회고록을 통해 ‘나는 광주사태 치유·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 ‘계엄군 발포 명령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5·18 희생자들의 상처를 덧내고 있다.

80년 5월 21일 오후 공수여단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희생된 고 최미애씨의 영정 사진. 이상일 사진가

5·18 연구자들은 80년 5월 당시 ‘실탄 지급=발포 명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발포 명령과 관련해, 공수부대의 잔혹한 진압에 저항하는 시위가 격화됐던 80년 5월20일 밤의 광주 상황이 중요하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2007) 조사 결과를 보면, 3공수여단(여단장 최세창 준장)이 5월20일 밤 11시 광주역 앞에서 12·15·6대대에 경계용 실탄을 지급한다. 첫 실탄 지급이다. 이날 밤 12시 옛 전남도청에 있던 3공수여단(여단장 최웅 준장) 61대대(안부웅 중령), 62대대(이제원 중령)도 중대장들에게 탄창 1개씩(15발)을 분배한다.

첫 발포 사망자는 그날 밤 광주역에서 나왔다. 실탄이 배분된 뒤 3공수 12·15대대가 발포해 김재화(당시 25살)씨 등 4명이 희생됐고, 6명이 총상을 입었다. 그런데 전남·광주지역을 관할하는 2군사령부는 이날 밤 11시20분 발포 금지·실탄 통제 지시를 내렸다. 공식 지휘체계이던 2군사령부의 발포 금지·실탄 통제 지시가 사실상 묵살됐다. 이는 육군본부-2군사령부-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31사단-공수여단으로 이어지는 공식지휘체계와 달리 신군부-보안사령부-공수여단으로 이어지는 비공식 지휘체계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발포명령과 비무장 민간인 학살

계엄군 발포로 민간인 사망자가 난 뒤 신군부가 들고 나온 논리가 ‘자위권’ 발동이다. ‘군인복무규율'(대통령령·2016년 6월 폐지)의 ‘상황이 급박해 자위상 부득이 할 때’와 위수령(비상시 긴급권)의 ‘생명·신체 등을 지키는 데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다른 수단이 없을 때’를 근거로 내세웠다. 광주시 5·18 진실규명지원단 안길정 연구원(박사)은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실탄을 배분한 것은 사실상 발포명령과도 같다”고 말했다.

계엄사는 5월21일 새벽 4시30분부터 자위권 발동을 결정·논의했다. 신군부 집권을 합리화하려고 보안사령부가 낸 <제5공화국전사>를 보면, 자위권 보유 천명을 결정한 5월21일 국방부 회의엔 “주영복 (국방)장관을 비롯해 합참의장 유병현 장군,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 수경사령관 노태우 장군, 육사교장 차규헌 장군, 특전사령관 정호용 장군 등이 참석했다”고 돼 있다. 이 회의는 전날의 무차별 발포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였다.

안길정 연구원은 계엄군이 비무장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 발포한 것은 “자위권을 빙자한 학살극”이었다고 주장했다. 5월21일 계엄사가 2군사령부에 자위권 발동을 지시(저녁 8시30분)하기도 전에 민간인들이 총에 맞아 희생됐다. 전남대 인근에 살던 최미애씨가 총탄에 맞아 사망한 시각은 5월21일 오후 1시35분이다. 시민 34명이 희생된 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도 전남대 부근 발포 시각과 비슷한 5월21일 오후 1시다. 5월24일 송암마을 근처에서 차량을 타고 가던 민간인 1명이 사망했고, 효덕초등학교 놀이터에서 놀던 전재수(당시 11)군과 인근 마을 저수지에서 멱을 감던 방광범(당시 12)군도 공수부대의 총을 맞고 희생됐다. 광주시 동구 주남마을에선 공수부대의 미니버스 집단 총격(7명 사망)으로 중상을 입은 시민 2명이 즉결처분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대로 발포 명령자를 찾으려면 공수부대에 대한 비공식 지휘라인 작동 의혹부터 규명돼야 한다. 전교사 보병학교 병력이 5월24일 오후 1시55분 효천역 부근에서 이동중이던 11공수여단 부대를 시위대로 오인해 사격을 퍼부어 11공수여단 63대대 병력 9명이 희생됐고, 군인 33명이 다쳤다. 오인 사격 뒤 11공수여단은 권근립(24)씨 등 인근 마을 주민 4명을 총으로 쏴 보복 살해했다.

김순현 전교사 전투발전부장은 1995년 5·18 검찰 수사에서 “공수 여단장들이 특수부대라서인지 31사단장이나 전교사사령관보다 현지에 내려와 있던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자주 만나 상의하는 것이 사실이었고, 형식상은 정식 지휘계통에 복종하였지만 실제로는 다분히 정호용의 지시에 따랐다고 판단한다”고 진술한 바 있다. 백남이 전교사 작전참모는 2005년 5월 한 공중파 방송에서 “정호용 장군(특전사 사령관)이 와서 전교사에 별도로 사무실을 차렸다. 윤흥정(전교사 사령관) 장군하고 협력한다 하면서 자기네들끼리 지휘 통제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1995~97년 12·12와 5·18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선 신군부 쪽이 지휘체계 이원화 의혹을 부인해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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