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6월항쟁 30주년] "김승훈 신부 목숨 걸고 박종철 사건 조작 폭로"

신재희 기자 입력 2017.06.10. 05:01 수정 2017.06.10. 14:52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고개 숙이고 인사하는 시간이 길긴 하셨는데."

1987년 5월 18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는 김승훈 신부가 5·18광주항쟁 7주기 추모미사 도중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됐다"고 폭로했다.

추모미사 당일에도 대부분은 고문치사 폭로가 있을지 전혀 몰랐다.

이씨는 "김 신부님은 그때 아마 목숨까지 걸었을 것"이라며 "해당 폭로는 종교계에서 나왔기에 더 신뢰와 파급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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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간사 이명준씨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고개 숙이고 인사하는 시간이 길긴 하셨는데….”

1987년 5월 18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는 김승훈 신부가 5·18광주항쟁 7주기 추모미사 도중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됐다”고 폭로했다. 이명준(70·사진)씨도 그 현장에 있었다. 9일 당시 사건을 회상하던 이씨는 “그런 폭로가 이뤄질 줄 아는 사람은 현장에 몇 사람 없었다”며 “기자들도 다 깜짝 놀라 뒤로 넘어갔다”고 떠올렸다.

이씨는 당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간사로 학생운동 동향을 비롯해 교회 바깥 사회의 움직임을 신부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했다. 종교계와 사회를 잇는 징검다리였던 셈이다.

추모미사 당일에도 대부분은 고문치사 폭로가 있을지 전혀 몰랐다.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이 끝난 뒤 김 신부가 앞에 나서 평소보다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김 신부님은 그때 아마 목숨까지 걸었을 것”이라며 “해당 폭로는 종교계에서 나왔기에 더 신뢰와 파급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87년과 2017년의 민주화운동을 모두 지켜본 이씨는 “2017년의 ‘촛불혁명’은 30년 전 민주화 투쟁보다 한 발 더 진보한 민주주의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87년에는 시대적 특수성 때문에 시위대가 소수였고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촛불집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로워 오히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고 그는 평가했다.

그러면서 87년의 항쟁이 있었기에 30년 뒤 촛불집회가 가능했다고도 설명했다. 30년 전의 희생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성과가 있었기에 비로소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가 마련됐고 30년 뒤 촛불시민이 평화롭게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그 뒤로도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를 돕는 일을 계속해 왔다. 그는 “시대가 변했으니 참여의 형태가 달라졌다”며 종교계는 이제 시민을 돕는 작은 역할에 충실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씨는 “사제단은 여전히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종교계의 역할에 대해 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사진=김지훈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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