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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 민족주의에 젖은 '위대한 상고사'

입력 2017. 06. 2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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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우리 민족이 전세계를 선도했다” 책 <환단고기>로 대표되는 유사역사학의 계보와 주장

한국 사회는 유사역사학에 기운 ‘위대한 상고사’ 주장을 통해 불행한 근현대사의 열등감을 메우려 했다. 군사정권 시절 정부에 압력을 가해 국사 교과서에 단군신화를 넣도록 한 국사찾기협의회의 2004년 9월 토론회 모습. 연합뉴스

밤나무를 꼭 닮은 나도밤나무가 있다. 겉모습은 밤나무 같지만 열매가 열리면 정체가 드러난다. 밤과 전혀 비슷하지 않은 열매가 열리기 때문이다. 역사학과 비슷한 ‘유사역사학’이라는 것이 있다. 역사학처럼 포장하지만 그 열매는 역사학과 완전히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대학살을 ‘홀로코스트’라고 부른다. 홀로코스트가 실제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라고 하는데, 바로 유사역사학의 일종이다. 이들은 역사학적 방법을 쓰는 척하지만 사실 역사학적 방법론을 무시한 채 자기들 편한 대로 증거를 모으고 해석해 엉뚱한 결론을 도출한다. 그 결과 홀로코스트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는데 유대인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존재하고 그곳에서 살아나온 사람이 부지기수인데도 그렇게 주장한다. 마치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 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오도된 결론으로 이끄는 특출한 재주

이런 예만 들면 유사역사학을 믿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들의 주장은 반론 없이 보면 그럴싸한 경우가 태반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아주 작은, 설명할 수 없는 의문을 던지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을 오도된 결론으로 이끌어가는 특출한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유사역사학은 흔히 <환단고기>라는 책으로 대표된다. <환단고기>는 아득한 과거 우리 민족(사실 민족이란 게 그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음에도)이 전세계를 선도했다고 주장한다. 광활한 영토를 장악하고 다스린 초일류 국가라고 선전한다. 이런 선전은 왜 인기 있을까?

근본적 이유는 열등감, 그리고 열등감을 보상받고 싶어 하는 보상심리에 있다. 해방 후 일어난 전쟁은 한국 사회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파괴했고 미국이 원조해준 식량에 의존해야 했다. 미군을 만나면 초콜릿이나 껌을 달라고 쫓아다니는 일상을 겪은 사람들의 열등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마음속에 ‘사실 당신은 잊힌 왕가의 후예’라는 달콤한 속삭임은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으로 작동한다. 과거 그러한 지위에 있었다는 것은 다시 그 영광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증수표로 보인다. 꿈과 희망을 갖는 것이 뭐 나쁜가라고 생각한다.

이런 열등감, 그리고 그것을 보상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우리나라에만 있었겠는가? 소수의 강대국을 제외하면 모든 국가에 존재했다. 그 보상심리를 화려한 고대사에서 찾는 행위 역시 모든 나라에서 발생했다. 특히 열강의 침략을 받은 아시아 국가들에 이 현상은 쉽게 일어났다. 터키부터 일본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이 현상은 조금씩 변형돼 식민지 조선으로 들어왔다. 가령 터키에서 발생한 ‘투라니즘’은 터키가 전 문명의 시초이며 전 아시아를 지배했다는 사상이다. <환단고기>의 세계와 다를 것 없는데, 다만 더 일찍 만들어졌다. 투라니즘은 일본과 중국에 전파됐고 이들의 생각을 거쳐 우리에게도 전파됐다. 이 경우 항상 ‘주어’가 변화한다는 특징이 있다. 일본에선 일본이, 중국에선 중국이, 한국에서 한국이 ‘주어’로 등장한다.

주어가 왜 바뀌는가? 자민족이 최고여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 사회에서 변방이던 독일도 같은 길을 걸었다. 이들은 ‘위대한 아리안’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희생양의 자리에 유대인을 밀어넣고 증오를 통해 단합을 이끌었다. 그렇게 해서 인류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질렀다.

위대한 고대사 기초 만든 일제 부역자 문정창

유사역사학은 역사학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한국 유사역사학의 계보를 따질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인물은 이유립(왼쪽)-문정창(가운데)-안호상(오른쪽)이다. 한겨레

이것이 유사역사학이 갖는 저주다. <환단고기>에서 저주의 상대로 잡는 것은 중국이다. 이 점이 매우 특이한데 왜 일본이 아니고 중국일까? 극복해야 하는 것이 열등감의 상대여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고대부터 한민족이 가르치던 족속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 조상은 우리에게서 갈라져 나간 지류이다. 그뿐만 아니라 확장성도 없다. 일본을 점령했다 한들 일개 섬나라에 불과하지 않은가. 중국 대륙을 지배해야 전세계 지배로 확장이 가능하다.

<환단고기>는 공식적으로 1979년에 등장했고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1986년 번역본이 나오면서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유사역사학은 이 무렵 시작됐을까? 그렇지 않다. <환단고기>는 유사역사학 현상의 변곡점일 뿐 그 시작점은 아니다.

우리나라 근대 학문이 대부분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처럼 유사역사학 역시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다. 우리나라에 위대한 고대사라는 기초를 만든 사람 중 하나가 문정창이라는 인물이다.

문정창은 1899년생으로 1923년 경남 동래군 서기로 출발해서 황해도 은율군수, 황해도 내무부 사회과장(이사관)을 지낸 일제 부역자이다. 그는 해방 후 역사저술가로 활동했다. 물론 일제 부역에 따른 처벌은 전혀 받은 일이 없다. “일제가 20만 권의 책을 불태웠다”거나 “한민족이 이스라엘과 동족이며, 중국 한족의 시조인 황제가 한민족과 같은 동이족”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중국 고대사에 나오는 동이족을 모두 한민족으로 간주했다. 동이족인 소호족 일파가 서쪽으로 떠나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정착해 수메르 문명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수메르가 멸망할 때 아브라함이 살아남아 이스라엘의 시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이스라엘과 한민족은 형제의 나라가 되는 셈이다. 이스라엘과 한민족의 언어가 다른 것은 아카드 왕국이 언어를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집트 문명도 수메르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해서 세계 3대 문명을 모두 한민족이 이뤄냈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선택된 민족이라는 뜻의 ‘chosen people’이 조선 민족을 가리킨다고도 주장한다. chosen을 알파벳대로 읽으면 ‘조선’과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사역사학에서는 발음이 비슷한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예를 들면 아빠와 발음이 비슷한 인디언 아파치족은 그런 이유로 한민족의 일파가 된다.

문정창은 1975년 국사찾기협의회라는 유사역사학 단체를 결성한다. 이 결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이다.

안호상은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해방 후 초대 문교부 장관이 된 그는 학교에 군대 조직인 학도호국단을 만들었다. 그는 이승만 독재를 뒷받침하는 철학 체제인 ‘일민주의’를 만드는 데도 큰 몫을 했다. 이승만 이후에도 ‘한백성주의’라고 이름을 바꿔 일민주의를 선전하고 다녔다. 일민주의의 핵심 내용은 나치 사상과 같은 순혈주의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한 민족은 같은 한 조상의 한 핏줄을 받은 사람이라야만 한다. 다른 조상의 핏줄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들은 같은 한 민족이 될 수 없다.”

<환단고기> 한글판 대중에게 급속 전파

나라가 뭉치고 흩어지는 원인도 핏줄에 있다고 안호상은 말한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발상은 우리 민족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됐고 세계 모든 문명이 우리에게서 비롯됐다는 유사역사학적 사고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들이다.

전체주의적 사고는 자연히 나라를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1970년대 노동운동을 지원한 도시산업선교회에 대해 안호상은 “반민족적, 망국적 집단”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유사역사학의 전체주의적 사고는 극우 성격을 내포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결과를 가져온다. 1980년대 노동운동 파괴 공작을 수행한 다물민족연구소 활동도 유사역사학에 기초했다.

안호상은 1970년대 배달문화연구원을 운영하면서 유사역사가들의 정기 모임을 열었다. 이들은 박창암이 만든 월간지 <자유>를 기관지처럼 활용했다. 박창암은 만주군 간도특설대 하사관 출신으로 해방 후 군에 들어가 5·16 쿠데타에 참여한 인물이다. 후에 예편하고 군대에 납품하는 <자유>를 만들었다. 이처럼 유사역사학의 기초를 만든 사람들은 친일·극우 성향을 지녔다.

이들은 국사 교과서가 잘못됐다고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문교부(현 교육부)를 상대로 ‘국정 국사 교과서의 국정 교재 사용금지 및 정사편찬특별기구 설치 등의 조치 시행 요구에 대한 불허처분 취소청구의 소’를 제기하고 국사찾기협의회를 결성했다. 이 모임에 가담한 사람 중에는 <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한 이유립도 있었다. 이유립은 친일 단체인 조선유교회 출신으로 그 기관지 <일월시보>의 주필을 맡기도 했다. 그는 <자유>에 여러 필명으로 수많은 글을 쓰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이들은 정치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1981년에는 국회 공청회를 열게 했다. 국회 공청회에서 맹활약한 사람이 후일 <환단고기>의 번역서 <한단고기>를 출간한 임승국이다.

임승국은 1980년 5월 광주의 피가 마르기도 전 전두환을 향해 “가장 뛰어난 영단을 지닌 민족지도자”라고 칭송하며 국사광복을 가져와달라고 애걸한 사람이다. 그는 아예 대놓고 국수주의를 하자며 역사학자를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신독재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에서도 그는 ‘철학 있는 독재는 설득력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에서 히틀러를 인용하고 독일과 일본이 세계를 상대로 싸운 것을 칭송하는 듯한 발언까지 한다.

임승국이 1986년 <한단고기>를 내놓은 뒤 유사역사학의 여러 논의는 <환단고기>가 내놓은 세계관으로 수렴되기 시작했다. 이유립은 오랜 세월 <환단고기>를 전파하려 했으나 순한문으로 작성된 이 책은 파급력을 거의 갖지 못했다. 그러나 한글판이 나오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대중에게 전파됐다. 불행히도 극우 성격을 듬뿍 담고 있음에도 당시 ‘우리 민족’이라는 운동권 정서에 업혀 진보 진영에도 <환단고기> 신봉자가 나타났다.

역사학계도 “<환단고기>는 위서”

역사학계에서도 이 문제를 의식하고 “<환단고기>는 위서”라는 학문적 분석을 내놓았다. 일반인은 접하기 어려운 논문으로 만들어진 이런 분석은 오래도록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했다. 덕분에 후진국이라는 열등감을 지녀온 사람들에게 <환단고기>라는 무기를 손에 든 유사역사학은 격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현실 때문에 유사역사학 신봉자를 <환단고기>를 믿는 ‘환빠’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유사역사학을 신봉하면서 <환단고기>는 믿지 않는 경우도 있다. <환단고기> 이전에도 문정창, 안호상 등의 유사역사학 주장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계를 가리켜 식민사학이라고 비난해온 유사역사학의 정체는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현재 역사학계를 가리켜 식민사학이라고 비난을 퍼붓는 이덕일 같은 사람은 문정창을 존경하는 역사학자라고 뻔뻔하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비극적 현실에 우리는 놓여 있다. 이덕일은 초창기에는 약하게 <환단고기>의 사실성을 주장했지만 최근 세계환단학회(2016년)에 나가서 <환단고기>의 역사성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문영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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