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정동칼럼]"한국에도 난민이 있어요?"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입력 2017.06.20. 20:55 수정 2017.06.20. 21: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경향신문] 15년 전 아만(36·가명)이 한국에 올 때만 해도 그는 조국 코트디부아르에서 손꼽히는 무용수였다. 당시 나이 스물한 살. 한국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에서 장기간 아프리카 전통 춤 공연을 하게 됐다. 월 200달러를 받기로 계약했지만 손에 쥔 첫 월급은 5만원이 못 됐다. 전통음식을 만들고 식당에서 서빙을 해야 했으며 숙소에는 난방이 제대로 안되고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올랐다. 항의를 해도 비인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대우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 인권단체와 연결돼 언론에 알려지고 지루한 법적 소송까지 이어졌으나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아만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조국 코트디부아르에서 내전이 터진 것이었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아만은 지금의 남편이 된 다른 남자 무용수와 함께 난민신청을 했다. 하지만 아만의 난민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14년째 난민인정 심사와 소송을 진행 중이다.

러시아에서 온 올가(39·가명)는 피서지에서 만난 아프리카 남성과의 사이에서 혼혈아를 낳고 미혼모로 살아가고 있었다. 러시아는 인종 차별과 혼혈아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심했다. 거리에서 폭력을 당하는가 하면 급기야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올가의 집을 불태우는 일이 벌어졌다. 도시를 옮겨 다녀도 혐오와 차별을 피할 수 없어 올가는 결국 열 살 난 아들의 손을 잡고 한국행을 감행했다. 서울의 해방촌에 고작 1평 남짓한 방 한 칸을 빌려 둥지를 틀었지만 올가 모자는 “행복하다”고 했다. 차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생명만은 안전하니 “그게 어디냐”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난민신청을 했다. 첫 번째 심사 때는 탈락했지만 다행히 지난해 말 재인정 심사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에도 난민이 있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한 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난민 여성들을 만나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이를 한국 사회에 알리는 작업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한국에도 난민이 있어요?”였다. 하지만 한국에는 아만이나 올가처럼, 우리 곁에서 살고 있는 난민들이 생각보다 많다.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난민신청자는 2만명을 넘어섰다. 이 중 1만여명이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난민 인정자와 인도적 체류자와 난민신청자 등을 합친 숫자다. 정작 놀라운 사실은 한국의 인색한 난민인정률이다. 전체 신청자의 고작 3%(672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받았을 뿐이다.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에 따르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비교할 때 전 세계 난민에 대해 0%의 몫을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난민과 관련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참으로 민망한 통계다.

그렇다면 우리 곁에 와서 살고 있는 난민들마저 왜 한국인의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일까? 무관심 속에, 한국인과의 사회적 연결망도 없이 고립된 채 ‘점’처럼 박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난민으로 인정받기도 어렵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해도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필자가 만난 난민들 중 한국인과 터놓고 교류하면서 살고 있는 경우는 한두 명에 불과했다. 일터에서 한자리에 앉아 밥 먹기를 거부당하기도 하고 자녀들이 학교에서 은근히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난민은 자신의 나라에서 박해를 받아 다른 나라에 가서 권리와 보호를 요청해야 하는 사람이다. 삶의 뿌리가 뽑힌 존재인 것이다. 어려운 사람에게 권리란 “무력감으로부터 사람을 막아주는 방화벽이요, 굴욕으로부터의 보호책이어서 권리 안에 존엄성이 있다”(페터 비에리). 권리가 없는 사람은 이리저리 떠밀리고 타인의 너그러움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난민 신청이 거부된 자들은 무력하고 굴욕적이며 종속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생을 살다보면 제 뜻대로 되는 경우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어느 누구도 난민으로 살겠다고 작정하고 난민이 된 이는 없다. 보통 난민이라고 하면 동정심을 갖고 불쌍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난민은 위험한 고비를 뚫고 한국 땅을 찾아온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의연하게 묵묵히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가라앉는 배 안에서 물을 퍼낼 수는 있어도 스스로 구조할 수는 없다. 난민은 이미 우리 곁에서 살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이제 한국인도 자유와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고 이 땅을 찾아온 난민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할 때가 되었다. 때마침 인권, 다자 외교를 국제사회에서 이끌어 온 분이 외교부 장관이 되었으니, 난민에 대한 우리의 책무도 그만큼 높여갈 때가 되었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