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통령 부친 문용형씨가 흥남 피란선 안탔다면, 북한에선?

이상국 입력 2017.06.26. 15:00 수정 2017.06.2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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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 때 '빅토리호의 미군 은인' 초청행사를 벌인 문재인대통령 '운명의 기적' 들여다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 국방과학연구소 종합시험장에서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참관하고 있다.(제공: 청와대)

▶ 대통령 "아마 저도 못 태어났겠죠"

작년(2016년) 12월 19일. 서울역 앞 연세 세브란스빌딩 1층 로비에서 현봉학 박사(2007년 11월25일 타계)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현봉학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 작전 때 10만여명의 피란민을 구한 '한국판 쉰들러'이다. 이 자리에 문재인 현대통령도 있었다. 그는 인상적인 축사를 했다. "흥남부두 피란민 가운데 저희 부모님과 누님도 계셨습니다. 현봉학 박사의 활약이 없었다면 북한 공산 치하를 탈출하고 싶어했던 10만 피란민이 대한민국으로 내려올 수 없었을 겁니다. 저는 거제에서 태어났습니다만 아마 저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문대통령의 기적의 '가족사'가 이번 방미 외교에서 우방의 신의를 다지는데 큰 힘을 발휘할 것 같다. 당시 미군들의 위대한 결단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의 현 대통령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보다, 더 울림있는 호소가 어디 있겠는가. 이 나라를 지켜온 미군의 공로가 한국 내에서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인식이 트럼프 정부에 번지고 있는 가운데, 어제 6.25 67주년을 맞아 문재인정부는 '보훈외교'를 새롭게 펼치고 있는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의정부의 미 2사단을 찾은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읽힌다.

옛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위치한 '흥남철수 작전 기념비'(사진=위키피디아)



▶ 금순이와 '국제시장' 덕수동생 막순이처럼 손을 놓쳤다면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조금순'이 결국 타지못했던 피란민 수송선, 미국 상선 '메레디스 빅토리호'. 이 배는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해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적셨다. 그런데 이 배에 현직대통령의 부모가 실제로 타고 있었고, 그들의 극적인 피란이 생과 사의 기로였을 수도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감회가 없을 수 없다.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만약 흥남철수 때 그의 가족들이 빅토리호에 타지 못했더라면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대통령의 저서인 '문재인의 운명'에는 부친에 대한 짧은 소개 글이 들어있다. "함경도 명문 함흥농고를 졸업한 아버지는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했다. 유엔군이 진주한 짧은 동안(1950년 10월-12월) 시청 농업과장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 언론인(중앙일보 박보균기자)은 그의 칼럼에서 "그 행적은 북한 입장에선 전시(戰時) 반동이다. 문재인 부친이 미군 함정에 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

흥남부두에서 피난길에 오른 피난민들 모습(사진=국가보훈처)

▶ 함흥농고 수재 부친, 해방기 흥남시청 공무원으로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시 등장한 그의 가족사를 계기로, 문재인대통령 부모의 삶을 다시 살펴본다.(이하, 가족사와 관련한 사항인지라 대통령을 이름으로만 호칭하는 것을 양해바람)

문재인의 부친은 문용형(작고)씨이며 모친은 강한옥씨(90. 부산 영도 거주)다. 부모님이 살았던 곳은 함경남도 흥남의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이었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수재 소리를 들었다. 당시 도내 명문이던 함흥농고를 나왔고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흥남시청 농업계장과 과장을 지냈다.

흥남부두에서 피란선을 탔던 가족은, 부친 문용형과 모친 강한옥, 그리고 대통령의 누나 문재월(68세)이었다. 빅토리호는 12월15일 전투기 연료를 싣고 부산에 도착했다. 연료를 한창 하역하고 있는데, 갑자기 흥남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곳에 있는 미군들을 안전하게 퇴각시키라는 것이었다. 연료를 채 다 내리지도 못한 채 선박은 흥남으로 떠났다. 배가 부두에 도착한 것은 22일이었다.

흥남철수작전 이후 폭파되는 흥남부두(사진=국가보훈처)



▶ 빅토리호 미군에게 몇번이고 절을 한 피란민들

부두 주위는 모두 10만여명의 중공군이 포위하고 있었다. 퇴로는 바다 밖에 없었다. 미국 상선 빅토리호의 선장은 레너드 라루(2001년 타계)였다. 당시 작전을 지휘하는 지휘관은 미10군 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1979년 타계)이었다. 빅토리호는 원래, 피란민이 아닌 미군을 싣기로 했던 배였다. 당시 알몬드 장군의 통역을 맡았던 문관이 현봉학이었다. 그는 리치몬드의 의대에서 영어를 배웠다. 그런데 마침 알몬드가 리치몬드 사람이었다. 리치몬드 액센트의 영어를 쓰는 현봉학을 보고 그는 금방 친근감을 느꼈다. 현봉학은 당시 흥남부두로 몰려든 4만여명을 보고, 그들을 태우지 않으면 여기서 모두 죽게될 것이라고 말한다.

화물선(탑승 정원은 47명이었다고 한다) 빅토리호가 태울 수 있는 최대 인원은 2000명 정도였다. 그런데 1만4천명을 태웠다. 태우는 시간만도 13시간 40분이 걸렸다. 타면 살고 못타면 죽는다는 배였다. 한국말을 모르는 미군들은 알고있는 한가지 한국말로 목놓아 외쳤다. "빨리빨리!" 영하 30도에 눈보라가 몰아치는 항구였다.

콩나물시루보다 더했던 배는 23일 오전 11시에 출항한다.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한 것은 성탄절인 25일 낮12시42분. 배에서 내린 피란민들은 배를 향해 몇 번이고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고 당시 배에 있던 미군들이 증언한다.(빅토리호는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한 기록으로 2004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이 무리 속에, 문용형, 강한옥, 문재월이 끼어있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 황정민이 여동생 막순이 손을 놓치던 그 지점이다. 그때 손을 놓쳤던 수많은 막순이가, 지금 살아있었더라면 대한민국을 이끄는 문재인대통령 같은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우리 동족이라고 봐도 되리라.

문재인 대통령/사진=연합뉴스

▶ 북에 남았다면 핍박 받았을 가능성

부친 문용형씨는 거제 포로수용소 근처인 거제면 명진리 남정마을에 정착했다. 문재인대통령이 태어난 것은 3년 뒤인 1953년이었다. 그뒤로 문재성(62.주부), 문재익(58.선장) 문재실(55)이 태어났다. 문용형 가족은 9년간 거제에 살다가 부산 영도로 이사한다. 문재인이 7살 때의 일이다.

문용형씨가 흥남부두에서 피란의 기회를 놓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일제 때 함흥농고를 보낼만한 집안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의 정치적 핍박을 버티기 어려웠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한편 대선 기간 중에 부친 문용형씨의 이력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의 친일의 개연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했으나, 사실관계로 밝혀진 것은 전혀 없었다. 이들의 주장은 흥남시청 계장으로 근무한 것이 해방 이후가 아닌 그 이전이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저서에는 해방 이후의 상황이라고 연도까지 명시하고 있다. 또 그가 남쪽으로 내려온 것은 흥남철수 때가 아니라 다른 때였으며, 거제에 '포로'로 잡혀왔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모두 추측을 부풀린 낭설이었음이 밝혀진 바 있다.

아시아경제 티잼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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