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여자라서 떨어진 외무고시.. 33년 만에 꺼이꺼이 울었죠"

2017. 7. 3.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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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란 美휴스턴 한국교육원장

[서울신문]“女 2명 이르다”며 부당 낙방
美교육현장서 준외교관 활약

박정란 美휴스턴 한국교육원장

“33년 만에 진하게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제 이름을 알려 주세요.”

서울신문 6월 30일 자 ‘여자라서 외무고시 합격을 취소당했다’의 주인공 박정란(56) 미국 휴스턴 한국교육원장은 2일 “한국에서 후배가 보내 준 기사를 읽는 순간 한 번도 울어 보지 못한 사람처럼 가슴 깊숙한 곳에서 꺼이꺼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묘하게 행복했다”며 33년 만에 억울함을 털어놓았다.

박 원장은 20명을 모집했던 1984년 제18회 외무고시 2차 필기시험에서 13등을 기록했지만, 여성 두 명 합격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3차 면접을 부당하게 통과하지 못했다. 여성 외무고시 3호로 기록되기 직전이었으나 그해는 함께 고시 공부를 했던 백지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만 여성으로 유일하게 합격했다.

그는 “구차하게 자리를 구걸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서, 내가 얼마나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었지만 외무고시 낙방 뒤에 망연자실하게 한 해를 보냈다”고 말했다. 서울대 외교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박 원장은 외무고시를 낙방한 이듬해 교사로 발령받아 사회선생님, 장학사, 교감 등으로 30년간 교육 현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권력 없고 ‘빽’ 없어서 자식 가슴에 한을 심어 주었다”며 세상을 뜬 아버지가 마음 아파했기에 늘 가슴이 답답했다고 한다. 박 원장은 “외교관이 되지 못해서 삶이 불행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교육원장으로 외교관들과 함께 일하면서 가끔 예리하게 칼로 벤 듯한 상처가 되살아나서 아프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재외 국민과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한국 역사, 한국 문화와 관련된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주휴스턴 한국교육원 8대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텍사스를 포함한 미국 남서부 5개 주의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준외교관으로 활약 중이다.

박 원장은 꿈꾸던 일을 처음으로 하게 되어 행복하지만 “잘할 수 있었던 그 시절에는 기회가 없었기에 30년이나 썩혀 둔 영어로 일하면서 가끔은 원망스럽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이어 “이제 그늘에서 나갈 때가 됐다. 그 시절에는 그랬으니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정란 원장

다음은 박 원장이 보내온 이메일 전문이다.

33년전의 외무고시 탈락한 그 사람입니다.

---------------------------------

33년만에 진하게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제 이름을 알려 주세요.

저는 박정란이고,

현재 휴스턴한국교육원장입니다.

새벽 1시 25분입니다.

오늘 밤 잠은 포기했습니다.

퇴근 후에 저녁먹고 산책하고 돌아 오니,

백지아씨가 카톡으로

“서울신문에 선배님 기사가 났네요.” 하고

알려 왔습니다.

휴스턴교육원 관련으로 가끔 기사가 나니까,

그냥 그런 것 중 하나려니 했습니다.

좀 있다가,

어느 여고 교감인 후배가,

제 대학 동기가 가져다 줬다며,

기사를 찍어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울어 보지 못한 사람마냥

가슴 깊숙한 곳에서 꺼이꺼이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근데, 묘하게 행복했습니다. ^-^

더 일찍 말했으면,

구차하게 자리를 구걸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서....

나한테 그렇게 해도

내가 얼마나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아니, 이 순간을 기다리며 평생 긴장 놓지 않고

자신을 다듬고 또 담금질하며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 때문에 권력없고 빽 없어서 자식 가슴에 한을 심어 주었다며,

평생 마음 아파하시다가

몇 년 전에 세상 떠나신 우리 아버지가 너무 그립습니다.

강경화 장관이 지명되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멍해서 뚫어지게 보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낌새를 챈 딸이 왜 그러냐고 해서

“너무 멋있어서... 부러워서...”

늘 가슴이 아팠습니다. 답답하고.....

이제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낙방의 소식을 들었을 때,

논어의 한 장면이 떠 올랐습니다.

이제는 글귀는 잊어버렸고,

내용만 남아 있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가족을 애도하는 사람에게

왜 다른 곳으로 이주하지 않냐고 했더니,

“그 곳은 정치가 포악해서”

그 말을 듣고

공자가 자로에게 말합니다.

“포악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라고 하는 장면입니다.

대학원 2학년 때 였고, 그 한 해를 망연자실하게 보내고,

그 다음 해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유 없이 사람들을 피했어요.

서울대 사람들과는 가능하면 만나지 않았죠.

교사로 살아가고,

교과서도 쓰고, 결혼도 하고,

두 딸도 낳아 기르고,

장학사도 하고, 교감도 하고,

딱 30년을 일한 후에 내 삶을 되돌아보고,

바쁘게 지내느라 소홀했던 가족과의 시간을 만들고자

2015년에는 1년간 동반휴직을 했습니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에 지내면서

두루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 때 돌아가면 교육원장에 지원하겠다고

가족들에게 얘기했고,

복직해서 문정고에서 6개월간 교감을 하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운 좋게 선발되어,

지난 8월에 여기 휴스턴으로 부임해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교육원장으로 재외동포 교육,

한국어채택사업, 유학생 지원 등 다양한 일을 하는데,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꿈꾸던 일(비슷한 일 ?)을 하게 되어

많이 즐겁습니다.

관할지역이 텍사스주, 오클라호마주, 루이지애나주, 미시시피주, 오클라호마주등

다섯 곳이라,

1년에 서너달은 주말마다 출장을 다닙니다.

서너시간씩 혼자 차를 몰고 가는 낯선 길이 충만한 행복감을 줍니다.

한글학교도 가고,

미국 학교에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해 달라고 홍보도 하고,

학부모님들을 위한 자녀교육 강연도 하고,

그렇게 지냅니다.

외교관이 되지 못 해서 삶이 불행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수인 남편과 이쁘게 자라 준 두 딸들과,

부러울 것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교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끔씩 상처가 되살아나서 아픕니다.

예리하게 칼로 벤 듯이.....

가끔 삶이 무료해지면,

늦은 밤의 초승달을 보곤 했습니다.

그 잘 벼린 칼날같은 예리함을 닮고 싶어서....

그렇게 잘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에는 내게 기회를 안 주고,

30년이나 썩혀 둔 영어로 일을 하면서 가끔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반 백년을 넘겨 살아 왔으니,

인제 그늘에서 나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랬으니, 받아 들여야 하는 건 아니죠.

사회 선생으로 23년을 지내면서,

교권담당 장학사도 하고, 교육연수원에서 선생님들을 위한 연수도 기획 운영하면서

인권의 중요성과 차별의 부당함 그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으니,

인제는 좀 시끄러워져도 말해야 할 때 인 듯 합니다.

정남준 차관님이 항상 애달파하셨어요.

뭐라도 해야하지 않느냐고...

마음이 따뜻한 분입니다.

그런 온기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기쁨 가득한 날 되소서.

박정란 드림

*정남준 전 행정안전부 차관은 1983년부터 옛 총무처 고시출제과에서 근무했으며 1984년 박정란씨가 외무고시 면접에서 낙방한 뒤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습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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