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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네 얼굴은 C급, 너네 집안은 B급"

김지연 기자 입력 2017. 07. 11. 03:07 수정 2017. 07. 1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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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프로그램 광풍에.. 일선 학교도 '10대들 서열 놀이'로 몸살]
친구들 외모·성적·끼·가정형편.. A부터 F까지 등급 매기며 '품평'
"아이들이 불공정 사회의 단면, 어릴 때부터 배울까봐 걱정"

"네 얼굴은 C급이고, 수저(가정 형편)는 B급이야."

지난달 서울의 한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는 학생들 사이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방불케 하는 '심사'가 벌어졌다. 동급생 서른 명이 서로의 외모·성적·집안 사정·끼를 두고 '서열 매기기' 놀이를 한 것이었다. 알고 봤더니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에 나오는 순위 시스템과,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6'에 나오는 가혹한 심사평을 따라 한 것이었다.

담임 이모(40)씨는 "친구들끼리 서로 비하하는 말을 하거나 '등급 매기기 놀이'를 하지 않도록 틈날 때마다 지도하지만 그때뿐"이라며 "다른 친구들에게 '하위권'으로 분류된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고 했다. 김모(13)군은 "나에게 낮은 순위을 매긴 친구에게 화를 내면 오히려 '팩폭을 당해 발끈했느냐'며 놀림당한다"고 했다. '팩폭'은 사실을 뜻하는 팩트(fact)와 폭력을 결합한 단어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뼈아프게 지적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각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빠진 학생들이 친구들의 외모·성적·끼·집안 사정의 순위를 매겨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다. '프로듀스 101', '쇼미더머니', '아이돌 학교' 등은 유행에 민감한 10대 학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이 프로그램들은 출연자의 외모부터 인성·실력·기획사 영향력까지 평가하며 순위나 등급을 매기는 것이 특징이다. 시청자 문자 투표로 탈락자와 승리자를 가르기도 한다. 이런 식의 '서열 정하기'가 놀이 형태로 교실에도 스며든 것이다.

강원도 원주에 사는 김유경(45)씨는 지난 3일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따끔하게 혼냈다. 딸이 집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함께 보던 친구들의 외모를 'A' 'F' 식으로 품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딸을 다그치자 '반 애들이 전부 오디션 놀이를 하면서 논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 일이 있은 후 김씨는 딸이 오후 2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텔레비전을 못 보도록 했다. 아이들이 하교 후 쉬는 이 시간대에 유독 오디션 프로그램 재방송이 많기 때문이다.

2009년 '슈퍼스타 K'를 시작으로 2011년 '나는 가수다' 'K팝 스타' 등 과거 큰 인기를 얻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실력 있는 신예의 등용문 역할을 하는 등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중국 동포나 암 투병 환자, 학교를 자퇴한 학생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참가자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방영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서열화'를 부각시킨다. 아이돌을 선발하는 '프로듀스 101'의 경우 참가자 연령대가 10대 초·중반으로 낮아진 데다, 모든 참가자의 순위를 1등에서 101등까지 매긴다. 매주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연습생들은 실력보다 외모, 대형 기획사 소속 여부 등을 앞세워 인기몰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관악구의 주부 김수연(42)씨는 최근 열다섯 살짜리 아들에게 "아무리 노래와 춤 실력이 좋아도 얼굴이나 기획사 '끗발'은 못 이긴다"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아이들이 '불공정 사회'의 한 단면을 어릴 때부터 배우게 되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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