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의 내 인생의 책]④82년생 김지영| 조남주
[경향신문] ㆍ유리천장 없는 사회의 꿈
“출산휴가 60일 다 쓰면 안되는 것 알고 있죠.”
내가 판사로 임관하던 날 대법관이 건넨 첫마디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내색도 못한 채 가슴 철렁했던 그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남성문화가 짙은 법조계에서 판사 생활을 했던 것도, 여성으로서 4선 국회의원이 되기까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고 감사한,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마냥 미안할 뿐인 엄마로서의 삶까지 무엇 하나 녹록지 않았던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매 순간 눈에 보이진 않지만 몸과 마음에 딱딱한 굳은살이 박이게 했던 수많은 유리천장들. 그렇다면 내가 깨뜨렸다 생각한 유리천장이 ‘82년생 김지영’의 삶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만들어 줬을까.
‘82년생 김지영’의 삶은 먹먹했다. 부디 느껴지지 않길 바란 동질감에 좌절했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받아야 했던 부당한 대우를 꾹 참느라 몸과 마음에 켜켜이 자리 잡은 그녀의 병은 마치 내 잘못인 양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부당함을 말하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씁쓸함도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아, 결국 나는 같은 여성으로서도, 국회의원으로서도, 엄마이자 인생 선배로서도 결코 많은 것을 바꾸어 주지 못했구나.
판사 시절 또 다른 장면을 떠올려본다. 가사재판을 마치고 나오면 여성인 필자에게는 특이한 남성 당사자가 더 눈에 띈 반면, 옆자리의 남성 판사는 특이한 여성 당사자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결과를 떠나 재판 진행에 있어서 여성성의 시각이 녹아든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 약자인 여성 당사자에게 안도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4선 이상의 여성 중진 의원이 나를 포함해 4명에 불과한 현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수많은 김지영들. 그들의 눈이 되고 입이 되는 것이 바로 나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재차 다짐해본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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