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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으로 가는 학폭 '부모들의 전쟁' 되다

조아름 입력 2017.07.31. 04:42 수정 2017.07.31. 09:10
학폭위 징계 불복 행정소송 매년 증가 "학교 초동대처 중요"

피해자 측 “학교가 가해자 비호”

가해자 측 “중징계로 입시 불이익 가혹”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3월 서울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A(15)군은 같은 학교 친구인 B(15), C(15)군을 집으로 불러 함께 잠을 자기로 했다. C군이 먼저 잠이 든 사이 A군과 B군은 C군의 바지를 벗겨 몰래 사진을 찍었다. 다음 날 아침 이 사실을 알게 된 C군은 강력히 항의했고 A군 등이 사진을 삭제한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얼마 후 A군 등은 휴대폰에 그대로 저장돼 있던 사진을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학교는 지난달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었고 A, B군에게 ‘전학’ 처분을 내렸다.

A군의 부모는 “학폭위의 결정은 지나치다”고 반발했다. 학폭위가 열리기 전 피해학생인 C군의 부모에게 수 차례 사과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진을 유통시킨 것도 아니고 단지 저장된 사진을 다른 친구에게 보여줬을 뿐인데 아이의 앞길에 큰 족쇄를 채웠다”는 것이다. 반면 C군 부모는 “친한 친구들이 사진을 찍은 것도 모자라 삭제를 했다고 거짓말까지 한 것에 대해 아이가 너무 큰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강력한 처벌을 원했다.

결국 A군 부모는 “단 한번의 실수로 전학은 과하다”며 교육청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고, 지난달 법원에 전학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A군 부모는 “아이들 문제로 법정까지 가게 될 줄은 몰랐다”며 “부모들끼리도 원수가 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학교폭력이 ‘어른들의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이 학폭위가 열리는 순간 ‘학폭 사건’이 되고, 보다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피해학생 측과 이를 벗어나기 위한 가해학생 측 부모들 간의 끈질긴 사투가 벌어진다. 학폭위 소집 이후 내려진 결과에 대한 불신은 재심 요구로 이어지고 여기서마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경우 시간과 비용이 드는 소송도 마다하지 않는다. 학폭위 결과가 학교생활기록부에 남게 되면 고입, 대입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지우기 힘든 주홍글씨가 되지만, 정작 학폭위의 심의에 공정성과 전문성은 크게 떨어진다는 불신이 뿌리 깊게 깔려 있는 탓이다.

실제로 학폭위 처분에 불복해 피해ㆍ가해학생 측이 교육청 등에 재심을 청구한 건수는 해마다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30일 교육부에 따르면 재심 청구 건수는 2012년 572건에서 2014년에는 901건, 그리고 지난해에는 1,299건으로 증가했다. 재심을 넘어 법원 문을 두드리는 경우 역시 급증세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교육청 별 학폭위 처분 관련 소송 현황’을 보면 학교 등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은 2012년 50건에서 2015년 109건으로 3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부모들이 소송까지 불사하는 데엔 학교폭력을 다루는 학교에 대한 불신이 깊게 깔려 있다. 피해학생 측은 학교가 사안을 축소시키기 위해 가해학생을 두둔하는 등 피해학생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이고, 가해학생 측은 학교가 소란을 막기 위해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중징계 위주의 처분을 내린다고 맞선다.

지난해 같은 반 친구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해온 초등학생 조모(13)군은 이를 담임교사에게 알렸지만 “가해학생에게 주의를 줬다”는 무책임한 답변만 들었다. 조군의 부모가 담당 교육청에 감사를 요구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하는 동안 학교는 피해학생 측을 참석시키지도 않은 채 학폭위를 열었고 가해학생은 ‘폭력 아님’ 처분을 받았다는 게 조군 부모의 주장이다. 조군 부모는 “그대로 아이를 계속 학교에 보낼 수 없어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선택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최근 재벌 총수 손자와 연예인 자녀가 연루된 서울 숭의초 학폭 사건도 학폭위에선 “학폭이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피해학생 부모는 이에 불복해 최근 재심을 청구하기도 했다. 숭의초는 최근 서울시교육청 감사에서 가해학생 중 한 명인 재벌 총수 손자를 학폭위 심의대상에서 제외하고 심지어 진술서를 누락시킨 사실이 밝혀져 가해학생 비호 의혹을 받고 있다.

반면 가해학생 측에선 “잘못에 비해 처벌이 가혹하다”고 목청을 높인다. 피해학생 측과의 화해나 관계 개선은 뒤로 하고 학교가 처음부터 전학 등 가장 강력한 수준의 징계를 내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가해학생들은 학교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등 또 다른 피해를 경험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3월 자기 험담을 했다는 이유로 같은 학교 친구의 머리 등을 때려 입학 열흘 만에 전학 처분을 받은 한 여고생은 행정소송 끝에 지난달 전학처분 취소 결정을 받아냈지만, 원래 학교에 적응할 수 없어 인근 대안학교를 택했다. 이 학생의 부모는 “학교가 학생을 참 쉽게 포기하더라”고 하소연했다. /

학폭 문제가 어른들의 싸움으로 비화하지 않으려면 발생 초기부터 재심 이후까지 객관성 제고를 위한 촘촘한 대처망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우선 명확한 초동 대처를 위한 교사들의 대처 능력 향상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장인홍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의원은 “피해자 측이 청구한 재심에 참여하다 보면 미묘한 감정 싸움에서 비롯된 학폭에 대한 상황 인식이 부족해 즉각 대응을 못하고 그에 따라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며 “상당수 교원들이 여전히 학폭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기 보다 무조건 기피하려고만 하는데, 이런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1회성 연수가 아닌 심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각 단위학교 학폭위의 구성 변화에 대한 요구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학폭자치위는 5인 이상 10인 이하로 구성하되 반드시 학부모위원을 과반수로 둬야 한다. 하지만 학부모 위원이 가ㆍ피해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경우가 적지 않은 데다,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가 위촉이 필수가 아니라 객관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정제영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 부소장은 “가ㆍ피해자와 같은 반인 학부모 위원은 학폭자치위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제척조항이 있지만 알음알음 민원을 넣어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적지 않다”며 “학폭위를 교육지원청 단위로 변경하거나 학부모 위원 구성 비중을 조정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원화돼 있는 재심 절차도 빨리 단일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학폭 재심은 각 시ㆍ도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피해자 청구)와 시ㆍ도교육청 징계조정위원회(가해자 청구)가 각각 담당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같은 사건을 놓고 한 쪽에서 내린 재심 결정을 다른 쪽에서 다시 뒤집는 혼선이 발생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중학교 위클래스(각 단위학교에 설치된 학생 상담 기구) 전문상담사는 “심지어 가해자가 재심으로 징계를 경감 받아도 피해자가 알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다“며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도 있었는데 당사자들이 재심 결과를 신뢰할 수 있도록 기구를 단일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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