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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인의 잡학사전]'입추'에도 찜통인 건 절기가 양력 기준이라?

입력 2017.08.07. 18:38 수정 2017.08.0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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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오늘은 24절기로 입추(立秋)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가을에 들어서는 날’이었던 것.

그런데 오늘 저는 광화문 돌아다니면서 가을차림을 한 사람을 단 한 분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제 패션 감각에 문제가 있거나 (실제로 그렇기는 합니다) 아니면 24절기가 우리가 아는 것하고 좀 다르거나 둘 중 하나가 이유 아닐까요?

입추를 맞은 7일도 서울 지역 최고 기온이 34.4도까지 오르는 등 무더위가 이어졌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절기는 음력일까 양력일까?

절기는 한국과 중국 같은 동양 문화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음력(陰曆)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양력(陽曆) 기준입니다. 아시다시피 달이 차고지는 걸 기준으로 날짜를 세면 음력, 태양이 움직이는 걸 기준으로 하면 양력이라고 합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기도 한 절기는 태양이 황도(黃道·하늘에서 태양이 한 해 동안 지나가는 길)를 15도 움직일 때마다 하나씩 찾아옵니다. 황도를 한 바퀴 돌면 360도. 이를 24로 나누면 15도가 나오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해마다 양력 8월 7일경이 입추인 것처럼 절기 날짜가 양력으로 거의 고정돼 있는 건 양력 기준으로 절기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황도상 태양 위치와 절기. 사진 출처 기상청 홈페이지

음력을 쓰던 옛날 사람들이 절기를 만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달을 기준으로 삼으면 날을 세는 데는 별 문제가 없지만 계절 변화를 예측할 수는 없거든요. 그러면 당연히 농사를 지을 때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 주나라 때 화베이(華北) 지방 기후에 맞춰 날짜에 이름을 붙였는데 그게 바로 절기입니다.

●지구는 태양보다 게으르다

그러면 이 절기가 화베이 지방 기우를 따라 이름을 붙여 한국, 특히 남한 계절하고 맞지 않는 걸까요?

일단 반은 맞습니다. 화베이 지방 대표 도시인 베이징(北京)은 거의 북위 40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37.5도에 있는 서울하고는 기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근거로 한국에서는 절기를 한 달 씩 뒤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도 계십니다.

지도에서 짙은 색이 화베이 지방.

그렇다고 화베이 지방도 절기에 따라 날씨가 딱딱 맞게 변하는 건 아닙니다. 이날 화베이 지방 대표 도시 베이징은 36도까지 올라갔습니다. 36도를 가을 날씨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베이징도 9월이 되면 평균 20도 안팎으로 온도가 내려갑니다. 진짜 가을은 입추가 지나고 한 달 정도 지난 다음에야 찾아오는 셈입니다.

이렇게 화베이 지방에서도 절기가 계절하고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양력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예를 들어 입추는 하지(夏至)하고 추분(秋分) 한 가운데 날입니다. 하지는 북반구에서 태양이 제일 오래 떠 있는 날 = 낮이 제일 긴 날이고, 추분은 춘분(春分)하고 마찬가지로 밤과 낮의 길이가 똑같은 날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하지 때 해가 제일 오래 비추니까 제일 덥고 추분을 향해 가면서 점점 날씨가 내려갈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지구가 뜨거워지고 식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 중 해가 제일 높이 떠 있는 오후 12시가 아니라 오후 2~4시에 하루 최고 기온이 나타나는 것하고 같은 이치입니다.

6~8월 날짜별 1908~2016년 평균 기온 그래프.

그래서 오히려 입추 무렵에 우리는 1년 중 제일 덥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해마다 2월 4일경인 입춘(立春)에도 여전히 추위를 느끼는 것과 같은 맥락. ‘여름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를 입추보다 늦게(8월 23일 무렵) 정해 놓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복날도 절기일까 아닐까?

해마다 여름이면 ‘삼복더위’라는 표현도 들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삼복은 물론 초복, 중복, 말복을 뜻하는 말. 흔히 이 삼복도 절기라고 생각하고 쉽지만 실제로는 잡절(雜節)에 속합니다. 단, 복날을 정할 때는 24절기를 활용합니다.

에버랜드에서 살고 있는 수컷 판다 러바오가 지난달 12일 초복을 맞아 수박으로 보양을 하고 있는 장면. 용인=최혁중 기자 ajinman@donga.com

하지가 지난 뒤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이고, 네 번째가 중복입니다. 입추가 지나서 첫 번째 경일이 말복이고요.

여기서 경일이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로 10간을 따져 붙인 겁니다. 모든 해, 모든 달, 모든 일은 이 10간과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12지지를 하나씩 써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임진왜란이 임진왜란인 이유는 일본(왜)이 조선으로 쳐들어 온 1592년이 임진년(壬辰年)이었기 때문입니다. 달과 일까지 범위를 넓혀 보면 오늘(양력 2017년 8월 7일)은 정유년 정미월 병인일입니다. 병인일에서 앞글자를 가져와 보면 입추인 오늘은 병일(丙日)이 됩니다. 그러면 나흘(4일) 뒤가 입후 추 첫번째 경일이고, 그날이 말복일 될 겁니다. 실제로 올해 말복은 8월 11일입니다.

● 그래서 가을은 언제 오나?

기상학적으로는 일평균 기온이 20도로 내려간 뒤 다시 올라오지 않는 첫날부터 가을입니다. 최근 30년(198년~2016년) 평균을 내보면 이런 날은 9월 21일입니다.

그래도 앞으로 한 달 보름 내내 ‘무덥다’고 느끼지는 않을 겁니다. 과연 언제부터 ‘그나마 좀 살 것 같다’고 느끼게 될지는 아래 기사를 참고해 주세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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