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의 길 찾기](1)월성 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시설, 2년 뒤엔 '포화'
[경향신문] ㆍ폐연료봉 어쩌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못지않게, 어쩌면 수천배 더 중대한 문제인데 아무도 관심이 없네요.”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경주 양남면에 22년째 살고 있는 백민석씨(53)의 지난 세월은 핵폐기물과의 싸움으로 압축된다. 2004년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부지로 경주가 선정됐다. 농민단체 활동을 하던 백씨는 방폐장이 들어서면 농산물값이 떨어질까 걱정했다. 시청에 진입해 시장실을 포위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백씨는 농민단체 활동에 집중했지만 핵폐기물이 그의 삶에 다시 끼어들었다.
박근혜 정부는 월성 원전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추가 건설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사용후핵연료는 경주 방폐장의 중·저준위 핵폐기물보다 더 강한 방사능을 내뿜는다. 백씨는 “중·저준위 시설을 지을 때 고준위 폐기물은 (경주에) 안 둔다고 얘기했다”면서 “정부는 임시저장이라고 하지만 결국 아무도 가져가지 않으니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은 핵연료봉을 써서 고효율의 에너지를 얻고 일종의 쓰레기인 ‘사용후핵연료’를 남긴다. 일반적인 쓰레기라면 소각하거나 파쇄하면 될 일이지만 사용후핵연료는 그게 불가능하다. ‘핵쓰레기’ 문제의 최전선에 백씨와 양남면이 있다. 한국에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저장하는 시설이 없다. 그간 각 발전소는 부지 내에 임시저장시설을 만들어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해왔다. 하지만 그 저장시설마저 포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가장 빠른 곳이 월성 원전이다. 지난해 말 기준 월성의 임시저장시설의 84.6%가 채워졌다. 정부는 2019년이면 월성의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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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이 좀 더 빨리 겪는 문제일 뿐 고리와 한빛 원전도 2024년이면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른다. 주민들은 벌써부터 추가 시설 건설을 우려해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공론화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추가 저장시설 건설 등의 문제도 공론화 범위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저장시설 건설도 영구적인 대책은 되지 못한다. 높은 독성을 지닌 사용후핵연료를 인간의 생활권에서 영구 격리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 원전을 이용하는 많은 나라들은 수십년 전부터 이 방안을 모색해왔다. 가장 많은 나라들이 채택한 안은 지하 300~1000m 깊이로 땅을 파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저장하는 ‘직접처분’ 방식이다.
하지만 이 경우도 ‘어느 지역이 쓰레기를 맡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됐다. 99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미국은 1977년부터 사용후핵연료를 땅속 깊숙이 묻어 처리하기로 했다. 2002년 네바다주 유카산을 처분장 부지로 최종 승인했지만, 2010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면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원전이 전혀 없는 네바다주에 핵폐기장이 건설된다는 것에 주민들이 반발했고 지하수 오염 및 방사능 누출 우려도 컸다. 착수 후 40년이 지난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표류 중이다.
독일 역시 일찍이 사용후핵연료를 지하에 저장하기로 하고 1977년 고어레벤을 후보지로 낙점했다. 하지만 “과학적이지 못한 정치적 결단”이라는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2005년 정부가 부지 선정을 철회했다. 현재도 독일 정부는 부지 선정을 위한 전국 지질조사를 벌이고 있다. 2031년까지 부지 선정을 마치는 것이 목표다. 원전 강국인 프랑스나 일본도 1970~1980년대부터 사용후핵연료의 영구 저장을 추진해왔지만 모두 주민 반발에 부딪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핵폐기물 영구 처분은 수십년이 걸려도 결론짓기 어려운 문제다. 2004년에야 사용후핵연료의 영구 격리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온 한국도 마찬가지다. 2015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2028년까지 영구 처분 부지를 선정할 것을 권고했지만, 스케줄대로 이행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 없이 원전 진흥 정책을 추진해온 한국은 아직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김수진 고려대 연구교수는 “독일은 1970년대 발전업체에 핵폐기물 처분에 대한 대책이 없으면 신규 원전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며 “한국의 원전 건설은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고민을 미뤄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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