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의 길 찾기]'값싼 원전'의 대가 넘치는 핵 쓰레기

고영득 기자 입력 2017. 8. 13. 22:44 수정 2017. 8. 13.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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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는 방사능 대량누출 사고가 일어난 지 6년이 흘렀지만 그대로 방치돼 있다. 원자로의 폐연료봉 때문이다.

사람이 즉사할 정도의 강력한 방사선을 내뿜는 폐연료봉은 내부 상황 파악을 위해 투입된 로봇조차 작동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원전은 우라늄 핵분열 때 나오는 열을 사용해 물을 끓이고 여기서 생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원료로 사용된 우라늄은 폐연료봉 형태로 핵폐기물이 된다. 사고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폐연료봉 1만925다발이 있었다. 이를 다 꺼낸다고 해도 영구적으로 처리할 곳이 없다.

사용후핵연료인 폐연료봉의 처리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가동 중인 원전과 건설 지속 여부로 논쟁이 한창인 신고리 5·6호기 역시 폐연료봉 처리에 대한 대책이 사실상 없다. 화장실도 없는 아파트 짓기에만 열중한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1만5000t가량의 폐연료봉이 국내 각 원전에 분산, 보관돼 있다. 냉각재로 물을 사용하는 경수로형 원전에서 1만7175다발, 중수로형 월성 원전에서 42만2908다발을 저장 중이다. 이마저도 곧 포화상태가 된다. 지난 정부는 2029년까지 원전을 36기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대로라면 5만112t의 폐연료봉이 더 생긴다.

이 ‘핵 쓰레기’는 그 자체가 고선량 방사능 덩어리다. 미국 롱아일랜드의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는 원자로 수조의 폐연료봉이 노출되면 반경 800㎞ 내에 있는 사람들이 곧바로 숨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폐연료봉을 지하에 보관한다 하더라도 방사능 수치가 완전히 떨어지려면 최소 10만년이 걸린다.

이처럼 전기를 생산해준 대가로 인류에게 위험천만한 핵폐기물을 떠넘기는 공장이 원전이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폐연료봉 처분장을 갖춘 나라는 없다. 핀란드만이 현재 처분장을 건설 중이지만 부지 확정에만 20년 가까이 걸렸다.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은 적정한 암반을 찾지 못했거나 지역주민 반발로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다.

‘원전은 경제적으로 싸다’는 논리도 후쿠시마 사고 후에는 통하지 않게 됐다. 사고 발생 위험, 원전 해체, 폐연료봉 처리 비용을 반영하면 원자력은 결코 경제적이지 않은 에너지원이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국내 원전에서 생기는 폐연료봉만 관리하는 데 64조1301억원이 들어간다. 그러나 발전소부터 짓고 보자는 전력정책은 여전하다. 이 과정에서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인 전력정책으로 사회적 반목이 커져왔다. 지역분산형 전력 생산이라는 세계적 추세 역시 원전 앞에서는 무력하다.

욕조에 물이 넘친다면 수도꼭지부터 잠가야 한다. 원전을 추가 건설해 핵폐기물을 계속 만들어내는 행위는 후손에게 ‘폭탄’을 떠넘기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기술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원전을 수입하고 원전 진흥론을 펼친 전문가들의 행태는 범죄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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