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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대정전, 탈핵 추진하는 한국의 미래라고?

입력 2017. 08. 17. 11:56 수정 2017. 08. 18.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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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LNG발전소 고장으로 828만 가구 '블랙아웃'
국내 보수언론, "대만 사태 한국 닮은 꼴" 지적
사고 원인 살펴보니 탈핵 정책과 직접 관련 없어
'탈핵 시간표' 대만 10년, 한국 60년으로 차이 커
'에너지 전환' 채비 못한 점 '반면교사' 삼아야

[한겨레]

대만 뉴타이페이시 궁랴오 지역에 있는 룽먼 핵발전소 4호기의 모습. 2015년 집권한 민진당 정부는 공정율 98%인 룽먼 4호기의 건설을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뉴타이페이/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탈핵’ 국가인 대만이 ‘블랙아웃(Blackout·대정전)’에 빠졌다. 국내 보수언론은 대만 사태를 보도하며 일제히 ‘한국의 가까운 미래’에 빗대며 비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들 언론의 지적과 달리 대정전의 직접적인 원인은 ‘핵발전소 가동 중단’이 아닌 ‘조작 실수’이고, “8년 안에 ‘원전 제로’를 이루겠다”는 대만의 상황도 우리나라의 ‘탈핵 로드맵’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대정전 수준으로 전력수급의 어려움을 겪는 대만의 현 상황은 공론화 과정 없는 ‘에너지 전환’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17일 대만의 <연합보>를 보면, 15일 오후 4시50분께(현지시각) 대만 타이베이에서 남서쪽으로 떨어진 지역인 타오위안에서 대만전력공사가 운영하는 ‘다탄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가 연료공급 이상에 따른 작동 오류로 6기의 발전기가 갑자기 멈춰섰다. 다탄 발전소는 공급전력 420만㎾로 대만에서 쓰는 전력의 10%를 생산한다. 대만전력공사는 “사고가 벌어진 뒤 네 차례에 걸친 전력공급 제한조치를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만 전체 가구의 64%에 해당하는 19개 현·시의 828만 가구에 전기가 끊겼다”고 밝혔다. 전력공급은 약 4시간 만에 재개됐는데, 이번 대정전은 타이베이 최고기온이 36도에 이를 정도였던 무더위와 퇴근시간까지 맞물리면서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줬다.

대만 언론은 이번 사고가 가스공사 직원이 실수로 가스밸브를 2분 동안 잠그면서 벌어진 ‘인재’라고 밝혔다. 대만 정부의 탈핵 정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리스광 경제부장(장관)은 대정전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으나, 차이잉원 총통은 “민주진보당(민진당, 대만 여당) 정부의 정책방향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이번 사고가 우리의 결심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 것이다”라며 탈핵 정책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대만은 대정전이 벌어지기 전인 올해 초부터 정비를 위해 3기의 핵발전소에 대해 가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대만전력공사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 전체 전력 생산량 가운데 핵발전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16%로 석탄(36%)과 엘엔지(35%)보다 낮다. 현재 대만에는 북부지역인 타이베이 주변에 퀸산 1·2호기와 구오셍 1·2호기, 남부 지역에 마안산 1·2호기 등 모두 6기의 핵발전소가 있다. 모두 국민당 군사독재 시절에 완공돼 설계수명 4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민주화 이후인 1999년부터 건설에 들어간 룽먼 4호기는 공정률 98%에서 건설을 중단한 상태다. 대만원자력위원회는 2018년까지 퀸산 핵발전소의 가동을 영구 중단하고, 2021년에는 구오셍, 2024년에는 마안산 핵발전소를 세울 계획이다.

한겨레 자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이 대정전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겪게 된 가장 큰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에너지 전환’에 대한 채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을 꼽는다. 1986년 민주화 이후에도 국민당 집권이 이어져온 대만에서 본격적인 탈핵 논의가 벌어진 시기는 민진당이 정권교체를 한 2000년이다. 당시 지진으로 타이베이 주변에 밀집한 핵발전소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천수이벤 당시 총통은 룽먼 4호기의 공사를 잠정 중단하고 정치권에 탈핵 논의를 제안했다. 그러나 2008년 국민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탈핵 논의도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부 차원의 ‘공론화’ 없이 논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벌어지면서 대만에서는 전국적으로 20만 명이 모이는 집회가 열리는 등 ‘탈핵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2014년 4월 민진당 전 대표이자 유명한 반핵활동가인 린이슝(76)이 룽먼 4호기의 폐쇄를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타이베이 시내에서 열린 대규모 탈핵 집회에 경찰의 ‘물대포’까지 등장하는 등 진통 끝에 국민당 정부가 룽먼 4호기 건설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 재집권에 성공한 민진당은 “2025년까지 원전 제로”를 선언했다.

대만의 대정전은 ‘점진적인 탈핵’이 중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대만은 룽먼 4호기의 폐쇄 여부를 두고 15년 가까이 다퉜다.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여부에 대한 공론화를 진행하는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다르다. 또 대만은 대체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에 맞춰 “10년 안에 ‘원전 제로’”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현재 가동을 준비하고 있는 신고리 4호기의 설계수명(60년)이 끝나 ‘퇴역’하게 될 2079년까지를 가장 이른 ‘원전 제로’ 시기로 보고 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타이베이 주변에 밀집한 원전이 지진 등으로 안전에 취약하다는 우려가 많았던 대만은 탈핵 정책의 시간표와 조건이 우리나라와 많이 달랐다”라며 “(탈원전 정책을 편다는)외적인 조건만으로 두 나라를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제대로 된 정책 비교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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