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없었다면 MBC 스케이트장에서 해고됐을 것"

김도연 기자 2017. 8. 2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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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MBC PD 이우환의 기구한 운명, 김재철 체제 부당전보의 상징적 존재… 그는 왜 스케이트장에서 눈을 쓸어야 했나 “지난 9년 동안 가랑비에 옷 젖듯 우리는 점점 수동적으로 변해갔다”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이우환(53) MBC PD는 영화 ‘공범자들’에 낯선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영화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 제작자가 아닌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 스케이트장에서 눈을 쓸고 있는 관리인으로 출연한다.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MBC PD가 왜 스케이트장 관리를….’

2014년 10월 MBC 교양국이 폐지됐다. 회사는 교양국 폐지에 대해 “핵심 역량의 집중과 확대, 조직 혁신으로 효율성과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조직개편”이라고 설명했다. 불과 7개월 전 이 베테랑 PD는 MBC 프로그램 ‘불만제로’로 한국PD연합회 작품상을 받았다. 하지만 교양국 폐지와 함께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농군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 이우환 MBC PD는 영화 ‘공범자들’에서 프로그램 제작자가 아닌 스케이트장에서 눈을 쓰는 관리인으로 등장한다.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MBC의 부당 전보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이 PD는 왜 그렇게 인사 탄압을 받았던 것일까. 사진=뉴스타파 제공
교육 발령 이후 배치된 곳이 신사업개발센터였다. 이곳에서 스케이트장 관리 업무를 해야 했다. 이우환 PD는 “스케이트장에서 후배들을 마주쳐야 할 때 내가 무너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최승호 PD(영화 ‘공범자들’ 연출·MBC 해직 PD) 촬영을 허락했다.

“처음에 최승호 선배가 찍으러 온다고 했을 때 내 PD 인생이 ‘스케이트장 관리인’으로만 기억될까봐 반대했다. 그런데 백종문(MBC 부사장)·안광한(전 MBC 사장) 그들이 대수롭지 않게 저지른 일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이우환 PD는 이명박 정부 이후 MBC 부당 전보의 상징적 존재로 꼽힌다. 언론노조 사무처장 전임 활동가 파견을 마치고 돌아온 2011년, PD수첩 ‘남북경협 중단 그 후 1년’ 편에 대한 취재 중단 지시에 항의했다가 MBC ‘용인 드라미아개발단’으로 쫓겨났다. 법원의 전보 무효 가처분 결정으로 복귀했다가 2012년 파업 참여를 이유로 3개월 대기발령, MBC 아카데미 교육(MBC 구성원들은 ‘신천교육대’라고 불렀다) 등을 받았다.

2013년 비제작부서인 편성국 MD로 발령받은 뒤 법원 판결을 통해 또다시 현업에 복귀, 드디어 불만제로를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4년 3월 다큐멘터리부 전보 후 그해 4월부터 세월호 다큐 제작을 두고 사측과 갈등을 빚었다. 이후 교양국 폐지와 함께 스케이트장 관리 부서로 배치됐다. 시련의 연속이었다.

현재 소속된 콘텐츠제작국으로 그가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도 대법원이 지난 4월 사측의 인사 조치를 부당 전보로 확정한 데 있다. “MBC 경영진에게 법의 판단은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지난 9일부터 이 PD는 제작 중단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 이우환 MBC PD가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김장겸 MBC 사장 퇴진 피켓팅을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영화 ‘공범자들’에 출연하게 됐다. 신사업개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다.

“그때 최승호 선배가 ‘아직 스케이트장에서 근무하냐’며 연락을 했다. ‘하고 있다’고 하니 ‘한번 찍으러 갈게’라고 말했다. 비제작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의 그림이 필요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거부했다. 화면이 공개됐을 때 스케이트장 그림 하나로 내 상태가 규정되는 게 우려스러워 소심하게 저항한 것이다. 최 선배가 ‘그런 현장에 있는 모습을 찍을 수 있는 건 너뿐’이라며 강행했다.(웃음) 멀리서 찍더라.”

- 최 감독의 우격다짐이 명장면을 연출했다.

“편집 과정에서도 빼면 안 되냐고 물었는데 최 선배가 완고했다.(웃음) 어차피 찍고 난 뒤에는 감독 권한 아니겠나.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기억인 건 맞다. 하지만 기록을 만들면 언젠가 백종문, 안광한 등이 보지 않겠나? 그 장면을 본다면 자신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2011년부터 부당 전보를 반복적으로 받아왔다. 가장 치욕적인 전보는 무엇이었나?

“스케이트장 관리를 하면서 느꼈던 모멸감이 컸다. 함께 그 부서에 있던 동료 기자가 무너진 적이 있었다. 갑자기 한 사람이 500원 짜리 동전 교환이 안 된다고 자신에게 삿대질하며 난리를 쳤다는 이야기였다. 내 경우 출퇴근하는 후배들을 한 번씩 마주칠 때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후배들이야 아무렇지 않게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이미 무너졌었다. 동료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긴 쪽팔리지만 백종문·안광한 등에겐 보여주고 싶었다. 아무 생각없이 낙인 찍은 결과에 대해 일말의 미안함을 느꼈으면 한다.”

이우환 PD는 잘 나가는 PD였다. 2005년 PD수첩 ‘병역 면제를 위한 지도층 국적 포기자들’ 시리즈로 사내 우수상을 탔다. 최초의 소비자 고발프로그램 불만제로를 기획해 이듬해 사내 공로상도 거머쥐었다. 불만제로는 2007년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 ‘잇몸약의 배신’ 편으로 2014년 3월 한국PD연합회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 시상식 축사는 안광한 당시 MBC 사장이 맡았다. 시상자는 김철진 MBC 편성제작본부장(현 원주MBC 사장)이었다. 이 PD는 이들과 목례를 주고받고 축하한다는 말도 들었지만 정작 인사 평가는 최하등급인 R등급을 받았다.

▲ 이우환 MBC PD는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안에서 진행된 시위에서 백종문 MBC 부사장 피켓을 들고 서있었다. 백 부사장은 MBC PD들에 대한 인사 탄압을 자행한 대표적 인사로 꼽힌다. 사진=김도연 기자
- 2014년 상반기 인사고과에서 R등급을 받고 저성과자 교육을 받았던데?

“회사에 작품상 수상을 어필했는데 ‘소 귀의 경 읽기’였다. 당시 김현종 교양제작국장(현 목포 MBC 사장)은 ‘그런 건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고 이와 관련한 재심에서 권재홍 부사장(현 MBC플러스 사장) 등은 ‘질의응답은 없다’며 내 항변을 틀어막았다. 앞서 한국PD연합회 시상식에선 축하한다며 악수도 하고 회사 사보에단 내 수상소감을 실었던 작자들 아닌가. 그로부터 사법부의 1·2·3심을 거치고 나서야 비제작부서를 벗어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 2014년 세월호 다큐멘터리도 제작 중 교체됐다. “투쟁성이 강하다”는 이유였다.

“위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르포 제작을 하자고 했다. 제작에 들어갔더니 느닷없이 접으라는 통보가 내려왔다. 그때도 국장은 김현종이었다. 보도국에서 많이 하고 있으니까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결국 타협을 본 게 ‘100일 후에 하자’는 것이었다. 세월호 취재는 정말 어려웠다. 세월호 가족들은 MBC를 정말 미워했다. 내가 봐도 MBC가 미울 수밖에 없었다. MBC 보도는 세월호 진실을 왜곡하는 ‘개차반’이었으니까. 취재 요청에 가족들은 ‘네 말을 믿으라고?’라는 분위기였다. 회사는 또다시 막아섰는데 김현종은 ‘이우환은 언론노조 출신에다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내가 프로그램을 맡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평소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들었다.(웃음) 결국 교체됐다. 당시엔 내가 프로그램을 맡고 안 맡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방송이 나가는 게 더 중요했다.”

- 회사는 왜 이 PD에 유독 가혹했다고 보나?

“그들이 인사 구실로 삼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인사를 안 한다는 것인데.(웃음) PD가 프로그램 아이템에 의견을 강하게 개진하고 그 때문에 (방송이 나가) 저쪽이 좌절된 것은 내 경우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게 본질이고 ‘언론노조 출신’, ‘인사 안 한다’ 등은 덧씌운 논리였던 것 같다. 김현종이 ‘인사 안 한다’는 이유를 들 때 정말 왜 인사를 안 하는지 이야기해주고 싶었지만 참고 참았다. 세월호 방송이 더 중요했고 절박했다.”

▲ 이우환 MBC PD가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인근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경영진에게 법의 판단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기본과 원칙이 없다. 법원의 부당 전보 가처분 인용 결정이 나오면 같은 행위를 반복해선 안 된다. 그런데 부당 전보만 세 번 겪었다. 법은 이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약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법을 어기고 또 인사 조치를 했을 것이다.”

- 앞으로 MBC에서 제작을 할 수 없겠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신사업개발센터에서 두려움이 있었다. 최하등급(R등급)을 3년간 3회 이상 받으면 인사위원회에 회부된다. 또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세게 걸 때였다. MBC가 시범 케이스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무엇보다 일을 시키지 않았다. 잇따른 격리와 해고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4·13 총선 전까지 나와 동료들은 불안해했다. 만약 촛불이 없었다면 계속 스케이트장에 있다가 해고됐을지 모른다.”

실제 지난 2월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고영주)에서 열린 MBC 사장 후보자 면접에서 권재홍 당시 부사장은 2012년 파업에 참가한 인력을 ‘유휴 인력’으로 규정했다. 그는 “유휴 인력들을 경인지사에 많이 보내놨고 다른 부분에도 많이 보냈다”, “안 될 사람은 다른 데로 배치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 자리(소위 내부에서 ‘유배지’로 지칭되는 비제작부서)는 충분히 더 만들어갈 수 있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본부노조 조합원에 대한 인사 배제를 치적으로 삼았다. 이 PD는 “회사는 파업 참여 인력을 정교하게 반복적으로 솎아냈다”며 “밝혀진 블랙리스트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반복적인 인사 조치는 결국 ‘너 나가’라는 신호였다”고 말했다.

- 촛불시민이 나락에 빠진 MBC에 마지막 기회를 준 것 같다.

“촛불집회에서 MBC 취재진이 쫓겨나기도 했지만 ‘MBC가 저렇게 가면 안 된다’ ‘이제는 구해야 한다’는 열망이 있었던 것 같다. 국민과 시청자들이 직접 MBC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무기력제를 투여한 것처럼 계속 멍한 상태였을 거다. 대충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서서히 죽어갔을 거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지금의 MBC가 가장 바닥이었으니까.”

▲ 지난 1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MBC기자협회의 제작거부 돌입 기자회견이 진행되던 도중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국회인사청문회가 대형스크린에서 생중계되고 있다. MBC 정상화는 이뤄질 수 있을까.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기자·PD·아나운서 등 MBC 언론인들이 제작 중단을 선언하며 일어났다. 다음 달이면 총파업에 돌입할 것으로 보이는데?

“아나운서들 결의에 깜짝 놀랐다. 사실 9월이면 파업에 들어갈 텐데 몇 주 앞서 제작 중단을 선언했다. 이제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거다. 단순히 김장겸 MBC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서 벌어지는 싸움은 아니라고 본다. 부지불식으로 침몰해온 MBC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나아가 한국사회와 언론에 대한 깊은 고민들이 있는 것 같다. ‘김장겸 체제’ 이후에 대한 고민과 각성이 반영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 ‘김장겸 체제’ 이후의 고민, 필요하다는 것인가?

“김 사장과 고 이사장 체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소멸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만큼 처벌받으리라고 본다. 이들은 내년 8월이면 방문진과 MBC를 떠나야 한다. 그럼에도 구성원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지난 9년 동안 가랑비에 옷 젖듯 우리는 점점 수동적으로 변해갔다. 그랬던 이들이 촛불을 보고 자각했다. ‘이러다 진짜 무너진다’는 경각심이 커진 것이다. 구성원들이 성명을 통해 지난 정권에서 탄압 당한 사례를 공개하고 있다.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우리가 어떤 검열에 있었고 무엇 때문에 위축됐는지 다 꺼내놓고 공유하자는 취지다. 침묵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방송 정상화 에너지를 우리 스스로 끌어내보자는 열망이다. 이 열망이 MBC를 정상화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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