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이쪽이십니다" "구매 가능하세요".. 서비스직 이상한 말, 왜 안 고쳐질까

송혜진 기자 2017. 8.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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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직 '바이러스 언어'
기괴한 표현이 전염성 강해
금세 퍼져나가고 습관처럼 받아들여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경기 성남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박성원(45) 원장은 지난달 초 병원 직원들에게 인쇄물을 하나씩 나눠줬다. 그 내용 중 일부는 이랬다. "손님이 '내일 아침 10시에 진료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면? '네 가능하신 부분이세요(×)' '네, 됩니다(○)'" 박 원장은 "그놈의 '가능하신 부분'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면서 "아무리 지적해도 바뀌질 않아서 아예 ○와 × 표시까지 해서 나눠줬다"고 했다.

서울 도곡동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김형수(38)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직원들이 걸핏하면 손님에게 "○○일에는 예약이 어려우십니다"라고 대답하는 걸 들으면서 속이 터진다는 것이다. "아니, 예약을 한국말로 할 텐데 대체 뭐가 어렵다는 겁니까? 그냥 예약이 된다 안 된다, 속 시원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여러번 말했지만 잘 안 바뀌더군요."

유통·서비스 업계가 '쉽고 올바른 우리말을 쓰자'고 캠페인을 앞다퉈 벌였던 게 벌써 5~6년 전 일이다. 2010년 한 항공사 회장이 임원 전체 회의에서 "'이쪽이십니다' 같은 잘못된 사물 존칭 좀 그만 쓰라"고 이야기하면서 화제를 모았고, 이후 롯데·현대·신세계 등 백화점과 카페베네 같은 커피 전문점, 경희대병원 같은 일부 병원에서 올바른 높임말을 팻말로 제작해 상담 창구나 매장 곳곳에 붙여놓은 적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현대카드를 비롯한 몇몇 카드·보험사도 ARS 직원들이 쓰는 말을 쉽고 정확한 말로 손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괴한 서비스 언어는 여전히 곳곳에 넘쳐난다. 최근 '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라는 책을 쓴 아나운서 윤영미는 '어려우신 부분이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구매 가능하세요' 같은 말을 두고 "서비스 업계 3대 바이러스 언어"라고 했다. "손님을 고객님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하죠. 손님도 고객도 모두 이미 높임말인데, 다들 여전히 고객님이라고 잘못 높여 부르잖아요. 안타깝게도 이런 잘못된 말은 전염성도 강해요. 금세 퍼지고 다들 습관처럼 받아들이죠."

서비스 업계에서 흔히들 강조하는 소위 '쿠션 언어'도 이상한 표현을 부르는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백화점·유통업체 직원에게 고객 응대하는 법을 가르치는 서비스교육센터 강사 정수영씨는 "손님이 뭘 물었는데 곧바로 '모른다' '안 된다'고 대답하면 항의를 듣기 마련이다. 그래서 '외람되지만' '죄송합니다만' '안타깝게도' 같은 말을 넣어가며 부드럽고 완곡하게 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업계에선 그걸 쿠션 언어라고 부른다"고 했다. 문제는 '쿠션 언어를 쓰라'는 지침이 종종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안타깝게도 품절되어 구매가 힘드십니다' 같은 어색한 말까지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정씨는 "'지금은 물건이 없습니다' 같은 표현이 더 낫다고 아무리 얘기해줘도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이런 확실하고 단정적인 표현을 여전히 부담스러워하더라"고 했다. 올바른 높임법으로 대답해도 '존칭을 왜 안 쓰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C 커피 전문점 세종로 점장으로 일하는 김선(31)씨는 "'커피 나왔습니다'고 하면 '왜 반말하느냐'고 대뜸 화내는 사람들이 요즘도 가끔 있다. 그럴 때면 그냥 '커피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나 싶다"고 했다.

기업 차원 캠페인이나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많다는 지적도 계속 나온다. 서울 시내 한 면세점에서 고객서비스(CS) 교육을 하고 있는 이모씨는 "유통업계 특성상 직원들이 계속 바뀌다 보니 올바른 어법을 아무리 가르쳐도 새로 들어온 직원들은 틀린 말을 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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