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노회찬이 입을 열면 정치가 쉬워진다

2017. 9. 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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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ㆍ조대엽ㆍ박기영.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공직에 발탁한 개혁 인사지만, 의석수 6석에 불과한 '미니정당' 정의당이 모두 반대해 낙마한 인물이다.

정의당의 '데스노트'(Death Noteㆍ일본 인기 만화)라는 말이 나돈다.

지난달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의당 원내사령탑인 노회찬(61) 의원을 만났다.

공교롭게도 정의당의 직격탄을 맞은 공직후보자는 모두 자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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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ㆍ비유화법…정치계 ‘김제동’
-37년간 서민ㆍ노동자 대변…“후회 안해”

[헤럴드경제=최진성ㆍ홍태화 기자] 안경환ㆍ조대엽ㆍ박기영….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공직에 발탁한 개혁 인사지만, 의석수 6석에 불과한 ‘미니정당’ 정의당이 모두 반대해 낙마한 인물이다. 정의당은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도 콕 찍었다. 정의당의 ‘데스노트’(Death Noteㆍ일본 인기 만화)라는 말이 나돈다. 지난달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의당 원내사령탑인 노회찬(61) 의원을 만났다. 노 원내대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전원책 변호사 등 국내 정치권에서 몇 안 되는 달변가 중 한 명이다. 따분한 정치 이야기를 쉽고 재밌는 비유로 풀어내면서 ‘정치계의 김제동’으로 통한다.

노 원내대표에게 ‘문재인 정부의 100일’을 평가해달라고 물었다.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라고 촌평했다. 절반의 실패는 다름아닌 공직자 인선이다. 노 원내대표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등 꽤 상징적이고 호감가는 인선도 있었지만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저 사람을 왜 임명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국무위원도 적지 않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공교롭게도 정의당의 직격탄을 맞은 공직후보자는 모두 자진 사퇴했다. 정의당 관계자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후보자를 들여다본 결과”라고 설명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5ㆍ18’에 충격…용접공으로 첫발=정의당의 시선이 노 원내대표의 시선이다. 그의 정치일생은 늘 서민, 노동자와 함께 했다. 자라온 환경은 ‘주류’였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경기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나왔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경기고 동기생이다. 평탄하던 삶은 박정희 유신체제, 전두환 군사정권 등을 겪으면서 일변한다.

노 원내대표는 “광주 5ㆍ18 민주화운동이 준 좌절은 엄청났다”면서 “‘식자들 몇 명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문제 의식이 있는 사람이 평생을 투신해 바닥을 일구는 긴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용접공’이었다. 서울 영등포 한 직업학교에서 자격증을 따고 독산동 산업용보일러 제조업체에 취직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구간 건설현장에도 뛰어들었다. 노 원내대표는 “2호선을 탈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제가 용접한 철제 빔이 땅 속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1989년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사건’에 연루돼 구속(국가보안법)됐고 2년6개월 복역했다. 법정에서 ‘나는 사회주의자다’고 말한 것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그는 “사회주의의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영국 노동당도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사회주의, 구(舊) 소련의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인민노련 사건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복권(復權)됐지만 유공자나 보상 신청은 하지 않았다. 노 원내대표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그냥 넘겼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한평생 노동자 편…후회는 없다=노 원내대표는 진보정당의 시초인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대표로 활동하다 2000년 권영길 전 의원과 함께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정치계의 ‘벤처기업’이라고 표현했다. 첫번째 금배지는 2004년 17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달았다. 이 때부터 그의 진가가 발휘됐다. 각종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촌철살인과 같은 평론과 대중을 웃기는 입담으로 인기를 끌었고 단숨에 진보 정치계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당시 민노당의 지지율은 17~18%까지 치솟았다. 2014년 통합진보당 사건은 성장통이었다. 노 원내대표는 “지난해 총선과 올해 대선이 바닥에서 벗어나 반등하는 초기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그는 37년째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지역구는 창원시 성산구지만 정치 반경은 대한민국 전역이다. ‘일당백’을 해야 한다. 하루에 비행기를 11번 탄 적도 있다. 그는 알버트 슈바이처를 좋아한다. 남을 도울 수 있는 기술을 배워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서 봉사하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다. 노 원내대표는 “학교에서 정의의 편에 서라고 배웠다. 선생님이 가르쳐준대로 행동하고 옳다고 여긴 길로 왔다.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i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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