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5013달러시대..드디어 빼든 '규제 칼' 은행이 가상화폐거래 실명인증해야
거래량 코스닥 추월..이용자 120만 추정
거래소 인가제는 '정부 공인' 오인 우려해
가상계좌 은행에 실명인증 의무 부여
이용자 보호 장치는 거래소 자율규제로
'도박판' 막기 위해 다단계·마진거래 금지
ICO는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키로
"가상화폐가 악? 시대 흐름 외면" 비판도
정부가 처음으로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의 칼’을 빼 들었다. 다만, 규제의 칼날이 가상화폐나 가상화폐 거래소를 직접 향하지는 않았다. 아직 가상화폐에 대한 법적 정의조차 불분명해 가상화폐를 직접 규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거래소와 거래하는 은행들에 실명인증 의무를 부여해 가상화폐가 불법 거래나 자금세탁에 악용되는 일을 막는다는 게 규제의 주요 내용이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정치권이 먼저 움직였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일 가상화폐 거래소가 일정 수준(5억원 이상)의 자기자본과 인력, 전산설비 등을 갖추고 금융위 인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개정안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금융위 인가를 받는 정식 금융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순간, 이용자들에게는 “정부가 가상화폐를 공식 인정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정부가 가상화폐 투기를 조장하는 꼴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내놓은 방안이 금융회사를 통한 우회 규제다. 그동안에는 이메일만 있으면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입, 누구나 지갑(계좌)을 만들어 가상화폐를 사고 팔 수 있었다. 다만 거래소별로 자체 규정을 만들어 현금을 입출금할 수 있는 가상계좌를 만들고 싶으면 실명인증 절차를 거쳐야 했다.
주홍민 금융위 과장은 “이런 조치를 통해 가상화폐 거래의 시작과 종결(원화의 입출금) 시점의 자금 추적이 쉬워져 가상화폐 거래소가 자금세탁에 이용될 소지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며 “이용자 본인 계좌에서만 입출금이 되도록해 보이스피싱ㆍ대포통장 등 범죄 악용을 방지하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아울러, 소액해외송금업자가 가상화폐를 해외송금의 매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 기획재정부나 한국은행ㆍ금융위원회 등의 협조를 통해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 소액해외송금업자에 대래 의심거래를 보고하고 실명확인을 의무화하는 등의 규제도 적용하기로 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이용자 보호를 위한 장치는 사업자들간의 자율규제 도입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가 거래소 인가제 등의 형태를 도입하는 것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자율규제에는 거래량 폭증에 따른 서버 다운 등 전산문제 개선을 위한 서버 확장 및 시스템 개선, 고객정보 및 예치자산의 구분 관리와 함호키 안전관리 방안 등의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24시간 도박판’으로 변질되는 가상화폐 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유사수신규제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 기존 유사수신행위 외에 ‘가상화폐 거래 행위’ 등에 대해서도 규율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다단계ㆍ방문판매법상 거래 방식은 금지하고, 마진거래 등으로 지나치게 투기를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금지ㆍ처벌할 계획이다.
또한 지분증권ㆍ채무증권 등 증권발행 형식으로 가상화폐를 이용해 자금조달(ICO)하는 행위는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하기로 했다.
정부는 당장 우려되는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일단 경찰ㆍ금융감독원 합동으로 ‘가상화폐 합동단속반’을 구성해 가상화폐 관련 다단계ㆍ유사수신 등 사기범죄에 대해 집중 단속할 계획이다. 또 방송통신위원회와 인터넷진흥원 중심으로 해킹 등 고객정보 유출 사고를 철저히 조사하고, 조사결과에 따라 고객에 대한 손해배상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 차원의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공동점검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의적인 출금제한 조항 등 불공정약관 조항의 위법성을 검토하고, 국세청은 가상화폐 거래소의 사업소득 등을 집중 들여다볼 계획이다.
업계 전문가는 “이용자 보호 장치가 나온 것은 다행스럽지만 가상화폐 거래소를 마치 ‘악’으로 규정하고 규제안을 만든 것 같다”며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벤처들의 자금 모집 수단인 ICO를 무조건 금지하는 등의 규정은 시대 흐름을 전혀 모르고 내놓은 규제”라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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