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부결사태, 색깔론·반인권에 올라탄 국민의당 책임이다

박세열 기자 2017. 9. 1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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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국민의당, 기어이 소멸의 길로 가겠다는 것인가

[박세열 기자]

 
국회는 시대의 변화를 거부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더불어민주당의 협치 실패라는 비판도 틀린말은 아니지만, 이런 비판은 더 큰 문제를 덮어버린다.

김 후보자 부결 이유를 살펴보면 기가막힌다. 통합진보당 해산 관련 소수 의견을 앞세운 극우파들의 '색깔론'에 국회가 굴복했고, 군내 동성 성행위 처벌을 '군영 내 근무 시간'으로 한정한 소수 의견을 냈다는 것을 빌미삼은 극우 종교 세력에 국회가 굴복했다. 국회는 지금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관련 소수 의견을 냈다는 이유는 주로 자유한국당 등 극우 진영이 내놓았다. 박근혜 정권의 '기획 수사'로 인한 정당 해산 심판의 정당성 자체는 차치하고라도, 헌법재판소가 정당 설립과 사상의 자유와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반영했다는 것 때문에 김이수 개인을 '좌파', 나아가 '빨갱이'라는 야만의 언어를 동원해 비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 지지자들의 이런 사상 검증은 21세기의 매카시즘이다. 

이는 또한 박근혜 정권의 적폐가 여전히 국회 의석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가감없이 보여준 꼴이다. 앞으로 헌법재판소장이든 재판관이든 후보자는 통진당 해산에 대한 견해를 먼저 밝히고 자유한국당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동성애 옹호 논란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군인 간 합의에 의한 동성애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게 원칙이고 처벌한다면 군영 내 근무 시간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견 제시를 두고 성소수자 혐오자들의 무차별적 반인권 공세에 국회가 굴복해버린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국회에 대한민국 인권의 미래를 담아낼 '개헌안'을 맡겨야 하는 것인가. 

그들의 주장대로 김이수 후보자가 '빨갱이'이고 '반성경적'이라면, 그가 40년 가까이 그가 법조 공직에 몸담고 있었고 존경받는 판사였다는 세평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김이수라는 '빨갱이'에 대한민국이 40년간 농락당해왔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동안 자유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은 무엇을 했나. 

진짜 문제는 국민의당이다. 소위 '호남 정신'과 '김대중 정신', 그리고 '민주화 정신'을 계승한다는 이 정당의 행태는 아연실색케 한다. 애초부터 색깔론과 성소수자 혐오론에 근거해 김 후보자 임명에 극렬 반대했던 자유한국당(107명)과 바른정당(20명)의 반대표는 예상됐던 바다. 이번 김 후보자 부결 사태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국민의당의 책임이 크다. 찬성표가 145표라면 민주당(120명), 정의당(6명), 새민중정당(2명), 무소속 서영교 의원을 제외하더라도 국민의당(40명) 상당수 의원들이 김 후보자 인준에 적극적으로 비토를 놓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김 후보자 인준 표결을 계기로 국민의당은 '색깔론'과 '반인권적' 여론에 휘둘리는 취약한 정당이라는 게 입증됐다. 이는 호남 정신도, 김대중 정신도, 민주화 정신도 아니다. '반문 정신'일 뿐이다. 국민의당 내에서 김 후보자 인준에 부정적 기류가 늘었다는 보도는 안철수 대표 선출 이후부터 자주 등장했다. 

이것이 안 대표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겠다는 의지만 불태웠을 뿐 사법 영역에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시키겠다는 취지를 완전히 묵살한 게 맞다.  

국민의당 김수민 원내대변인의 지난 5일자 논평을 보자.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인준에 대한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다. 그 동안 김 후보자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특히 軍내 동성애 인정 관련 논란에 대해선 여당의 입장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헌재의 군내 동성애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6 합헌결정 당시 김이수 재판관은 군형법의 해당 조항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를 들어 위헌 의견을 냈다.

현재 기독교계 등에서는 김 후보자가 헌법재판소장이 될 경우 자칫 軍내 동성애 행위를 처벌토록 규정한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여당이 가결시키려고 하는 인사에 대한 논란에 대해 책임 있게 입장을 밝히고, 그에 따른 국민적 판단을 받을 것을 촉구한다.

동성애 처벌법 조항이 위헌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근거 없는 '기독교계'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김 후보자에 대한 '사상 검증'을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논평이다. 

헌법재판소의 구조나 성향을 보았을 때 재판소장 한명을 바꿨다고 군형법 위헌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코미디다. 심지어 김 후보자는 군형법 자체에 대한 위헌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다. 왜곡된 극우 기독교계의 주장을 검증 없이 논평에 인용한 것은 공당으로서 무책임한 자세다. 

이번 헌재소장 부결 사태는 국민의당이 어떤 길을 걸을지 명확히 보여준 사례다. 문재인 대통령에 타격을 입히겠다면 정정당당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성소수자 혐오 정서에 기대, 색깔론에 기대어 국민이 부여한 40석을 제멋대로 휘두른다면 국민의당은 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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