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결혼 1주년인데 허망하게" 여고생 무면허 운전이 만든 비극

박진호.최종권 2017. 9. 13.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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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배달기사 아버지 심경 토로
"6개월 된 아들 잘 키우겠다고
늦게까지 한 푼 더 벌려다 사고"
무면허 여고생이 몰던 차량과 충돌해 숨진 배달기사 최씨의 오토바이.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한 달 뒤면 결혼 1주년인데… 6개월 된 아들을 두고 이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무면허 여고생이 운전하는 차량과 충돌해 숨진 강원도 강릉의 퀵서비스 배달기사 최모(24)씨의 아버지(58)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아버지 최씨는 12일 중앙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얼마 전 태어난 아들을 잘 키우겠다고 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밤늦게까지 배달일을 하다 사고가 난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들 최씨는 결혼 이후 강릉의 한 아파트에서 월세를 내고 생활해 왔다. 아버지는 “사고 이후 아들을 보니 얼굴과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몸이 아픈 내가 걱정할까 봐 힘든 내색 한 번 안 하고 혼자 해결하는 착한 아들이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숨진 최씨의 아버지는 5년 전 직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다.

최씨가 퀵서비스 배달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 2일. 치킨 등 음식을 주로 배달했다. 업무 특성상 출퇴근이 자유로워 최씨는 오후 2시부터 오전 2시까지 근무를 희망했다고 한다. 배달 건수에 따라 매달 수입이 다르지만 12시간 일하면 월 400만원 정도는 벌 수 있다고 한다.

퀵서비스업체 관계자는 “예정대로라면 업무가 마감돼야 했는데 치킨 배달 의뢰가 들어와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사고 당일) 배달을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난 10일 오전 2시25분쯤 강릉시 교동 강릉종합경기장 인근 삼거리에서 여고생 김모(18)양이 몰던 승용차와 충돌해 숨졌다. 김양은 이날 0시쯤 강릉시 노암동 공영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어머니의 승용차를 몰래 끌고 나왔다. 조수석과 뒷좌석엔 친구 3명도 태웠다. 김양은 무면허 상태로 도심을 달리다 강릉종합경기장으로 가던 중 사고를 냈다. 경찰은 김양을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하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작년 10대 무면허 사고 662건, 11명 숨져

10대 청소년의 치기 어린 무면허 운전 사고로 인한 참사는 잊을 만하면 발생한다. 지난 7일 충북 증평군에선 A군(17)이 또래 친구를 태우고 무면허로 운전하다 중앙분리대 등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A군이 숨지고 동승했던 B양(17)이 중상을 입었다. 지난달 31일에는 부산시 남구에서 C군(17)이 또래 4명을 태우고 승용차를 몰다 주차된 차량 5대를 잇따라 들이받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0대가 자동차와 오토바이 등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낸 사고는 662건에 달했다. 전체 무면허 사고(4192건) 중 15%였다. 6건 중 1건은 10대가 저지른 셈이다. 지난해 10대 무면허 운전 사고로 운전자 등 11명이 숨졌다.

신분을 속여 렌터카를 빌린 청소년들이 무면허 사고를 내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렌터카 대여 과정에서 미성년자의 운전면허 확인 의무화 등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난 7월 강원도 양구군 상용터널에서는 10대 청소년 3명이 렌터카를 빌려 무면허로 운전하다 사고를 내 1명이 숨졌다. 지난 4월 전북 전주에서는 무면허로 렌터카를 빌려 타고 가던 이모(17)양 등 4명이 택시와 충돌한 뒤 인근 주유소로 돌진해 시설물을 파손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용기 의원이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무면허 렌터카 사고 1474건 가운데 20세 이하 운전자가 낸 사고가 458건으로 무려 31%나 됐다. 이 기간 청소년 무면허 사고로 숨진 사람은 19명으로 전체 사망자(39명)의 48.7%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무면허 운전과 뺑소니 등 각종 범죄사항에 대한 교육이 의무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청소년 무면허 사고는 호기심이나 일탈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정규 교과 과정에 교통안전교육이나 운전예절 등을 가르치는 교육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릉·증평=박진호·최종권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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