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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의 길 찾기](5)고리, 원전·인구 밀집도 높아..후쿠시마보다 41배 더 위험

고영득 기자 입력 2017. 09. 15. 06:00 수정 2017. 09. 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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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세계 최다 원전 밀집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다수호기(한 장소에 여러 원전을 짓는 것)의 위험성을 잘 보여줍니다.”

15일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만난 원자력 정책 전문가인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는 “원전이 한 부지에 많이 몰릴수록 위험은 배가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선 쓰나미에 의한 전원 상실로 총 6기 가운데 3기의 핵연료봉이 녹아내렸고 4기에서 수소폭발이 발생했다. 장 교수는 “전력수급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신고리 5·6호기가 완공된다면 원전 밀집도가 더 높아지면서 인근 주민의 사고 위험 노출 가능성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 독보적인 원전 밀집도

신고리 5·6호기가 추가로 건설되면 고리 부지에는 사용후핵연료가 남아 있는 고리 1호기를 포함, 모두 10기의 원전이 자리하게 된다. 그야말로 ‘원전단지’가 형성되는 셈이다. 반경 3㎞ 안에 10기의 원전이 밀집한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전체 발전용량을 국토 면적으로 나눈 값인 원전 밀집도가 한국은 0.240이다. 프랑스(0.120)나 일본(0.111)의 두 배 수준이다. 영국(0.043), 미국(0.011)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에서 “원전이 다수 밀집돼 있는데 주변 인구까지 많으면 사고 발생 시 피해 규모가 상당히 커질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고리 원전 반경 30㎞ 이내 인구는 약 340만명이다. 반면 후쿠시마 원전 반경 30㎞ 이내 인구는 17만명으로 20배 차이가 난다. 전 세계에서 원전이 6기 이상 몰려 있는 단지 중에서 주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것이다. 원전단지의 발전용량이 크다는 것은 방사선 방출량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고리 원전 주변에 사람이 많이 살다보니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후쿠시마보다 더 큰 피해를 부를 것이란 전망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원전 운영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호기별로 연계가 되어 있지 않아 동시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적다고 한다. 지진에도 끄떡없게 설계됐다고도 한다.

하지만 원전은 지진과 쓰나미뿐만 아니라 홍수, 낙뢰, 테러, 전쟁 등 여러 위험에 노출돼 있다. 동일한 외부 송전선로가 끊어져 냉각기능을 상실하는 일이 한꺼번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연구 결과를 보면 국내에서 2000년 이후부터 자연재해 등이 다수호기에 영향을 준 사고는 26건에 이른다. KINS는 “다수호기 간 공유하고 있는 계통과 구조물이 있다면 다수호기 사고 가능성은 증가한다”고 밝혔다.

■ 후쿠시마보다 41배 위험성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발전용량과 반경 30㎞ 내 인구수로 잠재적 위험성을 분석했을 때 고리 원전의 위험성은 3.9로 나타났다. 후쿠시마 원전의 잠재적 위험성은 0.094였다. 고리 원전이 후쿠시마 원전보다 41배는 더 위험하다는 결론이다.

만일 고리 1호기를 제외한 원전 9기가 동시에 가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요인으로 모든 원전이 자동 정지하게 되면 전력망 전체가 끊어지는 대정전(블랙아웃)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처장은 “원전이 동시에 멈추면 최초의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최소의 전력공급도 불가능해 복구에 일주일 이상 걸릴 수도 있다”며 “블랙아웃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원전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원전에서 중대사고가 터졌을 때 인근 주민들의 대피 대책도 현재로선 완벽하게 나온 게 없다. 원자력안전연구소에서 만든 대피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시민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와 고속도로가 꽉 막히는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은 허구가 아님을 보여준다.

연구소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고리 원전 반경 20㎞ 내에 있는 부산, 울산, 경남 양산시 등 3개 지역 인구 170만명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인 반경 20㎞ 밖으로 대피하는 데 22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꼬박 하루가 걸린 셈이다. 대피가 늦어진 것은 차량 정체 탓이다.

연구소 측은 “KINS가 방사성물질 확산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지자체나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도 문제”라며 “도로망 확충뿐만 아니라 지역별 대피경로와 최적 대피경로의 선정, 주기적인 대피훈련, 최적의 구난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격납건물 기능이 상실돼야 방사성물질이 누출되는데 국내 원전은 격납건물 두께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약 5배로, 방사성물질 누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세계 주요 원전 보유국들은 후쿠시마 사고 후 다수호기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엔 다수호기의 안전성 평가 체계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 이에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를 떠나 한국이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 국가인 점을 고려하면 국내에 적합한 안전성 평가 체계를 신속히 마련하고, 투명한 정보 공개로 원전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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