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펑펑' 욜로족 vs '꾹꾹' 노머니족..누구말 들어야해?

김민중 기자 입력 2017.09.23. 06:08 수정 2017.09.23.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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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불투명한 사회, 동전의 양면..극단적 소비 혹은 극단적 저축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회사원 김현재씨(가명·30)는 300만원가량인 월급을 받으면 다음 월급을 타기 전까지 거의 다 쓴다. 주로 쉬는 날 여자친구와 여행을 다닌다. 올해 초에는 빚을 내고 수입차인 지프(Jeep) 오프로드 차량을 사기도 했다. 5년 넘게 일을 했지만 모아 둔 돈은 한 푼도 없다. 김씨는 자신을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족이라고 소개한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니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재를 즐긴다는 의미다.

#직장인 이미래씨(가명·31·여)는 김현재씨와 정반대다. 월급이 250만원 정도인데 그중 200만원 이상을 저축한다. 가급적 아침과 저녁 식사는 식권이 나오는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점심은 아예 거른다. 밥값과 비슷한 카페 커피는 질색이다. 부모님은 독립을 권하지만 이씨는 최대한 버틸 생각이다. 회사 동료들은 이씨를 두고 돈을 안 쓴다는 뜻으로 '노머니'(No Money)족이라고 부른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소비습관이 양극화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저성장이 일상화 된 데다 미래가 불투명해지면서 청년들이 미래준비를 포기하고 있는 돈을 다 소비하거나 반대로 소비를 극단적으로 멀리 한다는 분석이다.

◇"욜로족-노머니족, 동전 양면관계"…욜로→노머니, 변신도

욜로족은 해외에서 건너온 말이다. 지난해 한 케이블 방송사의 여행 예능 프로그램인 '꽃보다 청춘'에서 한 배낭 여행객이 인사 대신 '욜로'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욜로족이 관심을 받았다. 욜로라는 말은 서구권에서 써왔던 신조어로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어가 됐다. 지난해 말 발간된 소비트렌드 분석서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는 올해를 대표할 키워드 10개 가운데 하나로 욜로를 꼽았다.

욜로는 대중가요 가사에도 등장했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 18일 공개한 신곡 '고민보다 고(Go)'에서는 "욜로 욜로 욜로 요 욜로 욜로 요(YOLO YOLO YOLO YO YOLO YOLO YO) 탕진잼 탕진잼 탕진잼"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탕진잼'은 방탕하게 소비하며 느끼는 재미를 뜻한다.

노머니족은 청년실업난과 저성장 등으로 젊은층의 소비력이 위축되면서 자연스레 부각됐다. 최근 지상파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인 '김생민의 영수증'이 인기를 끌며 공감을 얻는 게 대표적 사례다.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김생민은 시청자의 소비패턴을 분석하며 불필요한 소비를 '스튜핏'(Stupid·어리석은)이라고 지적한다. 한 60대 여성이 한 달에 15만원을 들여 핫요가(Hot Yoga)를 한다고 하자 김생민은 "집에서 방문을 닫고 스트레칭을 하면 노머니(돈이 안 든다)"라고 말해 웃음을 짓게 했다.

욜로족이 노머니족으로 바뀌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 욜로족이었다는 회사원 왕미연씨(가명·34·여)는 노머니족으로 변신 중이라고 밝혔다. 왕씨는 "우리나라가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뉴스들을 접하면서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 대기업 다니는 40대 남편과 4살짜리 딸아이를 둔 왕씨는 "곧 아들이 태어나는데 아이들이 대학 갈 때 나와 남편은 퇴직해 있을 거 같다. 어떻게 학비를 댈지 공포감이 밀려온다"고 말했다.

왕씨는 2008년에 구입한 준중형 차량을 최근 새 차로 바꾸려다가 1~2년은 더 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출·퇴근할 때 택시를 이용했던 습관도 버리고 대중교통만 이용하게 됐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욜로족과 노머니족은 동전의 양면 관계"라며 "미래가 불투명한 가운데 자포자기하고 앞날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날그날 몽땅 소비하는 게 욜로족이고, 더욱 죽을 힘을 다해 아끼는 게 노머니족"이라고 분석했다.

예능 프로그램 등 대중매체가 소비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행이나 맛집 관련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당장 삶을 편하게 살아야겠다는 인식이 확대됐다"며 "반면 김생민의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최대한 절약해야겠다'고 생각하게끔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예능 프로그램 '김생민의 영수증' 영상 캡처 /사진제공=KBS


◇욜로족=과소비, 노머니족=경기침체 부채질 우려도

한쪽에서는 욜로족과 노머니족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경계한다. 욜로족은 과소비로 이어질 수 있고 노머니족은 꼭 필요한 소비조차 하지 않아 '소비→생산→고용→소비'의 경기 선순환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우려다.

우선 욜로족의 유행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올해 7월 전국의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중 약 71%는 "요즘 욜로라는 용어가 너무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개인의 무분별한 소비가 기업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다.

하루하루 버티기 어려운 서민들은 오히려 박탈감을 느낀다는 반응도 있다. 회사원 강정미씨(가명·30·여)는 "욜로는 경제력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 같다"며 "잡지사에 다니는 친구가 최근 '곧 일을 그만두고 가끔 아르바이트를 하며 욜로족으로 살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집에 돈이 엄청 많았다. 100만원대 박봉에 시달리는 나에게 욜로족은 너무 먼 말"이라고 말했다.

분수에 맞지 않게 욜로족이 되려다 '골로족'이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골로족'은 "욜로를 추구하다 골로 간다(죽는다)"는 뜻의 신조어다.

일부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단점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욜로족이니 괜찮다'며 합리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셜 영어사전 웹사이트인 '어번 딕셔너리'(Urban Dictionary)에서는 욜로를 두고 "바보가 자신의 바보짓을 변명하기 위해 쓰는 축약어"라고 풀이한다. 배우 잭 블랙은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욜로는 라틴어를 모르는 바보들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 대신 쓰는 말임이 분명하다"라고 적었다.

노머니족이라고 마냥 긍정적인 건 아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욜로족이 돼 소비를 많이 하는 게 낫다"며 "노머니족이 많아지면 소비가 위축되고 결국 경기 전체가 더욱 침체 돼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근본 해법은 경기가 살아나 전반적인 소비력이 회복되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져 젊은이들이 미래를 밝게 보게 되면 소비가 극단화하기보다 적정 수준의 소비습관을 가진 이들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한편 소비패턴 양극화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현 체제와 관습을 거부하는 신선한 삶의 양식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욜로와 노머니는 트렌드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주체적 선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며 "욜로족은 기성세대와 달리 자신의 삶에 충실하겠다는 것이고 노머니족은 소비를 강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저항하겠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민중 기자 minjoong@, 이보라 기자 pur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