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또 위기가 오면 미국·일본이 통화스와프에 응해줄까

이상렬 2017. 10. 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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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외환·금융위기 극복, 기축통화국 도움 결정적
외환보유액 과신 말고 미·일과 통화스와프 서둘러야
이상렬 국제부장
한국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외환위기 발발 20년이 됐다. 당시 우리는 달러 같은 기축통화를 갖지 못한 나라가 얼마나 허약한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외국인 자금은 밀물처럼 빠져나갔고, 해외에서 갖다 쓴 외채는 만기 연장이 되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미국에, 일본에 매달렸다. 그러나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김영삼(YS) 정부에 “국제통화기금(IMF)에서 해결책을 찾으라”고 선을 그었다. 일본계 금융회사들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돈을 빼갔다. 임창열 부총리는 현해탄 건너 미쓰즈카 대장상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문전박대당했다.

마침내 우리는 IMF 구제금융을 쓰기로 했지만 외국인 이탈은 멈추지 않았다. 당시 김대중(DJ)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직후 보고받은 연말 외환보유액 추정치는 마이너스 6억 달러에서 플러스 9억 달러, 국가부도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DJ는 미 재무부 차관 데이비드 립턴 앞에서 ‘면접시험’을 치르고 ▶정리해고제 수용 ▶적대적 인수합병(M&A) 허용 등 ‘IMF 플러스’ 개혁을 약속했다. 그제야 미국은 IMF와 서방 12개국을 움직여 100억 달러 조기 지원을 결정했다. 12월 24일 심야에 발표된 이 결정은 달러를 구하느라 하루하루 피 말리던 한국에 말 그대로 ‘성탄절 선물’이었다. 그때 한국을 도운 또 하나의 라인이 있었다.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었다. 이들은 한국이 미군 수만 명이 주둔한 동맹임을 내세워 재무부를 설득, 자금 지원에 나서도록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2008년 가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을 덮쳤다. 돌이켜보면 물밑 상황은 외환위기보다 결코 낫지 않았다. 그해 9월 이후 롤 오버(외채 만기 연장)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환율은 달러당 1500원대로 치솟았다. 당시 우리에겐 2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이 있었지만, 막상 국제금융시장에 불이 나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외국 투자자들은 사정없이 돈을 빼갔다. 그때 우리 경제를 환란 위기에서 구해낸 건 미국과의 통화스와프였다. 통화스와프 규모는 300억 달러였지만 위기 때 미 달러화를 가져다 쓸 수 있다는 ‘마이너스 통장’의 심리적 안정 효과는 대단했다. 외국인 이탈이 즉각 잦아들었다.

결국 지난 20년간 두 차례 커다란 경제위기 극복에는 기축통화국들의 지원과 공조가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온다면 우리는 그 위기를 거뜬히 넘길 만반의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 8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3848억 달러. 20년 전에 비하면 엄청난 거액이다. 하지만 국제금융 전문가들 사이엔 “정작 금융위기가 닥치면 그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위기가 조기 진압되지 못하는 신흥시장에서는 무조건 돈을 빼고 보는 게 국제금융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냉혹한 투자가들에게 “절대 국가부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느냐가 시장 안정의 관건이다. 그것이 20년 전에는 13개국의 100억 달러 지원이라는 성탄절 선물이었고, 9년 전에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였던 것이다.

그러나 외환 방어의 이런 최종 안전장치는 지금 형편이 좋지 않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는 2010년 중단된 이래 재개 기미가 없다. 한·일 간 통화스와프는 종료된 지 2년 반을 지나고 있다. 오는 10일이 만기인 중국과의 통화스와프(560억 달러 규모) 연장 역시 작금의 한·중 관계를 감안하면 장담할 수 없다.

기축 통화국이 아닌 우리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 경제동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는 왠지 예전 같지 않아 보이고, 일본과의 골은 깊어가고 있다. 이제 위기가 오면 오로지 자력으로 극복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가 될지 모른다. 외환보유액을 꽤 쌓아놓았다고 과신할 때가 아니다. 경제든 안보든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위기를 불러온다.

이상렬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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