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한때 한국이 앞섰는데..외국인이 일본을 더 찾는 5가지 이유

서승욱 입력 2017. 10. 6. 06:01 수정 2017. 10. 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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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2015년부터 한국보다 관광객 더 많이 유치
지난해엔 2404만명으로 '관광 한 ·일전' 압도
"청소땐 변기에 앉아 손님의 눈으로" 오모테나시
5년간 '관광입국'외쳐온 아베의 관광 리더십
한국의 지방보다 잘 꾸며 놓은 일본의 시골
엔화 약세,불도저식 규제완화,인프라 정비도

"화장실 청소땐 변기를 쳐다보지만 말고 변기에 직접 앉아보라. 손님의 시각에서 서비스를 궁리해야 한다.…도어맨은 도착한 택시의 미터기부터 체크하라. 공항에서 왔는지 주변 지하철역에서 왔는지를 상상해야 적절한 인사말을 건넬 수 있다…신용카드를 받으면 카드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뒤 ‘○○○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항상 손님의 골반과 평행이 되도록 바른 자세로 마주하고 손님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관찰하라. 손님을 30초 이상 기다리게 해선 안 된다…메뉴를 결정하면 몸의 긴장이 풀리게 된다. 웨이터는 그 뒷모습만 보고도 ‘저 손님이 메뉴를 결정했구나’라고 알아채야 한다.” 데이코쿠 호텔,뉴 오타니 호텔과 함께 도쿄를 대표하는 오쿠라 호텔에서 30년간 근무했던 호텔리어가 소개한 일본 호텔의 접대법이다.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로 불리는 일본의 ‘진심이 담긴 대접’은 외국인 관광객을 놓고 우리와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일본이 장착한 최고의 무기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지난 2014년(한국 1420만명,일본 1342만명)만해도 한국이 앞섰던 외국인 관광객 숫자는 2015년(한국 1323만명,일본 1974만명)에 일본에 역전당했다. 지난해엔 한국이 1724만명, 일본은 2404만명이었다. 일본 관광청에 따르면 올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수는 지난달 15일 이미 20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는 10월 30일 2000만명을 돌파했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 전체로는 3000만명에 임박할 듯한 기세"(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임이 분명하다.

2009년~2014년 한국에 뒤졌던 일본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작전이 이제 파죽지세로 한국을 압도하는 분위기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일본 관광의 잠재력을 현실로 폭발시킨 요인을 전문가들은 대략 5가지로 꼽는다. ^아베 총리의 관광 리더십^일본을 다시 찾게 만드는 오모테나시^경쟁력있는 지방^비자와 숙박 등 관광 인프라^엔화 약세 등 '아·오·지·비·엔'이다.

#1 아베의 리더십
아베 신조 일본 총리[중앙포토]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 2013년 7월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일본의 관광 경쟁력을 분석한 기사 내용의 일부다. 당시만 해도 일본 신문들은 한국을 비교대상으로 거론하며 "비자 완화나 문화 홍보 등에 있어 라이벌인 한국에 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당시는 2012년말 재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가 ‘관광입국’정책을 막 내걸었을 때였다. 하지만 그 후로 4년여만에 두 나라의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한국 관광에 대해선 전문가들과 언론들 사이에서 "한류와 쇼핑이라는 투톱에 너무 의존하다가 결국 공을 잡으면 무조건 센터링만 올리는 축구가 됐다"는 혹평이 나온다. 반면 일본에선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 400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을 찾도록 만들겠다’는 정부 목표에 대해 모두들 "충분히 가능하다"고 평가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펴낸 ‘2015 세계여행ㆍ관광보고서’에서 조사대상 141개국중 일본의 종합경쟁력은 9위,한국은 29위였다.

‘아베 노믹스’가 성공했느냐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리지만 적어도 아베가 아베노믹스의 일부로 추진했던 관광입국 드라이브는 아직까지 거침이 없다. 아베는 "관광은 성장 전략의 큰 기둥"이라며 지난 5년간 관광 분야에 올인해왔다. 2012년 재집권뒤 곧바로 자신의 의장을 맡는 ‘관광입국추진 각료회의’를 신설했고, 2015년엔 ‘내일의 일본을 뒷받침하는 관광비전 구상회의’라는 회의체도 만들었다. 그리고 2015년 일본의 여행수지는 53년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사실 ‘관광입국’이라는 미션에 일본 총리 관저가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때부터였다. 2008년엔 국토교통성의 1개 국에 불과했던 관광 담당 부서가 관광청으로 승격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엔 관광 사령탑이 있기는 한 걸까. 양무승 한국여행업협회 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관광 정책을 아베 총리가 직접 총괄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1970년대 총리실 산하에 관광정책협의회를 설립했는데, 그나마 1992년 규제 완화를 이유로 없앴다"고 아쉬워했다.

#2 일본의 최대 무기는 오모테나시
일본의 방송인 다키가와 크리스텔이 지난 2013년 열린 '2020년 하계 올림픽 유치 프레젠테에이션'에서 일본의 오모테나시를 홍보하고 있다.[유튜브 화면, TV아사히 캡쳐]
오모테나시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유치에도 기여할만큼 일본의 대표상품이 됐다. 2013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올림픽 유치 최종 프레젠테이션때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모의 방송인 다키가와 크리스텔이 우아한 손동작과 함께 "오~모~테~나~시"라고 또박또박 끊어 읽으며 심사위원들에게 ‘정성이 가득한 일본의 환대’를 강렬하게 어필했다.

오모테나시가 무서운 건 앞에서 언급했던 오쿠라 호텔의 사례처럼 최상급 서비스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을 다녀온 여행객들중엔 "나가사키의 야경을 감상한 뒤 산 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데 손님들이 까마득하게 안보일때까지 직원이 90도로 절을 하고 있더라","도쿄의 대표적 어시장인 쓰키지 시장앞에서 원화 4000원짜리 곱창덮밥을 먹는데도 엄청난 서비스를 받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오모테나시의 강력한 효과는 일본을 찾았던 외국인들이 다시 일본을 찾는 비율(재방문율)에서 확인된다. 일본 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4~6월 일본을 방문했던 외국인 관광객들중 일본을 찾은 횟수가 두 번째 이상인 이들의 비율은 62%로 2년전보다 4%포인트나 올랐다. 반면 한국의 경우 2016년 재방문율은 40%를 밑도는 38.6%에 머물고 있다.

"한국인은 친절하지 않고 무뚝뚝하다"는 인상을 지우자는 취지에서 한국은 2015년 ‘K스마일 캠페인’을 시작했다. 과연 ‘스마일’이 오모테나시에 앞서는 날이 올 것인가.

#3 새로운 키워드는 '지방'

지난해 외국인 46만명이 방문한 일본 기후 현 다카야마시의 거리 . 이 시는 7일간 무료로 와이파이를 제공하고, 10개 언어의 가이드북도 만들었다. [지지통신]
"급증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교토에 밀어닥쳐 주민들의 일상에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버스는 만원이고, 위법 민박까지 증가해 ‘이제 한계다’,‘관광 공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국가가 추진하는 ‘관광입국’의 사각지대는 없는가."

지난 6월 일본 아사히 신문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관광객 증가에 따른 부작용을 다룬 기사였지만 역설적으로' 관광입국 드라이브의 그늘이 부각될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 증가세가 폭발적'이란 얘기도 된다.

사실 일본 정부와 기업의 타깃은 교토와 같은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진짜 지방’이다. 경쟁력 있는 지방 곳곳을 관광의 '뉴 프런티어'로 삼아 외국인 방문을 늘리고 지방 경제도 살리겠다는 게 일본 정부의 구상이다. 그래서 농촌민박 테마 마을도 꾸미고, 현(우리의 도에 해당)의 경계를 넘어서는 연계 관광 프로그램도 만든다. 그러니 요즘엔 산간 오지에도 관광객들이 북적댄다.

2016년 일본을 찾아 숙박한 관광객들의 연 인원을 일본 관광청이 집계한 결과 3대도시권(도쿄ㆍ오사카ㆍ나고야 권)이 자리잡고 있는 8개도부현(도쿄ㆍ가나가와ㆍ지바ㆍ사이타마ㆍ아이치ㆍ오사카ㆍ교토ㆍ효고)은 전년도와 비교해 138만명이 증가한 4185만명. 반면 이를 뺀 다른 지역은 238만명이 증가한 2752만명이었다. 아직 총 숙박객 수에선 3대도시가 포함된 지역이 앞서 있지만, 전년도와 비교한 증가폭은 3대도시를 뺀 나머지 지방이 처음으로 앞섰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복수응답을 허용한 외국인 관광객 상대 여론조사에서 ‘어디를 방문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서울(85%),제주(18%),경기(13%)순이었다고 한다. 수도권 아니면 제주로 여전히 편중된 경향이다.

#4 비자와 면세점 등 여행 인프라 2013년 이후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는 눈에 보이는,또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를 닥치는 대로 철폐하고 있다. 동남아국가들과 중국을 상대로 비자면제 대상을 확대했고, 장기체류·복수 비자를 도입했다. 여관업법이 규정한 숙박업소의 최소객실수 조항(호텔 10실, 료칸 5실)요건을 풀고, 민박 규제도 완화하며 인프라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자체와 기업들은 숙박시설 건설붐을 일으켰다. 최근 5년만에 면세점을 4000여개에서 2만개로 늘려 쇼핑객들도 빨아들이고 있다.

#5 엔화와 생활물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일본 관광객 증가의 최대 공신은 사실 ‘엔저 효과'다. 엔화가 평가절하되면 일본 여행 경비가 싸지기 때문에 여행자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조건이 된다. 따라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일본과 한국의 물가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게 됐고, 한국여행보다 일본 여행의 '가격 대비 서비스 만족도'를 더 크게 느끼게 된다.

서승욱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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