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몰렸던 납북어부, 49년 만에 누명 벗고 완전한 자유인

2017. 10. 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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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조기잡이 중 납북됐다가 간첩과 반공법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박춘환(71)씨 등 납북어부 3명이 사건 발생 49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전주지법 형사1부(장찬 부장판사)는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각 1년 6개월과 8개월의 징역살이를 한 박씨 등 납북어부 3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박씨는 또다시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8개월간 옥살이했고 이번에 재심에서 두 번째 무죄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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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법 위반 박춘환씨·선장 등 3명 재심서 무죄 선고받아
박씨 2번의 재심서 모두 무죄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1968년 조기잡이 중 납북됐다가 간첩과 반공법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박춘환(71)씨 등 납북어부 3명이 사건 발생 49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전주지법 형사1부(장찬 부장판사)는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각 1년 6개월과 8개월의 징역살이를 한 박씨 등 납북어부 3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피고인 3명 중 박씨를 제외한 선장 오경태씨, 선원 허태근씨는 이미 숨져 가족이 대신 재판정에 나왔다.

재판부는 "유죄 증거들이 수사단계에서 불법구금과 고문 등 가혹 행위로 만들어져 증거능력이 없거나 신빙성이 없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영창호' 선원이던 박씨는 1968년 5월 연평도 근해에서 동료 선원들과 납치돼 북한에 4개월간 억류됐다가 1972년 북한을 고무·찬양하고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하는 간첩 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아 만기 출소했다.

이 사건은 2011년 3월 재심을 통해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씨는 또다시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8개월간 옥살이했고 이번에 재심에서 두 번째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 피고인이 두 차례의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건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군산 옥도면 개야도에서 나고 자란 박씨는 10대 시절부터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왔다.

1968년 연평도에서 조기를 잡다가 북한 경비정에 끌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왔지만, 이 사건은 박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그는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관들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낮이면 여관으로 끌려갔고 밤이면 경찰서에서 물·전기 고문 등 각종 고문을 받았다.

경찰은 며칠 동안 잠도 재우지 않는 등 허위증언을 받아내기 위해 모진 고문을 했다.

박씨는 간첩의 멍에를 썼고 집안은 쑥대밭이 됐다. 이웃들은 간첩이라고 수군댔고 친구들과 술 한잔 할 수 없었다.

지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한 박씨가 자신의 동갑내기 친구를 포섭하려고 했다고 한 말이 화근이 돼 친구까지도 간첩으로 몰렸다.

냉가슴을 앓던 박씨는 1980년대 연고가 전혀 없던 충청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는 당시 몽둥이와 구둣발로 얻어맞은 후유증으로 엉덩이뼈와 어깨뼈가 모두 부러졌고 제대로 걸을 수 없지만, 일용직 등 각종 궂은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박씨는 "완전히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이렇게 나이가 먹은 게 억울하다. 이게 사람 손이냐"면서 거친 손을 내보였다.

그러면서 "정부가 너무 야속하고 상처가 너무 커 다시는 고향에 가고 싶지 않다"면서 쓴맛을 다셨다.

박씨와 함께 납북된 선장 고 오경태씨의 딸 정애(52)씨는 "어렸을 때 검은 옷을 입은 기관원들이 집 앞을 배회했고 고문 후유증으로 아팠던 아버지는 항상 누워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무죄 판결을 받으니 오히려 담담하다"면서 쓸쓸히 세상을 등진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을 변호한 이명춘 변호사는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납북어부 1천500여명이 처벌받았는데 지금까지 무죄를 받은 사람은 채 10명이 안 된다"며 "아직 갈 길이 멀고 영창호 사건에 대해선 형사보상과 국가배상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sollens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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