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 (13) 중력파 '물체는 왜 추락할까' 오랜 의문에 답하다

김상욱 |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입력 2017. 10. 12.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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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추락하는 것은 질량이 있다 - 2017년 노벨물리학상을 기리며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라이너 바이스 교수(왼쪽)와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킵 손 교수가 지난해 2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력파 발견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틀렸다. 공은 날개가 없지만 추락한다. 사람도 추락할 수 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전락(La Chute)>에는 한때 세속적으로 잘나가던 변호사 클라망스가 등장한다. 그의 삶은 서서히 전락(轉落)해간다. 다리에서 뛰어내려 투신자살하는 젊은 여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버렸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그의 양심에 일어나기 시작한 파문은 결국 그를 바닥까지 추락시킨다. 그의 전락은 여인의 추락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잘못은 악(惡)을 적극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방조한 것에 있다. 카뮈는 이 소설을 통해 악에 대한 각성과 반항을 말하고 있다. 나치즘을 방조한 유럽이 치른 대가를 보라.

■ 추락, 전락, 낙하

사람은 왜 추락할까? 사람은 흙으로 되어 있고, 흙이 있어야 할 자리는 바닥이다. 모든 물질은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려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렇다면 달은 왜 안 떨어지나? 우주는 지상과 천상으로 분리된다. 돌이나 흙은 지상의 세계에 속한다. 달과 같은 천상의 물체들은 지상의 것과 완전히 다른 존재다. 그들은 무게도 없고 색깔이나 냄새도 없으며, 그냥 일정한 속도로 지구 주위를 영원히 움직인다. 이것이 23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물체의 낙하에 대한 답이다.

문제는 천상으로부터 시작된다. 해는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진다. 이처럼 천상의 물체들은 모두 동쪽에서 서쪽으로 일정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여기서 벗어난 것들이 있다. 이들은 ‘행성’이라 불린다.

‘planet’(행성)의 어원은 ‘planetai’(떠돌이)다. 이 가운데 화성은 이따금 완전히 반대 방향, 즉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기도 했으니 당시 천문학의 재앙이라 할 만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행성들의 떠돌이 운동을 쉽게 설명하려는 의도에서 제안됐다. 하지만 지동설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우선 천동설보다 정확하지 않았다. 당시 천동설은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이미 상당한 개량이 이루어져 있었다. 지구 주위를 단순히 원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원운동하는 중심 주위를 다시 이중으로 원운동한다는 손질이 가해지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런 원들을 ‘주전원’이라 한다. 지구가 움직이는데 왜 우리는 느끼지 못하느냐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성경의 여호수아 10장 12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는 장면이 나온다.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돌아야 가능한 내용이다. 이것이야말로 지동설의 비극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성경은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동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고문을 받거나 화형당해야 했다.

지동설의 약점은 하나씩 보완됐다. 케플러의 눈물겨운 계산으로 행성들의 운동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비로소 지동설의 결과가 천동설보다 정확해진다. 더구나 갈릴레이의 망원경은 지동설이 옳다는 결정적 증거들을 주었다. 물론 이 때문에 갈릴레이는 종교법정에 서야 했지만 말이다. 당시 유럽은 ‘30년전쟁’이라는 최악의 종교전쟁을 치르는 중이었으니 화형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지동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이론에 균열을 일으킨다. 태양이 우주 중심이라면 지구는 왜 태양으로 떨어지지 않는가? 지구도 천상의 물질이라 태양 주위를 영원히 움직이나? 그렇다면 왜 지구상의 모든 물체는 지구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까? 화성도 지구처럼 태양 주위를 돈다. 화성 위에서 돌을 떨어뜨리면 화성, 지구, 태양 가운데 어디로 떨어져야 할까? 이제 돌이 왜 바닥으로 떨어지는지에 대해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게 되었다.

■ 달은 낙하하고 있다

지동설은 지구를 일개 행성으로 전락(轉落)시켰다. 이제 지구상 물체의 낙하는 우주적 운동과 분리될 수 없게 되었다. 뉴턴이 등장할 차례다. 뉴턴의 중력이론은 낙하에 대한 오랜 철학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의 아름다운 설명을 들어보자.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중력이라는 힘으로 서로 끌어당긴다. 그래서 중력을 만유인력(萬有引力)이라고도 부른다. 사과가 (지구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지구와 사과 사이에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태양이나 화성도 사과를 당긴다. 하지만 우주의 모든 물체가 사과에 작용하는 중력을 모두 더해보면 결과적으로 지구로 끌려가는 힘이 남는다. 거리가 멀수록 중력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과는 떨어지는데 달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 지구와 달 사이에도 중력이 작용한다. 따라서 달도 지구로 떨어진다. 어라? 달이 낙하한다고? 사과를 야구공 던지듯 수평으로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한다. 지구가 편평하다면 사과를 아무리 세게 던져도 결국 바닥에 떨어질 거다. 하지만 사과가 낙하하는 거리만큼 땅바닥이 덩달아 밑으로 가라앉으면 사과는 바닥에 닿지 않을 수 있다. 지구는 둥글다. 수평선을 보면 멀어지는 배가 아래로 사라진다. 결국 충분히 빠른 속도로 던져진 사과는 낙하하지만 바닥에 닿지 않을 수 있다. 날아가며 낙하한 거리가 (지구가 둥글어) 내려앉은 거리와 일치한다면 말이다. 달이 낙하하지만 바닥에 닿지 않는 이유다.

낙하에 대한 단순하고 아름답고 심오한 설명이다.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에게 낙하한다. 지구는 태양으로 낙하하고 있지만 태양에 닿지 않는다. 인공위성은 지구로 낙하하고 있지만 바닥에 닿지 않는다. 태양은 우리 은하 중심의 블랙홀을 향해 낙하하고 있지만 블랙홀에 닿지 않는다. 뉴턴은 이 모든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그 과정에서 ‘F=ma’라는 운동법칙(가속도의 법칙·F는 힘, m은 질량, a는 가속도)을 정립했음은 물론, 이 식을 풀기 위해 미적분이라는 수학마저 만들어냈다.

‘자연과 그 법칙은 어둠에 숨겨져 있었네.

신이 말하길 “뉴턴이 있으라!”

그러자 모든 것이 광명이었으니.’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조사(弔詞)에는 과장이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것으로 낙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걸까? 뉴턴의 이론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우선 멀리 떨어진 두 물체 사이에 중력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알 수 없었다. 달은 지구가 자신을 당기는지 어떻게 아는 걸까? 더구나 중력은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달은 지구로부터의 거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두 번째 질문은 운동법칙 F=ma에 왜 질량(m)이 등장할까 하는 거다. 중력을 일으키는 질량이 왜 운동법칙에도 나타나야 할까?

운동법칙의 질량과 중력의 질량은 완전히 똑같다. 그래서 중력을 받으며 운동하는 물체를 기술할 때, 두 개의 질량이 상쇄되어 운동방정식에서 사라진다. 지구상의 물체가 모두 같은 속도로 낙하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의 피사는 기울어진 탑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아무튼 이것이 우연일까? 아니면 여기에 심오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중력이 어떻게 전달되느냐는 의문에 대한 단서는 전자기현상에서 나온다. 전자기라고 하면 보통 전자공학, 전기기기 등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물리에서 전자기학은 ‘장(場)’이라는 개념을 배우는 과목이다. 두 개의 자석은 방향에 따라 서로 당기거나 밀어낸다.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어떻게 아는 걸까? 사실 이 질문은 중력에서 했던 질문과 완전히 같은 것이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석 주변에 펼쳐진 ‘장’의 존재를 제안했고, 제임스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장’을 기술하는 방정식을 만들었다.

자석이 있으면 주변에 자기장이 존재한다. 전하(電荷)가 있으면 주변에 전기장이 존재한다. 전하나 자석이 움직이면 전기장, 자기장에 변화가 생기며 이 변화는 진동의 형태로 전달된다. 거미줄이 ‘장’이라고 해보자. 거미가 움직이면 거미줄을 타고 진동이 전달되는 것과 비슷하다. 전자기장의 진동을 전자기파라고 부르며, 이것이 다름 아닌 ‘빛’이다. 결국 멀리 떨어진 자석은 상대 자석을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 자석이 공간에 만들어놓은 자기장을 보는 셈이다. 거미줄에 걸린 나방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다.

자, 이제 이 아이디어를 중력에 적용하면 된다. 질량이 있으면 주변에 중력장이 존재한다. 달은 지구를 직접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만든 중력장을 느낀다. 질량이 움직이면 중력에 변화가 생기며 이 변화는 중력장의 진동으로 전달될 것이다. 그 진동의 이름은 ‘중력파’다.

왼쪽부터 배리 배니시·킵 손·라이너 바이스 교수.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중력파를 실제로 관측한 과학자들에게 수여됐다. 중력파란 정확히 무엇이 진동하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앞서 이야기한 두 번째 질문을 생각해야 한다. 뉴턴의 운동법칙 F=ma에는 세 개의 알파벳이 등장한다. 힘(F), 질량(m), 가속도(a)다. 뉴턴에 따르면 이 수식은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해석된다. 물체에 힘(F)을 가하면 가속(a)된다. 속도가 바뀐다는 말이다. 같은 힘에 대해 질량(m)이 클수록 가속은 작다. 문제는 왜 질량이 여기 있느냐는 것이다.

지하철이 설 때 몸이 앞으로 쏠린다. 정지해 있던 몸이 앞으로 쏠린다는 것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이니 가속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중력이나 전자기력같이 나를 앞으로 미는 힘은 없다. 그렇다면 이 가속의 정체는 무엇일까? 내가 탄 지하철의 속도가 줄어들면 나의 속도도 줄어든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지하철은 멈추고 나는 계속 달려서 지하철의 통로문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나는 문명의 오지에서 온 사람이라 지하철이 뭔지 모른다. 더구나 지하철의 승차감이 훌륭해 달릴 때는 움직이는 느낌조차 없다. 나는 오지의 사람이지만 뉴턴의 운동법칙은 안다. 그렇다면 지하철이 설 때, 내가 느끼는 속도의 변화는 외부의 힘에 의한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에 힘은 없고 단지 지하철이 정지하고 있을 뿐이다. 아인슈타인이 등장할 차례다.

가속되는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는) 힘을 느낀다. 뉴턴의 운동법칙 F=ma를 앞서와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며 해석해보자. 그 사람이 느끼는 가속도에 질량을 곱하여 힘을 얻는다. 결국 이 힘은 질량이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질량이 만드는 힘은 중력이다. 결국 운동법칙에 질량이 등장하는 이유는 가속되는 사람이 느끼는 힘이 중력과 같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등가원리’라고 불렀다. 가속과 중력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필요하다. 지면이 부족하니 핵심 결과만 이야기하자. 움직이는 사람은 길이가 짧아지고 시계가 느리게 간다. 정지한 사람과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이 다르다는 말이다. 멈추는 지하철을 다시 생각해보자. 지하철이 멈추는 동안 나의 속도도 점점 줄어든다. 그러면 나의 시간과 공간도 점점 짧아지고 길어질 것이다. 가속되는 동안 시공간에 변형이 생긴다는 말이다. 등가원리에 따르면 가속은 중력과 구별되지 않는다. 결국 중력은 시간과 공간을 변형시킨다. 중력파는 시공간이 변형되며 만들어내는 진동이다.

<전락>의 클라망스는 추락하는 여인을 보고 전락한다. 물체가 왜 추락하는지는 문명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의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추락에서 물질 본성을 보았고, 뉴턴은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보았으며,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의 변형을 보았다. 인간이 추락의 본질을 이해하거나 말거나, 오늘도 날개가 있는 것들이 추락한다. 날개가 없는 것들은 말할 것도 없다. 추락하는 것은 질량이 있다.

▶필자 김상욱
고등학생 때 양자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뒤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BK 조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부산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학하는 과학자로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과학수다 1, 2>(공저) <과학하고 앉아 있네 3, 4>(공저) <김상욱의 과학공부> 등의 저서가 있다.

<김상욱 |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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