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총 벽화의 명장면(1) - 가무배송도

임기환 2017. 10. 1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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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명장면-31] 평양 일대에 위치한 덕흥리 벽화고분을 5회에 걸쳐 살펴보았는데, 벽화 이야기가 나온 김에 평양지역이 아닌 고구려의 오랜 수도였던 국내성에 위치한 벽화고분도 살펴보는 게 균형이 맞을 듯하다. 왜냐하면 평양지역의 벽화고분과 국내 지역의 벽화고분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수도로서 400년 이상을 지낸 곳이기에 국내 지역에도 적지 않은 벽화고분이 발견되었다. 그중에서 대략 덕흥리고분과 시기상 가까운 고분 가운대에는 아무래도 우리 눈에 익숙한 무용총(춤무덤)과 각저총(씨름무덤)의 벽화가 적합하리라 생각한다. 이들 무덤 벽화의 명장면을 좀 더 상세하게 관찰하는 법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먼저 무용총 벽화부터 살펴보자. 두방무덤인 무용총은 널방 벽면의 가무배송도, 수렵도, 묘주접객도가 유명하며, 그외 천장에 있는 하늘세계를 꾸미는 다양한 벽화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용총이란 이름은 벽화 중에 무용그림이 있기에 붙여진 것이다. 그런데 무용총의 벽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은 수렵도이다. 생동감 있는 필치와 세련된 화면 구성이 고구려인의 기상을 잘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 고분벽화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하다. 그래서 혹자들은 씩씩한 기상을 보여주는 수렵도로 무덤 이름을 삼지 않고, 일제 시기에 의도적으로 유약한 이미지의 춤그림으로 이름하였다고 비판하면서, 수렵총으로 무덤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렵도가 대표적인 그림이기는 하지만, 사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림이 수렵 장면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난 회까지 살펴본 덕흥리고분 천장에도 활기찬 수렵 장면이 그려져 있다. 춤그림도 다른 벽화고분에 없지는 않지만, 무용총의 춤그림과 같이 다수 인물이 등장하고 그 표현도 매우 세련된 그림은 없다. 그런 점에서 춤그림 역시 수렵도에 못지않은 가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고구려 벽화 중에 고구려인의 기백이 담기지 않은 그림이 어디 있겠나.

그러하니 당나라의 시인 이백은 고구려의 춤을 보고 이렇게 노래했다.

금꽃 장식 절풍모에(金花折風帽)
흰빛 옷이 천천히 빙글돌다가(白馬小遲回)
넒은 소매 나부끼며 너울너울 춤을 추니(翩翩舞廣袖)
해동에서 날아온 새와 같구나(似鳥海東來)

이 시만 보아도 살포시 한 발 두 발 내딛다가 너른 소매자락 휘몰아치는 춤사위가 마치 멀리서 힘차게 날아온 새와 같은 듯 기상이 넘치는 하나의 장면이 그려지지 않는가?

이제 무용총 벽화를 통해 고구려인의 춤을 좀 더 실감 나게 감상해보자. 그림을 꼼꼼하게 봐 주시기 바란다. 가무배송도는 널방 왼벽에 그려져 있다. 앞에는 검은 말을 탄 인물이 뒤에 시종 한 명을 거느리고 서있고, 그 앞으로 상단에는 5인의 무용대가, 그 아래에는 7인의 합창대가 그려져 있다. 무용대 위에는 한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지금은 박락되어 다리 부분만 겨우 보일 뿐이다. 그리고 악사 앞쪽으로, 즉 말탄 인물의 머리 윗부분쯤에 또 한 사람 무용수가 악사를 마주 보며 무용대와 똑같은 춤사위를 펼치고 있다.

무용총 가무배송도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주인공인 왼쪽에 말 탄 인물을 가운데에 배치하고 그 오른편으로 무용대와 합창대를 상하 두줄로 나누어 배치함으로서 왼쪽 인물을 위한 춤과 노래가 펼쳐지는 장면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말 탄 인물이 널방 안벽에 있는 접객도의 주인과 동일한 복장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 이 무덤의 주인공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멀리 떠나는 주인공을 환송하는 것인지, 무사히 잘 다녀온 주인공을 기쁘게 맞아들이는 장면인지는 금방 알기 어렵다. 다만 이런 생활풍속도가 현세의 생활을 재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내세의 복된 생활을 소망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내세로 떠나는 주인공을 떠나보내는 의미도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환송의 장면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좀 더 그림을 상세하게 살펴보자. 그 앞에서 5명의 무용수가 줄지어 같은 춤사위로 춤을 추고 있는데, 맨 앞의 남성 인물은 긴 새깃을 꽂은 절풍을 쓰고 있다. 그 위치나 혼자만 절풍모를 쓰고 있는 점으로 보아 다른 무용수들을 이끄는 모습이다. 이 절풍모를 쓴 인물의 춤은 앞서 이백의 '고려무' 시를 그대로 연상시키는 동작이다.

악사 앞의 남자 무용수가 춤을 지휘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수긍하기 어렵다. 아무래도 절풍모를 쓴 인물이 춤을 이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이 단독 무용수는 그 앞 악사와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 것으로 아래 무용대와는 구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그림은 두 개의 장면으로 나누어진다. 즉 1인 악사의 반주에 맞추어 1인 무용수가 춤추는 무대가 있고, 5인의 무용대와 7인의 합창대가 함께 펼치는 무대가 있는 셈이다. 즉 주인공의 환송을 위해 2인의 작은 무대와 12인이 꾸미는 큰무대, 이렇게 2회가 열린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아래 무용대를 살펴보자. 5명의 무용수는 두 그룹으로 나뉜다. 앞의 세 사람은 비스듬한 선을 이루고 있고, 뒤의 두 사람은 수평선상에 나란히 선 모습이다. 또 옷의 색깔도 주의 깊게 배치되어 있다. 앞의 세 사람 중 긴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두 인물이 서로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으며, 맨 앞의 절풍모를 쓴 인물이 입고 있는 윗도리와 바지는 이 두 가지 색상으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맨 뒤의 두 사람은 이 두 가지 색상으로 윗도리와 바지 색깔을 서로 엇갈리게 표현하고 있다.

색상만이 아니다. 옷차림을 보면 5인 중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을 두 번째, 세 번째에 배치하고 나머지는 저고리와 바지 차림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섯 사람이 열을 짓고 있는 평면적 배치에 다채로운 율동감을 부여함으로써 마치 춤을 추는 분위기를 극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맨앞의 인물에만 화려하게 나부끼는 새깃을 꽂은 절풍을 씌움으로써 보는 이의 시선을 그 인물로 모아가다가 결국 말을 탄 인물에까지 미치게 한다.

무용대 아래에는 7인의 합창대가 자리 잡고 있는데, 화사한 옷차림과 율동감 넘치는 무용대와는 달리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다소 경직된 자세로 열을 짓고 있다. 무덤 주인공이 탄 검은 말의 색깔과 합창대의 옷 색깔이 서로 조응함으로써 자연스레 합창대와 주인공을 연결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밝은 분위기의 무용대를 아래에서 든든하게 떠받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합창대의 맨 앞사람과 무용대의 두 번째 인물이 위아래 수직선으로 일치시키고, 합창대의 마지막 인물과 무용대의 마지막 인물 역시 수직선으로 이어짐으로써 전체적으로 사각형 구도를 이루게 되어 시각적으로 안정감 있는 구성이 된다. 그런데 무용대의 맨 앞쪽 절풍모를 쓴 인물은 합창단의 받침이 없어 마치 공중에 붕 뜬 모습을 하게 된다. 그렇게 아래 공간이 비어 있는 구성이 이 인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절로 시선을 무덤 주인공으로 유도하게 된다.

언뜻 지나치기 쉬운 부분이지만, 이 가무배송도를 꼼꼼하게 들여다 보면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그림이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그려진 회화적으로 매우 뛰어난 그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도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먼저 노래 부르는 합창대를 살펴보면 앞에서 세 번째 인물은 다른 사람과 달리 뒤돌아보면서 뒷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왜 그렇게 그렸는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다소 경직된 합창대의 분위기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어쩌면 바로 이 점을 화가가 의도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무용도에서도 다소 어색한 모습이 있다. 두팔을 완전히 뒤로 나란히 젖힌 모습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마치 두팔이 겨드랑이에서 돋아난 것처럼 표현되었다. 그림과 같은 자세를 취해보시라.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춤사위의 모습은 집안 지역 장천1호분 앞방 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에 무용총만의 독특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딘지 그 모습이 이상하다. 실제 춤사위가 이런 형태인지, 아니면 회화적 표현에 아직 서투른 면이 남아 있어서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일전에 한 무용전문가가 이 춤사위의 복원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두팔을 뒤로 젖힌 모습이 아니라 두팔을 나란히 옆으로 같은 쪽으로 쭉 뻗은 춤사위로 재현하였다. 보통 우리나라 전통무에서 볼 수 있는 춤사위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런 모습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때부터 필자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왜 무용도를 그린 고구려 화가는 그런 춤사위를 이 그림처럼 어색하게 그렸을까? 결코 그리기 어려운 형상은 아니기 때문에 단지 표현 능력의 서투름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앞에서 필자가 설명한 바와 같이 주도면밀한 회화적인 구성으로 볼 때에 더욱 그러했다. 다른 설득력 있는 그린 이의 의도를 읽어내야 했다. 이에 대해 필자가 얻은 설명 방식은 다음 회에서 밝히도록 하겠다.

지금까지 가무배송도 그림을 놓고 나름 구석구석 세밀하게 살펴본 이유는 통상 우리가 고구려 고분벽화를 볼 때 의례 고구려인의 기백이니, 혹은 고구려인의 생활상이니 하는 부분에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사실 고구려인이 무덤 주인공을 위해 무덤 안에 벽화를 그릴 때에는 어떤 소재를 선택할 것인가? 그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 하는 식으로 많은 생각과 공력을 기울여 제작하였을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그런 총체적인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림 속에 담긴 고구려인들의 다양한 의도와 관념, 나아가 미의식 등을 최대한 세밀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고구려 역사에 대한 애정을 갖추기 위한 최소한의 그리고 올바른 태도라 믿는다.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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