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 숨기고 몸 낮춘 아베의 첫날 "개헌 결정하는 건 국민"

서승욱 2017. 10. 2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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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파트너 공명당까지 합해 개헌 정족수 넘어
승리 회견서 개헌 거론 안하고 북핵문제 등 현안들만 열거
이미 '자위대의 헌법 명기' 개헌안 공약으로 내세워
중의원 선거의 압승이 확실시되던 22일 밤부터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의 숨가쁜 일정이 시작됐다. 그는 자민당 당사에서 당선자 이름 옆에 꽃을 달고, 언론 인터뷰 일정 등을 소화하느라 23일 오전 2시에야 시부야의 사저로 돌아갔다. 아베 총리가 집무실에 모습을 다시 드러낸 건 오전 11시10분쯤이었다. 감색 양복에 감색 줄무늬 넥타이 차림의 그는 ‘압승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여기서부터가 새로운 스타트다. 이제 정책을 실행하고 결과를 내고 싶다”는 짧은 답변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총 465석중 284석, 연립 파트너인 공명당(29석)까지 합하면 개헌 정족수인 3분의 2(310석)를 넘는 313석을 획득했지만, 그는 이 날따라 몸을 낮추려는 눈치였다.
23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중의원 선거 압승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이터=연합뉴스]
오후 2시부터 자민당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 아베 총리는 태풍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에 대한 위로로 말문을 열었다. “지금도 태풍이 계속 북상하고 있으니 정부로서 재해대책에 만전을 다하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들뜬 분위기를 물리치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준비한 기자회견문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3회 연속으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건 거의 반세기만이다. 특히 같은 총재 밑에서 3회 연속 승리한 건 창당이래 60여 년만에 처음이다. 정치를 앞으로 전진시키겠다”고 국정운영에 자신감을 드러내면서도 초미의 관심사인 개헌에 대한 언급은 뺐다. 저출산고령화, 디플레이션 탈출, 북핵문제 해결 등의 과제들을 열거하면서도 ‘아베의 숙원 사업’으로 불리는 평화헌법 9조 개정 만큼은 유독 입에 올리지 않았다. 자민당은 이미 ‘자위대의 헌법 명기’를 골자로한 개헌안을 준비해 이번 선거의 공약으로 내건 상황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5월1일 초당파 의원 모임의 신헌법 제정 추진대회에 참석해 헌법 시행 70주년인 올해 개헌의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딛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지지통신]
이어진 일문일답 시간에서 기자들의 질문은 개헌 문제에 집중됐다. 5개의 질문 중 3개가 개헌 관련이었다. 아베 총리는 개헌에 대한 욕심을 너무 드러내지도, 그렇다고 의지를 감추지도 않는 시종 모호하고 노회한 답변으로 대응했다. “개헌 스케줄은 정해진 것이 없으며, 국민들의 깊은 이해를 얻도록 노력하겠다”,“이번 선거로 (개헌에 대한)국민들의 민의를 얻었다거나, 또는 얻지 못했다고 (쉽게)말할 수 없다”,“여당 뿐만 아니라 야당과도 폭넓은 합의를 형성하도록 노력하겠다. 국민적인 이해를 얻도록 노력하겠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헌법 개정은 자민당 창당때부터 당의 방침이었다”라며 개헌에 대한 의지도 이따금씩 드러냈다. 전체적으로는 “교과서 등에 자위대가 위헌인 상태로 기록된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해소하고 싶다”던 전날 밤 인터뷰 보다는 신중한 태도였다.

아직 발톱을 숨기고 있는 아베 총리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선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때부터의 숙원사업이었던 개헌을 성사시킨 일본 최초의 총리가 되려 어떻게든 개헌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개 헌에 찬성하는 야당(희망의당ㆍ일본유신회)을 포함해 중의원과 참의원에선 개헌파가 압도적이지만 연립 파트너인 공명당이 개헌에 미온적이다. 아베로선 공명당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하다. 또 국민들 사이에서도 평화헌법 9조에 대한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많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베가 말했듯 당분간은 정치권과 국민을 대상으로 ‘폭 넓은 동의’를 구하는 모양새를 갖추려할 가능성도 있다.

개헌 찬성파만의 힘을 동원해 억지로 국회의 벽을 넘더라도 이후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는 최악의 상황도 아베로선 염두에 둬야 한다. 아베 총리 본인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개헌을 결정하는 건 결국 국민투표다. 국민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올가을 임시국회에서 헌법개정안을 제안하고 내년에 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당초의 시간표대로 밀어부칠지 아베 총리의 선택이 주목된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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