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특수학교 설명회 무산을 보면서

이무완 2017. 10. 2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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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나에게도그림자를 줍니다.

말 못하는 나에게도 그림자를 줍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자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 못하는 나'에게도 '나를 바보라고 놀리는 아이들'에게도 '조금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크기 /똑같은 색깔의 /그림자'를 주는 햇빛처럼 우리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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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무완 기자]

햇빛 밝은 날
운동장에 서 보면

햇빛은 나에게도
그림자를 줍니다.

말 못하는 나에게도
그림자를 줍니다.

나를 바보라고 놀리는 아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크기
똑같은 색깔의
그림자를 줍니다.

햇빛 밝은 날이면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어깨를 펴고 운동장에 섭니다.

그늘 아래
숨어 있을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아이들과 내가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햇빛은 나에게도>라는 시입니다. 오승강 시인이 쓴 시집 <내가 미운 날>에 나오는 시이지요. 이 시집에는 시인이 도움반 아이들하고 지낸 이야기를 시로 적어놓았습니다. 도움반은 일반학교에서 특수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입니다.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프고 몸이 아파서 또 마음이 아픈 아이들입니다. 눈이 좋지 않아 칠판 글씨를 읽을 수 없고 혀가 짧아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힘겹게 토해내기도 합니다. 아무리 배우려고 해도 배울 수 없어 눈물만 뚝뚝 흘리는데 그 속도 모르고 자기와 다르다고 '바보'라고 놀림을 받기 일쑤입니다.

사실 이런 일은 아이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 나라 이야기입니다. 이 땅에서 도움반 아이들은 홀대를 받습니다. 가까운 보기로 강원도교육청이 동해시에 특수학교를 세우고자 열려던 설명회가 일부 주민 반대로 시작도 못했습니다.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마을 이미지가 훼손된다는 게 반대 이유입니다.

반대 주민에 막혀 설명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복도에 서서 "차질 없이 특수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지만 들으려는 귀는 진작부터 닫혀 있었습니다. 서울 강서구에서도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문제를 놓고 일부 주민이 거세게 반대하면서 장애학생을 둔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으면서 호소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 동해 특수학교 설명회 무산 2017년 10월 24일 강원도교육청은 동해교육도서관 강당에서 동해 특수학교 설명회를 열려고 했지만 일부 주민 반대로 개최하지 못했다.
ⓒ 강원도교육청 제공
그간 우리는 너나없이 잘 사는 일에는 온 마음이 가 있었습니다. 이 나라가 세계가 놀랄 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해온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잘 사는 나라는 되었지만 도리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두루 평화롭게 사는 일에는 더욱 무심해지고 옆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다는 건 누구라도 공감할 것입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자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건 교과서도 학교도 아닙니다. 나만 잘 먹고 나만 편히 살고 나만 많이 가지려는 세상은 끝내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어찌 온전하게 자라나겠습니까. 몸이 불편하고 마음이 아픈 아이들도 우리 아이입니다. 아이 하나 하나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빛깔을 지녔습니다.

동해가 사람 사는 도시로 이름나면 좋겠습니다. 동해시는 해오름의 고장입니다. 동해에 떠오르는 해는 누구에게나 따스한 볕을 줍니다. 환한 빛을 줍니다. '말 못하는 나'에게도 '나를 바보라고 놀리는 아이들'에게도 '조금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크기 /똑같은 색깔의 /그림자'를 주는 햇빛처럼 우리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불편하고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다 귀한 우리 아이로 품고 평화롭게 사는 사람이 사는 도시가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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