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 한달 생활비 10만원..49명 대식구 매일같이 잔치 여는 집

2017. 10. 3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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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은혜공동체 건물 1층 카페에서 직장 퇴근후 대화하는 공동체 식구들

5. 서울 도봉구 안골마을 은혜공동체

늘 잔치 같은 집이 있을까. 서울 안의 시골 도봉산 아래 도봉구 안골마을에 이런 집이 있다. 49명의 대식구가 한집에서 살아가는 은혜공동체다. 은혜공동체 설립자 박민수(51) 목사는 2000년 경희대의 강의실을 빌려 예배를 드리기 시작할 때부터 ‘교회’ 대신 ‘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인근 교회에서 2007년부터 방과후 학교 형태의 공동육아를 하고, 돌싱 두 가족과 싱글남·싱글녀 등 16명이 연합가정을 꾸려 살았다. 이미 공동육아와 연합가정을 통해 ‘함께 사는’ 단맛을 안 교인들은 모두 함께 살 날을 손꼽아오다 이곳에 공동주택을 지어 지난 8월 입주했다.

드디어 교회와 삶터가 분리되지 않고 함께한 것이다. 그런데 교회처럼 ‘경건’한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다. 층마다 자기 방에서 나와 거실과 부엌에서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는 이들로 정겨운 모습이다. 지하 공동식당 옆 다락방에선 아이들이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깔깔댄다. 2층 식탁에선 어른 셋이서 철학책으로 독서토론 중이고, 3층 거실에선 이곳 초중고 홈스쿨 교사와 아이들이 지리산 종주 계획을 짜고 있다. 직장맘들도 아이들과 살림은 당번에게 맡기고 이웃들과 대화하거나, 밴드실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댄스실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공동체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퇴근해서도 집안일 하고 아이들 돌보느라 파김치가 됐던 그들로선 유토피아가 따로 없다. 공동식당에서 하는 저녁식사도 살림 걱정 없이 즐기니 늘 파티 분위기다.

공동식당에서 식사중인 아이들과 얘기중인 박민수 목사

1인당 한달 생활비 10만원도 안 들어

한집에서 울타리 없이 지낸다는 공동체살이에 부담을 느껴 입주를 미룬 교인들도 퇴근 뒤면 이곳에 와서 집에 갈 줄 모른다. 언니, 오빠, 친구, 동생들과 노는 데 여념이 없는 아이들에게 ‘이제 밤이 늦었으니 집에 돌아가자’고 하면 ‘더 놀겠다’면서 울음을 터트리곤 한다. 미입주 교인들도 벌써 안골에 2차 코하우징 건축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 때 간 스위스 여행에 전체 교인 80명 가운데 79명이 동행한 데서도 ‘조직의 단맛’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1년 전에 예약을 해서 1인당 200만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는 것도 여럿이 함께하는 데서 오는 축복이다. 이 집 건축비도 총 45억원이 들었으니, 1인당으로 따지면 채 1억원이 안 된다. 이 비용으로 서울에서 호텔 못지않은 시설을 이용한다는 것도 공동체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식비를 비롯한 1인당 한달 생활비도 10만원이 안 든다.

은혜공동체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소통의 깊이’다. 교회나 동창회 등에서 피상적인 대화로 감정의 찌꺼기가 쌓이고 더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던 사람들도 이곳에선 속엣말을 터놓는 대화와 공감으로 얼굴빛이 환해진다. 그 비결은 기존 교회와는 다른 이 공동체만의 혁명적 시스템에 있다.

예배당과 같은 구실을 하는 이곳 지하는 세미나장 같다. 의자들도 원으로 배치돼 있다. 찬송가와 주기도문, 설교 등으로 이어지는 예배는 이곳에선 없다. 대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10여명씩 소그룹 토론을 하고, 점심식사 뒤에도 인문학 강사를 모셔 강의를 듣거나 독서모임을 하거나 깊이있는 소그룹 토론을 이어간다. 한달에 한번은 전국의 산하로 야유회를 떠난다.

박민수 목사, 교회 대신 공동체로
2000년부터 대학 강의실 빌려 예배 공동육아 하고 연합가정 꾸려
이미 10년 전부터 함께 사는 단맛 49억 들여 공동주택 지어 8월 입주
1인당 한달 생활비 10만원 안 들어 예배당 구실 하는 지하는 세미나장
예배 대신 소그룹 토론하고 강의 공동식사 하고 악기 연주하고 춤추고
층층이 끼리끼리 모여 놀고 철학담론 일대일 상담으로 치유와 소통
고문 피해자 돕기 등 이웃 사랑 실천

공동체 옥상에 선 박민수 목사.

체 게바라 책 늘 머리맡에

은혜공동체도 10년 전까지는 기성 교회처럼 예배했다. 그러다 박 목사가 신학대학원에서 배운 토론식 모임을 교회에도 도입했다. 토론엔 어떤 금기도 없었다. 그러자 신화적인 도그마는 붕괴됐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친 정수만이 남았다. 열린 토론과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예수처럼 인간을 존중하고, 이웃과 나누고, 약자를 보듬는 사랑에 집중하게 됐다. 이들이 자기끼리의 재미에 빠지지 않고, 고문 피해자 돕기 모임인 ‘진실의 힘’과 끈을 맺어 조작간첩 희생자들과 고문 피해자들을 전국으로 찾아 위로하며 돕게 된 것도 이런 토론식 공부 뒤의 변화였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특징은 박 목사와의 일대일 상담이다. 박 목사는 “예수께서 가르친 인간존중과 사랑이야말로 행복의 비결”이라며 “그러나 개인적인 성격과 심리 문제가 해소될 때 그런 존중과 사랑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교인 수를 무한정 늘리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보살펴 예수에게 나아갈 수 없게 하는 걸림돌을 넘어서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목회라고 생각했다. 그가 ‘잘나가는’ 교회 부목사직을 5년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난 한해 동안 이 공동주택을 지으며 박 목사와 신자를 지켜본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 기노채 이사장은 체 게바라 책을 늘 머리맡에 꽂아두는 박 목사를 두고 “진정한 혁명가는 체 게바라가 아니라 박 목사 같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도봉산 아래 안골마을에 있는 은혜공동체 건물.

불편한 마음 하루 넘기지 않고 풀어

박 목사는 상담전문가인 아내의 도움으로 심리상담을 공부하며 일대일 상담에 집중했다. 한명 한명의 상처까지 껴안느라 자신의 건강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심리상담은 놀라운 치유력을 보여주었다. 또 일부 공동체원 간의 갈등까지도 해소돼 소통되는 변화를 가져왔다. 한 중학생은 “학교 친구들과는 농담 수준에서 대화가 끝나기 마련이고, 밖에선 어른들이 꼬맹이라고 무시하고 진지한 대화에 끼워주지도 않는데 이곳에선 중학생도 어른들과 함께 소모임에 참여할 수 있고, 삼촌, 이모들이 꼰대처럼 굴지 않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줘 깊은 얘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마음에 맺힌 것도 다 풀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심리적 돌봄은 박 목사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은혜공동체에서는 누구에게나 ‘가톨릭의 대부’와 같은 목자가 있어 힘들 때면 상담을 한다. 아이들도 자기 부모 외에 멘토가 있어서 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또한 개인 간에 마음속에 불편한 것이 있을 때 마음에 담아둬 개인과 공동체의 병을 키우지 말고, 하루가 넘기 전에 서로 만나 풀도록 하는 것도 이들만의 ‘케미’(화학반응을 뜻하는 영어 단어 케미스트리의 줄임말)를 만들어내는 요소다.

그토록 속엣말까지 터놓고 서로 친해지다 보니, 시간적으로는 좀더 많이, 공간적으로는 좀더 가까워지고 싶어한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엿을 붙여놓은 것만 같다. 하하 호호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은혜공동체가 바로 성경 시편이 말한 그곳이 아닌가.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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