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도' 나주, 다시 천년을 비춘다

한현묵 2017. 11. 9.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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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나주서 이름 딴 '전라도'/왕건이 장화왕후 만나 혜종 낳은 곳/고려 특별구역.. 거란 침입 땐 수도로/市, 다채로운 기념사업 추진/옛 나주목 문화유산 등 역사복원 사업/천년광장 타임캡슐 묻고 미래 꿈 기약
천년 목사골 나주시에는 천년 동안 보존돼온 역사자원이 풍부하다. 고려시대 축조된 나주읍성 동정문에 새로운 천년을 비추는 햇살이 내리 쬐고 있다.
나주시 제공
지난 5일 찾은 전남 나주시청 앞 완사천 주변은 가을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1.5m 크기의 동그란 우물에서는 물이 솟아 나왔다. 이 물의 종착지는 영산강이다. 이 옹달샘은 지난 천년간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다. 샘은 최근 들어 화강암 석재로 단장됐지만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기 전에 나주를 찾았을 당시 17세의 장화왕후를 처음 만난 곳이다. 장화왕후는 고려 제2대 혜종을 낳았다. 이를 기념해 완사천 일대에는 흥룡사와 혜종사라는 사당이 건립됐다. 완사천은 나주의 지방세력 호족과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시발점이다. 이런 인연으로 고려시대 나주는 제2의 수도 역할을 했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에서 앞의 한 글자씩 따와 붙여진 지명이다. 내년 10월18일이면 전라도의 지명이 붙여진 지 천년이 된다. 지명에서 보듯이 나주시는 지난 천년간 광주와 전남, 전북지역의 행정과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나주시는 내년 정도 천년을 앞두고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천년의 영광을 되돌아보고 미래 천년의 나주 르네상스를 위한 날갯짓을 펴는 것이다.

◆천년간 전라도 중심지는 나주

전라도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현종 9년(1018년)에 처음 등장한다. 고려사를 보면 강남도는 현재의 전북지역인 전주와 영주, 순주, 마주 등의 주현으로 편성돼 있다. 해양도는 나주와 광주, 정주, 승주, 패주, 담주, 낭주 등 현재의 광주와 전남지역으로 이뤄져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장화왕후를 처음 만난 우물인 완사천

현종은 성종과 목종을 거쳐 조직된 지방관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현종 9년에는 강남도와 해양도를 합했다. 강남도의 대표 지역인 전주와 해양도의 대표 지역인 나주의 지명에서 한 자씩를 취해 전라도라는 지명을 만들었다. 현재의 전라도 지역인 광주와 전남, 전북은 현종 9년인 1018년을 전라도 정면 원년으로 보고 있다. 이들 3개의 지자체는 2018년 10월18일을 전라도 정명 천년이 되는 해로 정했다.

고려시대 나주는 특별한 지역이었다. 왕후를 나주에서 얻은 왕건은 나주를 특별구역으로 편제해 독립적 특별기구인 나주대도행대를 설치했다. 시중(국무총리급)이 우두머리로 파견됐다. 현종은 12목을 8목으로 축소할 때도 호남에서 유일하게 나주만 목으로 유지했다. 명실상부한 호남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나주는 거란의 2차 침입 때 임시 수도가 됐다. 현종이 나주로 몽진을 와 9일간 머문 것이다. 현종의 명으로 개경과 서경에서만 행하던 국제행사인 팔관회를 나주에서도 개최했다.

현종 때 명명된 전라도 지명은 예종 2년(1107년)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라도가 정명의 단계에서 벗어나 정도 단계에 이르는 것은 고려 후기 때다. 전라도를 비롯한 5도 안찰사제가 확립되면서 조선시대 관찰사의 감영과 같은 안찰사영을 갖춘 상급행정기관의 자리를 잡았다. 전라도가 지방장관이 상주하는 최고 지방통치기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전라도는 여타 지역과 달리 이후에도 시대에 따라 지명이 변화하지 않았다. 천년 동안 전라도라는 지명을 유지해온 셈이다.

전라도의 중심지는 현재 나주시인 나주목이었다. 노령 이남 지역을 대표하는 지방통치의 거점 역할을 해왔다. 나주목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 속군 5곳과 속현 11곳을 관할했다. 현재 광주와 전남지역 대부분은 나주목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미래 새천년 출발지도 나주

전남 나주시는 내년 10월 전라도 정명 천년을 앞두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준비활동에 들어갔다. 지난 9월 시민과 출향인사 등 252명으로 ‘전라도 정명 천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전라도 정명 천년 D-1년인 지난달 나주 곳곳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지난달 18일 나주 빛가람동 한전KDN에서 전라도 천년 D-1년 기념식과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심포지엄에서는 광주시와 전남도, 전북도가 전라도 천년을 맞아 역사적 의의와 미래 비전을 지역주민과 공유하고 전라도인으로서 자긍심을 높이는 기념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고려 현종이 나주로 몽진와 사마교를 말을 타고 건넜다는 내용을 담은 사마교비
올해 12월31일에는 나주 정수루 일원에서 2018년 무술년 새해맞이 북 두드림 제야 행사를 하고 전라도 정명 천년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다. 나주시는 전라도 정명 천년을 기념하는 전망탑을 세운다. 사업비 16억원을 들여 나주의 역사문화와 자연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천년광장을 조성하고 나주를 대표하는 탑을 건립하는 사업이다. 타임캡슐도 매립한다.

옛 나주목 당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역사복원사업도 벌인다. 지난 9월부터 내년 10월까지 5억원을 들여 사직단과 목장을 옛 모습 그대로 되살린다. 나주는 고려시대 주(州)를 설치할 때 나주의 지형이 주형(舟形)을 닮아 그 안정을 빌고자 동문 밖에는 석장(石檣)을, 동문 안에는 목장(木檣)을 세웠다. 그러나 목장은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사라져 버렸다. 나주시는 정도 천년을 기념해 석장 형태의 목장을 복원하기로 했다.

나주에는 천년의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문화유산이 많다. 나주읍성과 나주향교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사적 문화재와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나주목 객사인 금성관도 천년 문화자원이다. 비록 몇 차례 복원됐지만, 그 터와 양식은 고스란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사마교도 천년의 문화자원이다. 거란족의 침입으로 나주로 몽진온 현종이 네 마리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건넌 다리를 말한다. 조선시대 정지호 나주현감이 다리를 고치면서 이런 유래를 적은 사마비를 세웠다.

윤지향 나주시 문화예술팀장은 “전라도 정명 천년을 맞아 목사골 나주의 전통문화콘텐츠를 복원하고 활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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